태어났으니 죽을 수밖에 없다

오늘의 맑음 ¹

by 듭새




태어났으니, 죽을 수밖에 없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그렇다. 다음 생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이번 생에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인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 무언지 더듬고 더듬어 찾느라 수십 년을 거슬러 갔다. 아직 노르스름을 머금은 낭만이 존재하던,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눈을 뜬 지 십 년도 채 되지 않던, 어느 볕이 따뜻하던 그때로.


아홉 살의 생활은 단조롭다. 평일에는 작년보다는 제법 익숙해진 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집과 그리 멀지 않은 학원에 간다. 주말에는 일어나서 운이 좋으면 텔레비전에서 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볼 수 있고 운이 나쁘면 만화는커녕 꿀 같은 단잠을 빼앗긴 우거지죽상으로 엄마의 손에 끌려 나간다. 지루함과 공포감. 어찌 친하지도 않을 것 같은 단어 둘이 한데 섞여 있을까 싶지만, 그 어려운 것을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곳. 대중목욕탕을 향해 집을 나서던 이른 아침. 그날은 운이 나쁜 날이었다.


크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다란 골목. 우리 가족은 옹기종기 모인 많은 집 중 골목 입구에 자리 잡은 한 채에 살았다. 정확히는 주인아주머니가 사는 1.5층 집채 아래에 딸린 0.5층의 공간. 1층도 아닌 곳이 반지하라고 하기엔 어린아이 몸이 반도 안 잠기는 애매하고 어중된 층. 대문도 없이 골목에 덩그러니 드러난 은색의 알루미늄 문이 그 집을 지키는 현관문이었다. 그마저도 문짝의 반은 불투명하고 올록볼록한 두터운 유리. 역시 가정집의 현관문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하다. 상가 화장실에나 있을법한 문짝의 동그란 손잡이를 돌려 열면 냉장고와 싱크대만으로도 가득 차는 부엌도 거실도 아닌 공간이 코앞이었다. 어른 종아리 정도의 깊이 아래로는 신발 두어 켤레로도 꽉 차는 좁아터진 현관이 있었다. 나는 현관에 굴러다니던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으며 골목으로 나왔다. 엄마 손에 붙들려 팔이며 다리며 등짝까지 때수건으로 벅벅 밀릴 생각에 시작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 터였다. 집안에서 뭉그적 버텨봐야 혼만 날 뿐이니 기다려도 밖에서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골목에 쪼그려서 운동화를 고쳐 신던 낯에 살살 웃음이 피어올랐다.


"멍!"


흰둥이라고 하기에는 누렇고 누렁이라고 하기에는 희었다.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강아지인 것은 분명했는데 털도 깨끗하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잘 따르는 애교가 많은 녀석이었다. 3미터도 채 되지 않는 폭의 골목 중앙에서 배를 까고 비비적거리는 짧은 털뭉치를 보느라 곧 다가올 때밀이의 공포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털뭉치는, 손으로 머리를 긁어주니 혀를 날름거리며 손등에 얼굴을 비벼왔고 턱 아래를 조물조물하다가 발랑 까뒤집은 배를 쓰다듬어주자 맨땅에 등을 파닥거리며 낑낑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한창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시기였다. 디즈니 만화동산도, 목욕탕도 전부 다 잊을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생명체. 선물처럼 눈앞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귀여움으로 무장한 이 털뭉치를 우리 집 막내로 들이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예쁘게 다듬어 꺼내놓아야 씨알이라도 먹힐까. 벌써 작은 머리통 속에서는 온갖 시나리오가 빠르게 짜이던 중이었다.


"이놈의 개시키가 여기가 어디라고 또 왔어!"


짜증 가득한 날카로운 음성이 귀를 관통했다. 둥글게 말았던 몸을 낮은 포복 자세로 바꾼 채 제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을 기분 좋게 받고 있던 털뭉치가 순식간에 내 다리 사이로 튀어 나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겁을 먹고 도망치는 털뭉치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어? 멍멍ㅇ...."


끼익. 차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쿵 소리가 들렸었나. 기억에는 없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안에서 귀여움받던 털뭉치가 빛처럼 빠르게 그 손아귀를 빠져나갔고 그 속도가 무색하리만큼 갑작스럽게 정지했다. 어른의 걸음이라면 대여섯 걸음. 골목 입구와 가까운 만큼 골목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방이었다.


"에잇 씨, 아침부터 재수 없게."


털뭉치에게 고함을 쳤던 동네 할아버지는 바닥에 침과 욕설을 동시에 뱉어내고는 골목 어딘가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털뭉치에게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든 장본인의 얼굴은 꼭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집에서 몇 발짝 떨어진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심술 맞은 뒷모습이 보였다.


"딸,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노인의 성난 목소리를 들었는지 급히 목욕 바구니를 들고나오던 엄마는, 소리도 못 내고 손만 벌벌 떨고 있는 내 모습에 놀랐는지 급하게 나와 문을 닫았다. 동그란 손잡이는 열쇠로 잠글 필요가 없었다. 안쪽 손잡이 중앙에 달린 잠금 버튼을 한 번 누르고 밖에서 문을 닫으면 그대로 문이 잠겼다. 현관문이 아니라 방문처럼.


엄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일어나 골목 입구로 달려 나갔다. 골목 앞엔 내 키보다 한참 높은 -당시에는 버스만큼 높게 느껴졌다- 커다란 차가 짙은 녹색의 몸체를 번쩍이며 뽐내고 있었다. 잠시 멈췄던 차는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차체가 높아 바닥에 누워있는 털뭉치를 사이에 두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밟지 않고 지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 뒷좌석에 앉아 아빠에게 매달리듯 운전석 의자를 붙들고 도로 위 차들의 뒤꽁무니를 보며 자동차 이름을 맞히는 것은 지금보다도 더 어릴 때부터 아빠와 내가 하는 놀이였다. 먼 시골에 가기 위해서 몇 시간이나 운전해야 하는 아빠의 졸음을 덜어주기 위한 어린 딸의 기특한 노력을, 아빠는 늘 정답을 알려주며 함께 어울려주었다. 덕분에 알파벳을 일찍 외웠다. 그래도 알파벳으로 차 이름을 읽는 것보다 백라이트의 모양을 보고 어떤 차인지 외우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엄마, 저거 무쏘야. 무쏘..."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다. 번호판을 봐야 했는데 원망의 눈으로 쏘아보던 것이 백라이트 모양이라니. 바퀴 주변은 은색이었지만 전체적인 차체는 짙은 녹색인, 어른들이 흔히 '지프차'라고 부르는 차였다. 처음 그 차를 봤을 땐 무척 크고 멋진 차체에 신이 나서 빨간색과 주황색을 납작하게 펴 발라놓은 백라이트 모양을 외우고 왼쪽 백라이트 위에 박힌 영어 이름의 알파벳을 외웠다. 그리고 그 멋진 차가 오늘 내 앞에서 강아지를 치고 그대로 도망갔다. 사실 그게 도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골목 바닥에 침을 뱉고 욕하던 할아버지와 같지 않았을까. 아침부터 재수 없게. 그런 생각으로 차에서 내려보지도 않고 그대로 골목을 떠났을 테니.


털뭉치는 내게 귀여움받을 때처럼 배를 까고 누워있었지만, 땅에 등을 비비거나 파닥거리지는 않았다. 대신 하늘 위를 향해있는 한쪽 다리를 이따금 달달 떨었다. 토실한 엉덩이 주변으로는 소변이 만든 웅덩이가 생겼다. 낑얼대는 소리도 없고 헐떡대는 숨은, 글쎄 언제 꺼졌더라. 너무 놀라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일찍이도 알게 됐다.


달달 떨리던 다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채 감지도 못한 눈을 감도록 손으로 털뭉치의 눈꺼풀을 덮어준 것은 나였다. 차가 다니는 골목이라 털뭉치를 골목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옮겨준 것은 엄마였다. 그 뒤는 어땠는지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게 남은 것은 오늘 내 앞에서 죄 없는 강아지가 죽었다는 것. 그 강아지와 내가 가족이 될 수도 있었다는 행복한 상상은 허무하게 부서졌다는 것. 내가 맞이한 첫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찰나였다는 것.


오늘 운이 좋은 날이라 이불속에서 디즈니 만화동산이나 보고 있었다면 털뭉치는 죽지 않았을까. 짜증이 가득했던 할아버지의 호통이 5분만 빨랐거나 느렸더라면 털뭉치는 죽지 않았을까. 도망치는 털뭉치를 붙잡아 내 품에 껴안았더라면, 털뭉치는 죽지 않았을까. 곱씹어봤자 변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고 되풀이하던 그날. 나는 생애 첫 죽음이라는 것을 만났다.


태어난 모든 것은 언젠가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 대뜸 고개를 디민다. 모든 생물은 죽으려고 태어났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지기 위해 하는 경기는 없고, 뱉기 위해 먹는 음식도 없다. 나도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고달프고 괴롭더라도 살아가는 맑은 날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날 생긴 죽음의 공포를 계속해서 안고 살지만, 죽음에 맞서겠다는 오기도 함께 안고 간다. 이 오기는 곧 나를 살게 하는 용기가 될 것임을, 가까이에서 도사리는 죽음에 한 방 먹이는 아주 큰 무기가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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