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맑음 ²
열두 살의 봄은 화창했다. 헐벗은 듯 골목에 드러나 있던 알루미늄 현관문과는 작별하고 튼튼한 초록색 대문이 지켜주는 믿음직스러운 집으로 이사한 지 두어 달.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늘 들떠있었다. 튼튼한 대문 안으로 들어와야지만 만날 수 있는 현관문에는 듬직한 잠금장치도 생겼다. 한 번 돌린다고 열리고 잠기던 동그란 손잡이가 아닌, 열쇠를 넣어 돌려야 열리고 잠기는 자랑스러운 쇳덩이였다. 신발장을 두고 그 옆에 신발 몇 켤레를 놓아도 비좁지 않은 현관. 코앞에서 싱크대와 냉장고를 동시에 마주하긴커녕 몇 걸음 뛰어 들어가야 나오는 거실. 거실을 지나쳐 등장하는 기다란 부엌. 모든 것이 크고 넓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바뀐 환경이 안정감을 주었을까. 끊이지 않던 부모님의 싸움도 현저하게 줄었다. 꿈에 그리던 적당히 화목한 가족이 되어가던 시기. 모든 것이 다 화창했던, 5월의 봄.
"진짜 어린이날에 놀이동산 가?"
아빠의 회사는 모두가 쉬는 날에도 출근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주말이나 공휴일에 가족끼리 어딜 가는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그것에 불만을 느끼기에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 어린이날에는 가족끼리 놀이동산에 가겠다며 몇 주 전부터 예고한 것이다. 화창한 봄이다. 정말이지 올해는 얼마나 좋은 일이 가득해지려고 이렇게 행복할까.
"당연하지. 우리 딸 어린이날인데."
아빠는 입 밖으로 낸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기대감에 가득 찼던 어린이날은 12년 인생에 처음이었다.
새집으로 이사 오고 한 달이 채 안 되었던 어느 날. 태권도 학원을 마친 후 셔틀버스도 타지 않고 집까지 미친 듯이 달려왔던 날. 흰색 도복을 입고 검정 띠를 휘날리며 대문을 박차고 집으로 들어서던 발에 날개라도 달린 듯했던 그날. 그날은 내게 처음으로 컴퓨터가 생기는 날이었다.
책상 한쪽에 위풍당당하게 올라와 있던 모니터. 애초부터 컴퓨터를 염두에 두고 새로 장만했던 책상에는 키보드가 들락날락할 수 있는 키보드용 서랍과 본체를 보관하는 전용 수납 칸도 있었다. 한동안 텅 비어 있던 곳들이 제 옷을 챙겨 입고 곳곳을 채운 것을 보니 너무 좋아 소리를 다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장담한다. 이번 어린이날은 컴퓨터를 선물 받았던 날보다 몇 배는 더 좋으리라는 것을. 그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왜 이리 더디던지. 드디어 찾아온 어린이날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새벽 일찍 출근했다가 이른 오후에 퇴근한 아빠는 내게 줄 어린이날 선물을 사 올 테니 돌아오면 바로 놀이동산에 가자며 엄마와 함께 잠시 외출했다. 혼자 집에 남은 나는, 다음 주면 돌아오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깜짝 파티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한 어린이날을 맞는데 엄마 아빠도 당연히 행복해야지. 내가 행복하게 해 줘야지. 못 잊을 결혼기념일을 만들어줘야지. 집이 커진 만큼 완벽한 파티를 준비하자. 풍선은 여기에 달고 이쪽 벽에는 메시지 카드를 붙이면 되겠다. 그런 구상을 하며 집안 곳곳에 미리 사둔 메시지 카드와 풍선의 색을 대보며 이 보석 같은 시간을 만끽하느라 연신 싱글벙글했다.
집을 나간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온 부모님을 보기 전까지는.
"딸, 옷 입어."
아빠의 가라앉은 목소리.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는 아무런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바로 시골 내려가야 하니까 짐 챙기고."
아빠에게 입을 옷을 건네주며 방을 나온 엄마는, 위아래 모두 새카만 옷을 입고 있었다.
시골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우리 가족은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운전석 뒤에 매달려 도로 위의 자동차 이름을 종알거리던 나도, 아빠가 졸리지 않도록 껌을 챙겨주던 엄마도, 같은 차종의 차가 지나가면 우리 친구 안녕 인사를 건네던 장난스러운 아빠도. 일상의 모습을 감춘 차 안에는 슬프고 무거운 적막만이 지독하게 깔려있었다.
외할머니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건강한 노인이었다. 연세 지긋한 나이에도 여전히 활동적이고 몸짓이 빠릿빠릿했다. 상대적으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오래전부터 보호하다시피 살았던 터라 본인이 건강해야 한다며 마을 곳곳의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곧 있을 마을 체육 행사를 위한 자원봉사 활동으로 갓길 옆 잡초 뽑기를 돕던 할머니는, 속도위반으로 달려오던 자동차에 그대로 덮쳐졌다.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즉사 판정을 받은 할머니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고 한다. 운전자는 20대 남성. 동승자인 여자 친구와 달리는 차 안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다 핸들을 잘못 꺾어 갓길 바깥쪽까지 차가 튀었고, 그 차가 튄 곳에는 쪼그려 앉은 할머니가 있었다.
너무 슬프면 눈물이 안 나는 걸까.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고도 울지 못 했다. 예전부터 몸이 편찮으셨던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더 오래 사실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할머니도 영감 장례는 내가 치르고 가야지 하셨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할머니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게 닥친 가까운 사람의 죽음. 그 처음을 받아들이기에 열두 살은 너무 작고 어렸다.
"의사 좀 불러와!"
벌써 두 번째. 할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던 엄마가 또 혼절했다. 나는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엄마가 할머니를 따라갈 것만 같은 불안함에 몸이 덜덜 떨렸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그것이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될까 무서웠던 열두 살의 봄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처절하고 끔찍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아주 슬픈 폭우가.
죽음은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가족, 친구, 지인. 혹은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 한 다리만 건너도 아는 얼굴이거나, 대화는 안 해봤어도 아는 사람이거나,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던 유명인까지도.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어린 나이부터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잊으려고 해도 그 죽음의 잔재로 고통받는 사람의 곁을 지킨다면 함께 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멀다고 생각했던 죽음이 준비도 없이 코앞에서 벌어졌을 때의 혼란과 슬픔을.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 죽음의 맨얼굴을 본 사람들은 안다. 가까운 만큼 잊을 수 없다는 것을. 가까운 만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잊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묻어야 한다는 것을. 고이 감싸 이따금 꺼내 풀었을 때 상처가 없도록 조심히 묻어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열두 살의 축축했던 봄이 내게 알려주려던 것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