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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도끼질 Dec 22. 2024

하루종일 청소를 했다

자정이 넘어서 잠들긴 했지만 유난히 늦잠을 잤다. 공기는 차갑지만 햇빛은 좋더라.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 알 수 없이 심란하고 초조하다. 또 이러네.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반대로 들뜨고 심란한 날이 더 많다.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면, 사실 업무적으로만 보면 도긴개긴이긴 하다. 어차피 이런 날에는 차분히 원고를 볼 수가 없거든. 그래도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보다야 들뜨는 게 훨씬 낫긴 하지. 일어나지도 못한 채 이불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안절부절 못해도 계속 움직이는 게 나으니까. 


알 수 없이 초조할 때는 주로 청소를 한다. 몸도 적당히 움직일 수 있고, 잡생각도 잊게 해주고, 어느 정도 뿌듯함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가끔 이게 좀 과해진다는 것. 단순히 정리정돈에서 끝나면 좋은데 가끔 내가 생각해도 과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다. 손을 멈추면 또다시 초조해지는 걸. 


오늘도 그랬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후 남은 식재료나 가볍게 정리해볼까 했던 게 냉장고 청소가 돼버렸다. 오래된 음식을 버리고 큰통에 담긴 음식물을 작은통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다 보니 대용량 식재료와 김치를 소분하게 됐고, 냉동실 서랍을 다 끄집어내서 얼려둔 식재료를 정리하게 됐고, 구석에 박힌 싹 난 감자를 모조리 깎아서 삶고 볶고 지지게 됐다. 그뿐인가. 양념통들도, 과자와 라면과 통조림들도, 싱크대 서랍속 자잘한 물건들도 싹 다 정리했다. 해가 지고 체력이 방전되지 않았다면 신발장과 보일러실까지 뒤집어 엎었을 듯.


그러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느냐? 아니다. 사실은 지금도 알 수 없는 초조함 때문에 신경이 살짝 날카로운 상태. 하지만 더 이상 청소가 하고 싶지는 않다. 정리정돈으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이 한계효용에 다다른 모양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해보는 중이다. 하루종일 정리한 것이 무색하게 냉장고도 싱크대도 딱히 크게 달라보이지 않아서 조금 억울하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는 무사히 잘 보냈잖아? 적당히 피곤해졌으니 이제 씻고 자면 돼.


따지고 보면 하루종일 이불 속에 누워있는 거나, 이렇게 쓸모없이 부지런한 거나 결과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까지 정리정돈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거든. 그래도 이렇게 미친 듯이 정리를 한 번씩 해주는 게 낫긴 하다. 어느 순간 다시 무기력증이 도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조금 덜 망가진달까. 거지 거리가 싱크대에서 썩고 빨랫감이 쌓여서 집안이 돼지우리가 돼도, 기존에 구획별로 정리해놓으면 다시 사람 사는 집구석으로 돌아오기가 좀 수월하다. 가장 좋은 꾸준히 중간 상태를 유지하는 거지만, 어차피 그게 되면 이 정도라도 다행이지 뭐. 


돈도 다 떨어진 프리랜서 주제에 하루를 또다시 낭비했다는 사실이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꽤나 심한 스트레스다. 하지만 회사를 때려치우고 집 안에 틀어박히겠다 결심할 때부터 이렇게 될 수 있단 걸 알았잖아. 그럼에도 감당할 생각으로 저지른 거잖아. 


그러니 어쨌든 버텨내자. 다시 우울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독이면서. 초조함이든 무기력함이든 옛날보다 훨씬 나아진 건 사실이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야. 언제는 뭐 내가 풍요롭게 살았던 적이 있냐. 그러니 너무 초조해 하지 말자. 어차피 나는 먼 미래보다 오늘과 내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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