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너구리를 놓아 주어야 하는 이유

Molo에서 온 꼬마 철학자가 말하는 '이별의 굿 타이밍'

by Earth Dweller



날이 좋아 뒷 마당으로 노트북을 가지고 나왔지만, 밀린 일을 하며 보내기엔 지나치게 날이 좋다.

며칠 내린 비로 축축해진 마음을 바싹 말려 'UP' 시켜 줄 부스터가 필요하다.


그래, 글을 쓰자. 글 쓰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날씨다.



토끼를 잡으려고 놓은 덫에 너구리걸리다.


저녁 무렵마다 앞 뒷 마당을 통통 튀며 넘나드는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내 관심도 끌었다. 이제 갓 피운 정원의 꽃 봉우리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 '토끼야, 난 아무래도 네가 의심스럽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갈색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작은 토끼를 잡을 덫을 놓았다.


3일 째 되던 날 아침, 작은 따님의 모닝 브리핑을 통해 "토끼를 잡으려고 놓은 덫 안에 너구리가 앉아 있다."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지금이 바로 놓아 줄 때 vs. 준비가 되어야 놓아주지


아, 리얼 야생 너구리다.

난감하다. 진짜 무언가가 잡힐 거라고 기대하며 놓은 덫이 아니기 때문에, 잡혔을 때의 계획같은 건 있지도 않다. 한 시간 남짓이려나? 이것 저것 먹을거리도 넣어 주고, 너구리의 반응을 살피던 아이들은 이제 너구리를 풀어주자고 한다. 너구리가 슬퍼 보인단다. 하지만 문을 열어 놓아주려니 그것도 용기가 안난다. '혹시 갑자기 뛰어 나와서 부딪치거나, 화가 나서 물면 어쩌지?'

타협만이 살 길이다. "이왕잡힌 거 반나절정도 관찰해보자." 라고 말하면서 시간을 벌어 놓은 뒤 저녁에 "아빠가 퇴근해서 오면 문을 열어 달라고 하자"라는 내심 꽤 괜찮은 절충안을 내 놓았다.


타협을 꿈꾼 엄마에게 작은 따님은 단호히 맞선다.

6살 꼬마 철학자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가만히 듣고나니 무언가가 마음을 찌르고 들어 온다.



"This is the right time to let it go! 바로 지금이 놓아 주어야 할 때라고요! "
맞다. 세상엔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늦는 것들이 있지.




"엄마, 나는 이 너구리가 좋아서 앞으로도 종종 우리 뒷 마당을 찾아오면 반가 울 거야. 그런데 오늘 오래 잡아 둔다면, 이제 우리는 너구리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겠지? 그러면 우리 집을 다시 찾지 않을거야."
"지금 풀어주면 우리에게 고마워하며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테니,
가끔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거야.

마치 사람들도 그렇듯이 말이야 "



"Good Bye" 도 타이밍


아, 그렇구나. 좋아하면 다시 찾고, 싫어하면 멀어지는게 당연한 것을.

혹시 우린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보내야 하는 인연들을 아직도 품고 있진 않은지. 제 타이밍에 보내지 못해 기한 지난 인연과 꿈들이 당신의 마음에 오래 고여 오히려 아픈상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이별이 두려운 그대

굿 타이밍에 용기있게 떠나 보낸 인연이 그 어느 때 다른 모습으로 찾아 올
그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를 반갑게 맞을 내 모습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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