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운 나는 글을 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다. 난 타향에서 보내는 이 시간들을 낯설음이라 표현하고 두려움으로 받아 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장을 봐서 몇 주일치의 식량을 냉장고에 비축하고 있다.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을 해 왔다. "만두 속을 넉넉히 만들었는데, 좀 나눠주면 아이들과 빚어서 먹을 수 있겠어?" 하고,, "정말 네가 만들었니?"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는 한국말과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 2세이기 때문이다. 만두 속 만들기라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데... 난 내심 그것이 높은 기술을 요하는 고난도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요리 장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만두는 그랬다. 과연 한국에서 먹던 그것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락 다운이후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친구의 집을 향해, 만두 속을 찾으러.....
나의 최애 뮤지컬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이 한 매체에서 무료 스트리밍으로 방송되는 날이다.
공연계에서는 매 주말 명 공연들을 이렇게 보여주겠단다. 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 것 처럼 기분이 좋구나. 하지만 주부로써 뮤지컬만 2시간 시청하는 호사를 함부로 누릴 수는 없다. 미뤄 둔 냉장고 안 숙제들 중 만두 속이 생각났다. 만두를 빚으며 본다면 괜찮겠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나는 습관처럼 밀가루를 반죽해 기름을 한 숟가락 넣었다. 예전 나의 할머니는 오랜 연구끝 드디어 학계의 기존 이론을 뒤집을 준비를 마친 과학자마냥 한 껏 들떠 얘기하셨었다. "얘, 내가 기름 쬐끔 넣어봤드니, 밀가루 반죽들이 들러붙질 않아!" 어린 나는 그저 신기했고 대단한 발견을 한 할머니가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한 숟갈의 기름을 떨어뜨린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만두피를 밀어보기 시작했다. 조막만한 손으로 제법 모양을 갖춰 밀어내는 손녀가 기특하셨던지 할머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하셨다. "만두피는 가장자리를 좀 얄팍하게 밀어야 먹을 때 야들야들하다. 안 그럼 수제비와 다를 게 없단 말이지." 혹은 "가운데도 얇게 밀면 만두를 빚을 때 터지기 쉽상이다. 그럼 나중에 만두 국물이 지저분해지지." 라던지.. 호랑이 해에 태어난 무섭고 엄격한 할머니라며 가족들 사이에의 호칭도 '호랑이 할머니'로 통했던 이 엄하고 까다로운 할머니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래인지 "어린 게 여간이 아냐." 라는 할머니의 칭찬들에 더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이제와 밝히지만 그 무렵까지 할머니의 주방보조는 전무했다. 명절이나 잔치때면 다들 정시에 맞춰 와서 먹고, 옛 이야기 나눈 후, 새로 찍어 낸 만원짜리들이 든 봉투들을 각자 가방에서 꺼내 주거니 받거니하며 묵은 계산을 마치고 나면, 봉지봉지 각 집 수에 맞춰 미리 싸놓은 음식을 가지고 돌아가는 '손님들' 뿐이였다. 물론 며느리고 딸이고 모두 일하는 모양새가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이 할머니 대외적인 입장이였지만, 사실은 아무도 잔치 준비를 도우려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란 것 정도는 어린 나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아무나 할 수도, 원하지도 않는 자리를 스스로 꿰어차고 들어갔다.
오늘 나는 딸이 미는 만두피에 만두를 빚으며 오랜만에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기분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 아침에 찾아온 건 참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평소와 무엇이 다를까? 분명 그 무언가가 나의 뇌 저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그리운 시절의 나를 찾아 들고 왔다. 잠시 잠깐 생각하다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쟁반 속 빚어 놓은 만두들이 예쁘구나.' 그 옛날 할머니 만두가 빚은 만두과 꼭 닮은 만두들을 가지런히 한 줄로 세워 둔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오랜만에 만두피를 밀며 빚어보는 만두들이 딱 내가 내 아이만할 때, 조만했을 법한 손으로 할머니와 빚곤 했던 그리운 추억을 데려온 것이다.
명절, 잔치 때마다 방문한 친척들이 실컷 먹고도 또 넉넉히 집에 가져 가도록 400개의 만두와 음식들을 준비하셨던 할머니.. 만두는 그 중 그녀의 자존심이자 시그니쳐 메뉴였다. 모두가 믿고 기다리는 '호랑이 할머니의 만두'니 소홀할 턱이 없다. 파와 숙주를 씻고 자르고, 다진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황금 비율에 맞추어 버물버물, 두부는 으깨야 하고, 김치는 씻고, 다지고, 짜고 내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려고 해도 그 과정은 만만치가 않다. 그만큼 만두 속 만드는 밑 작업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저녁 내내 해도 끝이 나질 않는지 한 밤 중이 되어서는 할머니가 '이거 없인 못산다던 짤순이'까지 일을 한다. 손질을 거진 모든 재료들이 커다란 들통에 모여 계란 한 판과 합체한 뒤, 드디어 촉촉한 만두 속이 탄생하면 할머니는 그제야 잠을 청하셨다.
한 밤 자고 난 다음 날 오후부터는 이 손녀가 나설 차례다. 비록 "학교 파하고 돌아 왔으면 이제 숙제해야지. 나는 괜찮다." 하셔도 뭐든 후딱 헤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할머니가 매번 만두 피를 미는 작업은 손녀의 하교 시간 이후로 미뤄두신 걸 보면 알 수 있다. 안방 장판 위를 덮은 신문지들, 그 위의 도마, 반죽, 쟁반들, 만두 속이 그득하게 든 들통이 그 증거라면 증거다.
이렇게 우리만의 만두 작업장을 꾸며 놓고 막내 손녀가 오기만을 고대했을 할머니를 위해 나는 학교갔다 온 가방을 저만치 던져두고 서둘러 만두 최전선으로 뛰어든다. 손녀가 만두피를 밀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만두피의 가장자리가 마르기 전에 얼른 만두를 빚어 내신다. 이제부터는 둘 사이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속도전이다. 한 사람의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빠르면 둘 사이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작업 속도가 지체되니 가급적 서로 배려해가며 속도를 맞춰야 한다.
어느 덧 밀대로 몇 번 왔다갔다 하면 동그란 만두피가 나올 정도로 작업이 손에 익어간다. 밀대를 미는 두 손바닥이 발갛게 부어 간질간질해질 즈음이면 고층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본다. 벌써 밤이 깊었다.
"얘야, 리모컨 좀 돌려봐라. 벌써 9번에서 가요 무대 할 시간이 다 됐나보다." 일주일에 단 한번 방송하는 할머니의 최애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TV 에서는 옛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흘러 나오고, 목소리가 좋은 베테랑 아나운서는 해외동포들의 신청곡과 함께 그 사연을 소개한다. 매년 명절 때면 반복되는 방송 포멧이다. '아쉽네. 지금 껏 방송했다면 나도 손편지 사연을 보내 보는 건데..' 또 스스르 웃음이 나온다. 안방 채우던 따스한 소음들이 그리워진다.
오늘 나는 10살된 딸과 함께 도마에 밀가루를 바른다. 그리고 길쭉하게 만 밀가루 반죽을 하나 씩 똑똑 떼어내어 그것을 다시 손바닥에 놓고 동그랗게 굴린다. '반죽의 정량을 아는 자' 만이 잘 해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내 일인 것이다!
그리고 내 첫 제자는 작은 손으로도 제법 만두피를 잘 밀어낸다. 난 그걸로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모양이 괜찮은 게 이상하게 낯설다. '전에는 터트려 버리기 일쑤였는데, 언제 늘었을까?'
이 막내 손녀는 이제 훌쩍 자라 만두빚는 솜씨도 예전만치 남부끄럽지 않다. 세월이 빚어낸 만두인 셈이다.
"이건 좀 괜찮지?"하고 물어도 확인해 줄 스승님이 안 계신 아침이다. '오래 오래 살아 너 시집갈 때 냉장고 해주마'던 굳은 약속도 이젠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불현듯 궁금증이 생긴다. '할머니가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나의 호랑이 할머니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얼른 팔을 걷어 부치고 같이 자리에 앉아 빚으셨을게다. 그리고 힘차게 잔소리를 시작하셨을 것이다.
만두를 빚는 동안 증조할머니의 얼굴도 모르는 어린 딸에게 옛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의 엄마의 아빠의 엄마와 그 손녀의 이야기를..
이제 호랑이 할머니의 '만두 피 밀기 노하우'를 아는 것은
세상에 너와 나 둘 뿐이란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손녀가 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