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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Oct 25. 2023

소설가 이창동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이창동의 <박하사탕>은 그의 소설처럼 챕터별로 구분되어 있다. 1장 〔야유회〕에서 김영호=설경구가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친구들 앞에서 부르는 함중아의 「나 어떻게」는 거의 절규에 가깝게 들리는 반면 마지막 7장 〔소풍〕에서는 80년대 대학생들 간의 정다운 돌림노래로 들린다. 같은 곡이지만 챕터별 정황과 맥락에 따라 멜로디의 뉘앙스, 더 나아가 곡이 전달하는 주제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밀양>의 종교집회에서도 반복된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목회씬의 배경음으로 삽입되는 순간 신을 찬양하는 신도들의 성스러운 내면이 대중가사에 의해 침식되는 것이다. 이것은 시청각의 분리를 전제로 한 영화 예술의 형식적인 측면을 노출하면서도 극적인 대비를 가져온다. 이창동의 영화에서 음악은 등장인물의 내면에 보조를 맞추는 대신 그러한 인간의 내면성을 의심하는 일종의 고문기계다. 그러나 이것에 의한 아이러니는 외화면의 비가시적인 장 안에서 일견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이 소설가 이창동의 ‘픽션’이 위치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김영호와 순임=문소리가 결별한 이유에 대해 무지하지만 적어도 서사적인 차원에서는 (외화면의 비가시적 영역을) 상상할 수 있다. 이때 관객의 머릿속에 소환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픽션으로서의 텍스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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