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가 온다

책리뷰

by 사람

<휴민트> 봤다. 전통 칼춤에서 유래한 조폭 사시미 액션에서 서구식 권총 액션으로의 가열찬 한 걸음을 잘 봤다. 박정민 죽는 장면은 너무 신파처럼 느껴졌고, 여성을 다루는 방식도 여전히 짜치긴 했지만 말이다. 조인성의 경우 너무 잘 생겨서 기존까지는 표정연기가 좀 평면적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눈빛을 장전하고 나왔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면 액션의 완성은 눈빛과 표정이 아닐는지. 때릴 때도 쾌감이 있었지만 조인성이 두들겨 맞을 때도 도파민 뿜뿜이었다.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의 얼굴은 일종의 탱탱볼 아닐까.


물론 <휴민트>는 찬욱박의 <헤어질 결심>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소실점에 위치한 원근법적 영화이다. 조인성과 박정민은 신세경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그어진 두 개의 선인데(마치 류승완 감독이 <이퀄브리엄>이나 <히트>에 다가가듯이), 이 선들의 관계가 평면적이어서 다소 아쉽긴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대립과는 무관하게 두 인물 간의 긴장과 갈등은 일순간의 오해였다는 형태로 곧장 해소되며, 급기야 신세경을 중심으로 남북한은 하나가 되었다. 물론 신세경의 외모는 이를 납득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가 등장하면서 (특히 하얀옷 입은 후반신)액션영화에서 뮤직비디오로 장르가 전환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조성모의 <아시나요>라는 뮤비가 떠올랐다. 어렸을 적 이 영상을 보면서 방구석에서 펑펑 울었는데, 다시 보니 베트남전의 역사적 배경은 망각되고, 뜬금없이 신민아(베트남 여성)와 조성모(한국 군인) 사이의 신파만 둥둥 떠다녔다. ‘정치적인 것을 미학적으로 다루는 것은 파시즘이고 미학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뮤비는 파시즘적인 영상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파시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카르타가 온다>와 같은 책을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자, 그럼 이 훌륭한 책을 읽어보자.


5장에서 7장까지는 브라질의(바르가스와 장구)과 인도네시아(수카르노)의 좌파 정부의 몰락을 다룬다. 비극의 첫 번째 주인공은 브라질 대통령 장구(주앙 굴라르)인데, 1955년 당선 후 토지 개혁, 문해 프로그램 등 ‘기본 개혁 방안’(P.169)을 범국가적으로 추진한 인물이다. 물론 워싱턴은 이러한 좌파적 정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이들의 아바타 역할은 미국의 국립 육군참모대학교를 모델로 한 고위급 군사학교(ESG)을 근간으로 한, 브라질 군부에게 지정되었다. 여기에는 냉전 이전에는 제공되었던 차관(장기 대출)을 거부한 미국에 대한 보복성 의도가 다분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그것을 반공주의로 치부했고, 여기에는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를 설립하려던 브라질 정부의 국유화 정책이 민감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냉전 시대의 미국의 관점에서는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보였다. 브라질 입장에서는 미국과만 수교하라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 아닐까. 예컨대 미국은 의처증을 가진 히스테리적인 남편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의 적확한 예인 듯하다. 쿠아드루스는 ‘어째서 미국은 자기들은 소련 및 위성국들과 무역하면서 브라질은 미국하고만 교역하라고 하는 것인가?’ 라고 물었다”(P.168)


비극의 두 번째 주인공은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수카르노다. “인도네시아 정치의 세 기둥은 (...)PKI=인도네시아 공산당, 수카르노, 군부였다.”(P.195) 이 중 PKI는 연계된 조직 회원까지 포함하면 1억 인도네시아의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었다. 하지만 선거가 없었기 때문에 PKI는 실질적 권력까지는 지니지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5.16 군사정변과 12.12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군부라는 ‘말馬’을 누가 움직이느냐에 따라 권력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인플레이션과 국제 채권단(IMF 등)의 대출에 의존한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빈곤 때문이었다. 미국은 돈줄을 쥐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해당 국가의 군부를 움직였다.


여기서 시점을 1996년으로 전환해서 1960년대 인도네시아 상황을 대한민국의 IMF 경제위기에 대입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1960년대 초반부터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고 미국과 그 문제를 계속 의논하고 있었다. (...) IMF는 인도네시아에 구조조정과 다름없는 요구 조건들, 곧 비용삭감, 수출용 원재자 생산 확대, 통화 평가절하, 재정 긴축, 정부 보조금 중단을 제시했다.’(P.201) 물론 이는 영국의 말레이시아 연방안에 대한 ‘콘프론타시’와 같은 수카르노의 강경 노선과 대립했지만,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원조를 약속받’는 대가로 그는 결국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한 구조조정과 일자리 부족 현상은 막달레나 같은 인도네시아의 농민 가족 출신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막달레나는 일자리가 부족한 고향을 떠나 자카르타 내 티셔츠 공장에서 일했고 공산당 연계 노조에 가입한다. 그리고 케네디의 후임자 린든 존슨이 강경 정책으로 인도네시아를 대하기 시작했다. ‘린든 존슨은 영국과 거래를 했다. 전운이 고조되던 베트남에서 영국의 지원을 받는 대신 미국은 (수카르노가 반대했던)말레시아 연방안을 지지하기로 했다.’(P.207) 이로써 수카르노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더 과격해지는데 ‘다른 제3세계 국가의 친구들마저 그가 너무 막 나가고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P.202)


이후 벌어진 일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PKI 쿠데타의 불발이야말로 인도네시아에서 정치적 물결의 방향을 반전시킬 가장 효과적인 방안일 것이다.’(P.212) CIA는 1964년 싱가포르에 ‘정치전략국장’이라는 직책을 신설했고, 사실이 아닌 선정적인 루머를 인도네시아 및 국제 매체를 통해 퍼트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위에서 말한 브라질에서도 비밀작전을 펼쳤다. ‘공산주의는 악마나 용, 뱀, 염소 같은 악마의 짐승을 이용한 순수한 악이나 흑마술과도 자주 연결되었다. 성적 도착이나 일탈과 연관성이 있다는 식의 암시나 노골적인 묘사도 흔했다.’(P.178)


마침내 CIA가 원하던 PKI 쿠데타의 불발(9월 30일 운동)이 일어났다. G30S는 인도네시아와 수카르노 대통령에 맞선 사악한 계획을 모의하던 최고위 장교 일곱 명의 집에 찾아가 체포했다고 발표했다(1명은 놓쳤다). 진상이 파악되기 전 나머지 6명의 장군들은 하룻밤에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수카르노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 혼란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12시간 만에 쿠데타는 진압되었고 이제 우파 장군 수하르토가 이끄는 군이 나라를 통제하게 됐다.’(P.220)


수하르토는 CIA로부터 우호적인 반공주의자로 분류되었던 장군이었다. 권력을 차지한 후 매체를 장악하고 이번 쿠데타의 배후에 PKI가 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수하르토와 그의 부하들은 공산당이 장군들을 할림 공군기지로 데려와 타락하고 악마적인 의식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여성운동단체 그르와니 회원들이 벌거벗고 춤추며 장군들을 난도질하고 고문하여 성기를 절단하고 눈알을 뽑아 결국에는 죽였다고 했다.’(P.227) ‘수하르토가 퍼트린 이야기는 인도네시아 그리고 전 세계 남성 일반의 마음속에 있을 가장 어두운 두려움과 편견을 건드린다. (...) 이 이야기와 브라질의 인텐토나 코무니스타 전설이 닮은 정도 또한 놀라운 수준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에서 공산주의자 군인들이 잠자는 장군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전설에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아 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에서 수하르토 장군은 좌파 군인들이 한밤중에 장군들을 집에서 끌어내 칼로 서서히 죽였다고 말했다.’(P.229) 그리고 100만명이 ‘실종’되는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경찰서에서 경찰들은 막달레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막달레나가 공산당 연계 여성단체인 그르와니 회원인 것을 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막달레나는 아니라는 말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경찰들은 막달레나가 자카르타에 있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니까 그 살해 현장에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P.237) ‘그리고 종국에 미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아주 큰 승리였다. 역사학자 존 루사는 이 승리에 관해 거의 하룻밤 새 인도네시아 정부는 냉전에 대한 중립과 반제국주의를 외치던 강력한 목소리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조용히 순응하는 동반자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 그러나 어째서 국제 언러과 미 국무부에서 이 승리가 비무장 민간인 대량학살을 통한 성취라는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을 국무부의 하워드 페더스필이 완벽하게 요약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인 한, 가축처럼 도살당한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