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단상
책이 되어 돌아왔다
서점에 간 지인들과 출판사 실장님이 보내주시는 사진만 구경하며 거의 열흘을 보냈다. 저자라고 표지에 인쇄된 것은 분명 내 이름이었으나 왠지 남의 책을 보고 있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 꾸러미를 부친 것이 열흘 전, 비행기에 실려 파리에 도착한 것이 6일 전인데, 소포는 공항 근처 보관소에서 며칠째 움직이지 않았다. 우체국 배송추적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고침 하고, 우체국 상담원에게 매일 아침 항의 전화를 하기를 나흘째. 결국 운전사 파업으로 운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상담원의 한숨 섞인 고백을 듣고, 그렇다면 퇴근 후 직접 찾으러 가겠다며 구글 지도를 검색하며 우버택시를 알아보던 차였다. 도둑 맞거나 파손되었거나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슬슬 밀려오면서, "살려만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는 심정이었다. 출간까지 우여곡절 기다림도 길었던 작품이라서, 책이 나왔음에도 손에 닿을 듯 말 듯 심장 쫀득해지는 상황이 되니, 참 쉬운 게 하나도 없는 이 책과 나의 인연을 한탄하기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니 수백 번도 더 돌려 봤던 머릿속 시뮬레이션대로 라면, 책을 받아 드는 그 순간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야 마땅했지만... 무슨 일인지, 그토록 보고 싶던 나의 첫 책이 눈 앞에 놓여있는데도, 그토록 갈망하던 그 순간이 펼쳐졌는데도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과 두 주 전까지도 고치고 또 고치던, 새벽녘 잠결에서까지 곱씹어보던 문장들이었는데 막상 마주한 책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 밤, 책장에 나란히 놓인 스무 권의 같은 책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였다. 책 속을 들여다보는 게 두려웠다. 나는 대체 뭘 쓴 걸까? 사람들은 뭘 읽고 있는 거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려왔다.
그렇게 며칠이 걸렸다. 책의 실물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한 문장 한 문장 다시 읽어볼 수 있기까지.
오랫동안 다듬고 문질러 밀어 보낸 나의 생각들이 이렇게 예쁘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책이 되어 돌아온 거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분명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해지는 삶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왜 굳이 "글을" 썼을까? 아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는 왜 책으로 쓰고 싶었을까.
모든 것은 결국 "말 걸기" 였으니까.
다른 이유가 뭐가 있을까. 결국 소통의 욕구다. 혼자만의 굴 속에서 생각을 퍼내어 문장으로 만들고 다듬고 고치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든 저자들의 마음은 결국 그게 아닐까. 그냥 흩어지고 마는 말이 아니라, 보다 견고하고 섬세하게 나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고 나누고 싶다는 욕심.
출간 후 두 주가 지난 지금 느껴지는 가장 큰 감정은 사실 당혹스러움이다. 결국 모든 것은 소통의 열망이었다는 결론이 무색해지도록, 생각보다 독자의 반응을 느끼기가 힘들어서다. 책의 감상 방식은 영화와는 달리 너무나 사적이고 내밀하니까. 짧고 직관적인 소통이 주가 되는 시대에, 긴 글은 잘 읽히지도 않는 시대에 책을 썼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막막함일 수도 있겠다. 하여, 유리병에 메시지를 담아 바다에 던져 보낸 기분으로 나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영화와 책
영화를 만들던 시절, 혼자 하는 시나리오 작업 기간은 외로움과 불안감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이후 촬영과 후반 작업에서 이루어질 많은 만남들과 거기에서 탄생할 나를 뛰어넘을 기적들에 대한 희망을 부여잡고 버텨냈었다. 하지만 그 제작과정은 정작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거기엔 예상치 못했던, 빡빡한 일정과 변덕스러운 날씨와 인간이므로 지쳐가는 스태프들과 또 인간이므로 자기 세계가 이미 확실한 배우들이 있었다. 그리도 꿈꾸었던 나의 그림은 시나리오에만 머물렀고 실제 제작과정은 이를 현실과 타협해 나가는 일이었다. 결국 그 현실과 꿈 사이의 적당한 지점을 보다 창의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연출가의 능력이었다. 그 과정을 지나는 일이 초짜 연출자로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내내 생각했었다. 그토록 외롭고 두려웠어도, 혼자서 모든 상상이 가능하고 맘껏 뛰어놀 수 있었던 초반의 글 작업이 실은 가장 황홀했다고.
다시, 그 고요한 열망 속으로
잊고 있던 영화 작업의 기억이 요 며칠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요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데 필수적인 이 모든 과정을 다 지나고 보니,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것은 광활한 원고 속에서 뜨거웠던, 그 글감옥의 시간이었다는 생각. 겉으로는 고요한 적막이어도, 내 안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과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열망과 절박함으로 그 어떤 토론장보다 치열했던 그 시간들이 가장 황홀했었다는 그런 생각.
결국엔 망망대해 속 작은 유리병 하나를 띄우는 일일 뿐이라 해도, 그러니 나는 다시 새벽의 고요한 책상 앞에 앉기로 한다. 그것만이 결국 당신과 만날 수 있는 나의 뜨거운 우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