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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Feb 13. 2017

고독한 사람들의 식탁

그날 밤, 중국집 제왕의 코스 

여느 때처럼 깔깔대며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지하철이 서고 바로 앞에서 문이 열렸을 때, 친구가 하던 말을 멈추고 갑자기 얼어붙었다. 친구의 시선은 우리가 내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지하철을 타려던 중년의 프랑스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아는 사람이야? 하며 친구를 보다가 다시 보니, 그 남자도 친구를 보며 굳어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며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죠?” “네, 잘 지내요. 잘 지내죠?” 그리고는 잠시 어색하고 긴장된 침묵. 남자는 어느새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려 문을 등지고 서있었다. 얼굴의 미세한 잔주름들이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렬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보던 남자는 그제야 발견한 듯 나를 힐끗 보더니 “커피 한 잔 하고 싶은데 바쁜가 보내요” 했다. 친구는 갑자기 당황해서는, “네, 오늘은 안 되겠어요. 안녕히 들어가세요.” 하며 남자에게 얼른 타라는 손짓을 했다. 문이 닫힌다는 알림 벨이 울리고 있었다. 친구는 서둘러 몸을 돌리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명랑하고 장난기 많던 친구가 갑자기 어른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두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내게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으면 아마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하는 친구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순간 마음에 스치는 서운함 같은 건 표시를 낼 수도 없었다. 나 또한 추억과 기억 사이에 끼워놓고 혼자서만 살짝 들춰보는 내밀한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어쩌면 꺼내놓는 순간 다시 그 시간을 겪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친구가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곳은 몇 해 전 겨울, 퐁피두센터의 카페였다. 

그 카페는 당시 나도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실내였지만 미술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이 있기도 했고, 한번 자리에 앉으면 방해받지 않고 오래 있을 수 있는 구조여서 공부를 하거나 작업을 하기에는 최적의 카페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학교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텅 빈 도시에서 우리와 같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남자 친구의 부모님 댁에 놀러 가 있었다. 친구는 사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습관처럼 그 카페에 갔고, 텅 빈 카페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그 날,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친구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시작된 대화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남자는 현재 파리의 한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고, 한국 문학, 미술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아서 두 사람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크리스마스 방학인데 파리에 남아있는 쓸쓸함에 대해 친구가 이야기하자, 남자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너무 순진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일종의 연대감 같은 거였다고, 이성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친구는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는 사람과 대화를 해 본 게 너무 오랜만이었으니까. 어쩌면 뭐라도 잡고 싶은 절실함이었는지도 모르지... 한숨을 실어 덧붙이면서.    


외로움에 대해서라면,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표현할 말을 고르기도 전에 매번 먼저 압도되고 마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내게도 있으니까. 친구의 말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할 일이 너무 없어서, 길을 걸으며 내내 혼잣말을 하고, 받으면 부담스러울 줄 알면서도 온종일 긴긴 이메일을 쓰던 시간들. 유일하게 하는 말이라고는 봉주르뿐이었던 하루들, 인적 없이 적막한 주택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으로 노을 속을 걸으며, 어차피 또 혼자일 기숙사 방에 들어가던 저녁들이 모두 한꺼번에 떠올라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던 그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끔찍한 마음에 그냥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있고, 거리엔 오로지 이방인, 관광객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만 나와 있는 날. 그 두 사람은 퐁피두 센터 앞의 광장에서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청바지에 코트만 걸쳐 입고 나온 친구는 텅 빈 광장 저 끝에서 걸어오는, 양복 입은 남자를 보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예감을 했다고 한다. 그 예감이 맞았음을 확인해주듯 남자는 친구를 보자마자, 오, 아름다우세요, 칭찬을 했다. 

멋진 곳에 가고 싶지만, 오늘은 어디든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남자는 괜찮다면 본인이 자주 가는 훌륭한 중국식당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프랑스 식당은 문을 닫았거나 예약이 끝났고, 그 밤 크리스마스와 상관없이, 평소와 같은 메뉴로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특별히 갈 곳 없는 이민자들뿐이었을 것이다.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이 들어가자 구석에 앉아 졸거나 낱말 맞추기를 하고 있던 주인과 종업원들이 일시에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남자를 잘 아는 듯 곧바로 익숙한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남자는 그 식당에서 가장 비싼, “제왕의 코스”를 먹자고 했다. 

어차피  세트 하나의 가격이 30유로를 넘지 않는 학생 식당 정도의 곳이었고, 그래도 크리스마스였고, 어쨌거나 남자는 양복까지 차려입고 나왔고... 여러 가지 상황 상 왠지, 그냥 단품을 하나 먹고 헤어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건 왠지 너무 매정한 일 같아서 친구는 그러자고 했다. 

제왕의 코스는 4가지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왕”이 먹는 음식이라지만, 실은 어디에서라도 먹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음식들로 구성된 4가지 코스였다. 전식으로는 북경 수프와 게살 수프 중 선택할 수 있고, 소고기 볶음, 해산물 볶음, 오리 고기, 생선 튀김 중 하나와 사이드로 볶음밥이나 흰 밥, 야채 볶음, 볶음 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본식, 그 뒤로 디저트였다. 이에 더해 차 혹은 와인 한 잔의 음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단골손님답게 그는 익숙하게 주문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잠시 음식을 기다리며 와인을 홀짝였겠지만, 이미 준비된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덥히기만 하면 되는 그 식당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는 그 날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지금도 그 식사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몇 가지 순간이 있다고 했다. 식사 중간, 잠시 자리를 뜬 그가 종업원들에게 가더니 함박웃음을 띄며 무슨 이야기를 했고, 일제히 종업원들이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친구를 힐끗힐끗 보며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당황스럽고 또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리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기억은 그날 밤 디저트로 먹은 파인애플 튀김이었다.

 동그란 통조림 파인애플 조각에 밀가루를 입혀 튀겨 내 온 파인애플 튀김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뒤늦게 뿌려진 설탕가루는 전혀 녹아들지 못했고, 시큼한 파인애플과 두꺼운 튀김옷, 한 입 베어 물때마다 흘러나오는 기름과 입안에서 꺼끌꺼끌하게 돌아다니는 설탕가루는 제각각 형편없는 상태로 겉돌고 있었다. 그 튀김을 묵묵히 먹으면서, 친구는 그 날의 만남을 후회했다. 


그 후, 식당에서 나온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운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은 시간, 남자는 조금 끈질기게 그 밤을 연장시키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그 크리스마스이브를 좀 더 밝히고 싶어 했지만, 친구는 친구대로 그 밤을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가서 술 한 잔 하자는 제안도, 그게 싫다면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제안도 모두 다 단호하게 거절하고서 친구는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이야기하지 않은 그날의 풍경에 내 마음대로 빠진 조각을 맞추어보자면 이렇다. 

아마도 친구는 잔뜩 흥분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눈 앞의 남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등 뒤로,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졸고 있던 주인 여자를 보게 되었을 것이고, 그 위로 쏟아지고 있는 창백한 형광등 불빛이, 그 빛을 받고 있는 그 공간의 모두가 애처롭게 느꼈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 밖에서 퐁피두 광장의 고요를 느꼈을 것이다. 아침, 저녁 구분 없이, 어떤 날씨에도 늘 북적이던, 그 광장의 본 적 없는 적막함을 느끼면서, 어쩌면 친구는 무의식 중에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정말 외로운 밤이라고. 함께 있어서 이렇게 외로울 수 있다니, 하고.  


이후 남자는 이틀, 삼일에 한번 꼴로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친구는 매번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몇 주 동안이나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보면서, 친구는 점점 화가 나더라 했다. 그 정도의 신호를 보냈는데도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가. 아니, 아무것도 없었던 이 정도의 만남이 이 사람에게는 왜 이토록 간절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애초에 미안했던 마음도 차갑게 식어갔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쯤 후, 여전히 받지 않는 친구의 전화에 그는 처음으로 음성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매번 바쁜 일이 끝나면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해서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고, 계속 나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처음부터 얘기해줬으면 좋지 않았겠냐고,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니라고. 


그 차가워진, 상처받은 목소리를 듣고서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면서 친구는 말했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사나, 하는 생각을 했어.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나가서 괜히 기대하게 만들고 후회를 하고... 

그런데 나는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싫었을까? 혹시 그날 그 식당이 아닌 다른 좋은 곳에 가서 식사를 했다면, 그랬으면 좀 달랐을까? 친구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고독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그리고 어떤 이에게 그 고독은 양지에서 온 누군가의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늪과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자신의 고독을 비추는 비슷한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더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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