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프랑스 스타트업의 대박 아이템
기차역 대합실에 희한한 기계가 놓여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문학작품이 나왔다.
일명 "짧은 이야기 배급기" Distributeur d'histoire courte 라고 했다.
1분, 3분, 5분의 버튼 중 하나를 누르면 선택한 독서시간에 맞는 길이의 이야기가 영수증처럼 길게 흘러 나왔다. 종이의 맨 위에는 작품의 장르와 제목, 작가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는 한 편의 작품이었다.
어떤 작품은 농담같고, 어떤 작품은 한 편의 짧은 로맨스였으며, 또 어떤 버튼에서는 한 편의 시가 흘러나왔다.
이 기계를 발견했을때 가장 놀랐던 점은, 나름 수준있는 이 글들이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들의 창작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무료라는 점이었다. 기계는 프랑스 철도회사 SNCF가 구매해 설치한 것인데,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읽을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무명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는 셈이었다.
승객 입장에서는 열차를 기다리며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의미있게" 보낼 수 있고, 철도회사 입장에서는 예술작품 배급과 후원이라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으며,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엄청난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 무료 배급기는 한 출판사의 스타트업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아니 정확히는 브런치와 유사한,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회사가 보다 많은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위해 이런 "배급기"를 구상하면서 시작됐다.
이 기계와 그 안의 이야기를 공급하는 회사인 Short Edition 은 프랑스의 소도시 그르노블에서 글쓰기 플랫폼을 운영하던, 일종의 출판사다. 작가로 등록된 사람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리면, 회원들이 읽고 점수를 매기고 추천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회사의 에디터들이 좋은 글들을 골라 온라인상으로 혹은 팟캐스트로 혹은 종이책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공급하는 사업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 회사의 설립자 중 한 명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일종의 " 단편 소설 자판기"를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농담처럼 이야기했고, 장난처럼 만들어 본 이 "이야기 무료 배급기"에 그르노블시의 시장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출판사는 그르노블 시와 협약을 맺고 도시의 곳곳,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시청, 관공서 등의 대합실에 "이야기 배급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에 프랑스 국내 언론은 즉시 관심을 보였고, 급기야 해외 언론까지 나서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뉴요커에 실린 기사를 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연락이 왔는데, 연락을 한 이는 무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본 영화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 작은 회사에 직접 연락해 기계를 주문했다.
다음은 이 출판사의 설립자가 코폴라 감독의 메일을 받고 미국에 가서 그를 만나 기계를 설치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0Vf30w2yZg
이 영상 속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단편 문학은 영화를 구상하는데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된다며 이 기계에 관심을 갖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판기로 과자, 콜라, 커피가 아닌 예술 작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그 아이디어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기계에서 공급되는 작품들은 모두 Short Edition 에디터들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고, 각 작품은 약 10 유로 내외의 고료를 받는다고 한다 (아주 작은 금액이지만, 여러 작품이 선정된 작가들도 많고, 무엇보다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는 작가들이 많다고 한다).
2015년에 시작된 이 배급기는 현재 프랑스 전역 100여군데 이상의 공공장소, 기차역 곳곳, 버스 정류장, 지하철 역, 쇼핑센터 등등에 설치되어있고, 곧 중국에도 수출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Short Edition 은 현재 14,264 명의 작가와 20 여만 명의 플랫폼 독자 그리고 6 만 여편의 작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공동 창립자 이자벨 플르플레는 이렇게 말한다.
출판시장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실은 종이책은 계속 사랑받고 있다. 유동적인 전자책 시장을 위해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인터넷 상의 공간도 만들었지만, 종이책도 존재한다. 그것이 이 기계의 장점이다. 유동적이면서 종이 인쇄물이라는 것.
우리의 역할은 이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 무료로 이 이야기들을 읽고, 책을 읽고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다
덧붙여,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질 때, 출판사 담당자에게 이야기 자판기 사업의 현황을 메일로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며칠 후, 주황색 우편물이 도착했다. 뒤늦은 새해 덕담을 담은 작은 카드와 함께 부탁했던 자료가 들어있었는데, 이야기 자판기에서 나온 작품의 형태였다. 그들은 부탁한 추가 내용을 기계에서 나오는 작품처럼 만들어 뽑아 보냈는데, 작품이 된 것은 비단 그 모양만이 아니었다.
그 딱딱한 사업 현황은 라임을 넣은 한 편의 시가 되어 있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했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번져가고,
한 세계가 그려지면,
단어들이 줄줄이 솟아오르고, 쓰여지고,
맛깔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한편의 짧은 이야기다
그 길 위에, 배급기가 있다!
자판을 두드리지 않아도, 이야기는 들어선다.
1분, 3분, 5분 사이에서 망설이는 손가락의 압력 속에서
파피루스 종이위에 작품은 인쇄 된다!
수 천 명의 독자를 위해
그리고 수백 만의 독자를 위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