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식사문화
봄기운이 출렁이던 몇 달 전 일요일의 일이다.
날씨가 좋아 점심을 동네의 노천카페에 나가 먹기로 하고 남편과 외출한 참이었다. 12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카페 앞 길목의 30 여개가 넘는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이 썬글래스를 끼고 빼곡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혹시 그 사이에 빈 테이블이 있을까 한참을 샅샅이 살피고 있는데 서버가 다가왔다. 두 사람이 앉을 테이블이 있을까요, 물으니 햇빛과 그늘의 경계에 위치한 구석자리를 가리킨다. “저 자리 아니면 실내 밖에 없어요” 하면서.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서버가 가리킨 방향으로 다가서는데 문득 그 옆자리 테이블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왜 그 한 테이블 만이 비어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녀는 마누엘 발스 전 총리와 그 부인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뉴스가 매일처럼 보도되고 있던 시기였다. 정치 뉴스에서 한참 화제의 중심에 있던 그가 부인과 반려견과 함께 나와 그 사람 많은 카페의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구밀도가 높고 길이 좁은 파리에서는 노천카페의 테이블들도 서로 비좁게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옆 테이블의 대화가 그대로 다 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고기를 썰다가 옆 사람의 몸에 팔이 스치기도 할 정도다.
그날, 총리 부부의 옆자리에서 서로 소금과 후추를 건네고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는 식사를 하면서 나는 너무나 “프랑스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문화를 생각했다.
우선은 어떤 유명인, 연예인을 만나도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상대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려는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다. 그날 식사하는 내내 주변의 손님들이나 길을 지나며 이들을 알아본 그 누구도 총리에게 말을 걸거나, 사진을 요청하거나 심지어 몇 초 이상 시선을 던지며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세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 개인적인 행동에 제약이 많을 총리 부부는 왜 굳이 사람 많은 이 카페의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뛰어나게 맛있는 요리가 있는 곳도 아니고 다른 약속이 있거나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문득 프랑스 사람들이 식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꽁비비알리떼”가 떠올랐다. 꽁비비알리떼 (convivialité)는 사전적으로는 잔치, 공생과 같은 뜻이라고 재미없게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떠들썩한 식사 분위기, 여럿이서 어울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은 의미로 쓰인다. 여기에서 방점은 “여럿이”와 “떠들썩”이다. 프랑스 정부가 업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편찬한 “프랑스의 미식문화”라는 책에도 프랑스 식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이 꽁비비알리떼로 설명하고 있다. 서로의 사생활을 칼같이 존중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왠지 식사도 혼자서 혹은 일행들끼리만 조용히 하는 것을 선호할 것 같은데, 이렇게 여러 명이 모여 화합 하는 식사를 더 즐긴다니 의외이지 않은가? 하지만, 프랑스의 문학과 철학, 예술이 발달한 데에는 카페를 중심으로 한 교류와 토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하는 식사를 “진정한 식사”로 여긴다고 하고, 와인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데 더욱 의미를 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니 프랑스인인 발스 총리 부부도 화창한 일요일 점심엔 집에 있거나 조용한 식당에서 단둘이 식사하고 싶지는 않았나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지만 그들도 사람들의 대화소리를 들으며, 떠들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섞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셀 수 없이 숱한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있을 한 나라의 핵심 정치인이 사람들 사이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 노천카페 한편에 슬쩍 끼어들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