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감기가 뭔지 잊고 있었어.
눈도 코도 귀도 멍하다. 근육이 아프고 뼈도 아프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몸살감기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하며 일어서고 앉는 나를 보는데 머릿속에 지나가는 사진 한 장,
두 손을 앞에 있는 지팡이 위에 올려놓고 단아히 서 계시는 노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아, 그래, 그렇게 늙어야지." 사진 속의 노인의 작은 웃음이 내 얼굴에도 담긴다.
우기가 되고 비가 요즘처럼 본격적으로 내리는 때는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도 잡아야 하고
또 몸에 달라붙는 습기의 느낌이 환상적이라 말할 수 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1월부터 4월까지 우기 기간을 좋아한다.
주변이 좀 더 초록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은 물론이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온 산이 고요함이라는
커다란 바다 속으로 잠수를 하여 황홀하고 신비로운 용궁의 세계에 머물기 때문이다.
억센 바람의 시비도 없고 건너편 산 위 이웃집에서 뭔가를 만들고 고치는 기계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모두 두꺼운 안개에 묻혀버린다.
산은 그렇게 안개라는 잠수함을 타고 심연의 항해를 한다.
오늘의 콜록거림은 몸을 가볍게 대한 결과이다.
해 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어스름한 저녁에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와 살랑살랑 속치마를 흔들 듯 빗 속을 흘러 다니는 하얀 안개에 홀렸다. 그리고 "싸구려 사케 맛도 좋다" 하며 내가 만든 막걸리 잔을 비우며 내 몸이 느끼는 한기를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틀 동안 땀 흘리며 누워서 코를 풀어 댄 화장지만 해도 한 통에 가까우니 몸에 필요 없는 잡것들을 몰아낸 샘이다. 그러니 몸살감기도 그리 나쁘기만 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