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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07. 2023

잘 쓰고 있어요      

feat. 잘 듣고 있어요, 이랑



 쓰는 일이, 쓰려고 자리를 버티는 일이 어렵다. 의자에서 일어난 당신은 어질러진 책상 위 엽서나 일기, 메모를 정리하다가 바닥까지 쌓인 책을 책꽂이에 꽂고 어제 마시다 만 찻잔을 부엌으로 가져간다. 싱크대엔 그런 찻잔들이 잔뜩 쌓여있고 식탁에도 읽다 만 책과 읽지 않은 책, 노트, 펜들이 굴러다닌다. 당신은 그 사이에 낀 명세서를 발견한다. 지난달은 날씨가 더워 에어컨을 많이 틀었나, 전기세가 좀 나왔네. 걱정을 하다 사야 할 목록을 체크하고 난데없이 흰 티셔츠를 다린다. 생각이 무거워지면 누군가는 걷고 당신은 다림질을 한다. 리넨의 주름이 평평히 펴지는 것을 보며 당신은 잘 다려진 옷이 우아하다고 느낀다. 어떤 옷감이든 어떤 패턴이든 매끄럽게 뻗은 천은 그대로 완벽하다. 동시에 당신은 잘 쓰여진 글 역시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글감이든 문체든 상관없다. 앉은자리에서 순간 몰입하게 만드는 글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어느새 당신의 생각이 글로 돌아갔다. 아, 뭔가를 쓰려고 했었지. 당신은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제 당신은 쓰는 일은 어려워요,라고 했다. 문장에 답이 있다. 쓰는 게 일이라서 그렇다. 쓰는 놀이, 쓰는 유희가 아니라 당신에게 쓰는 건 늘 일에 가깝다. 자기 안의 무언가를 끄집어 꺼내는 일이자 날것의 폐부과 살갗을 그대로 내보이는 일. 그 일이라는 낱말을 빼고 다만 ‘쓰기’라고 해본다. 쓰기는 어렵다,라고 말이다.

 최초의 쓰기는 아마도 받아쓰기일 것이다. 우리 엄마, 책상, 지우개, 감사합니다. 타인이 불러준 낯익은 단어와 문장들이 낯선 글자로 형체를 나타낸다. 말로써 휘발되던 사물과 생각들이 백지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받아쓰기는 이내 쓰기에 도달한다. 이름 없이 떠도는 감정에 물음을 던지고 관계를 정의한다. 그렇기에 쓰기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당신은 생각하기를 먼저 한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과 사건, 사물, 언어, 예를 들면 커피찌꺼기가 남은 찻잔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을 연결한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보자. 당신이 어려운 건 생각인가, 연결인가.


 책상 맡에 다시 앉은 당신이 단어, 문장을 꺼낸다. 글감은 늦은 오후의 소나기처럼 쏟아지기도 하지만 땅 속의 매미 유충처럼 의식 아래 잠들어 있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당신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글렌 굴드처럼 키보드를 두드리고 후자의 경우, 아주 어렵고 고통스럽게 문장들을 뽑아낸다. 그렇다. 뽑아낸다. 누에의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조심스러운 행위에 절제와 신중이 배어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간혹 실들은 엉킨다. 실마리는 어디 간지도 모르게 사라져 있고 물레는 부서져 있다. 하수채 머리카락처럼 뒤엉킨 실들만, 그러니까 문장만 당신 앞에 남아 있다. 당신은 생각한다. 없던 것처럼 모조리 지울 것인가 재봉 가위로 서걱 잘라낼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책상에서 일어날 것인가. 쓰기에 반하는 안 쓰기라는 전제는 없다. 당신을 사로잡은 단어나 단상은 당신의 몸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당신의 머리채를 쥐어흔들 것이다.


 다시 어제, 잠시 생각하던 당신은 그래도 잘 쓰고 있어요,라고 했다. 잘 이 그 잘 은 아니지만 어쨌든 잘 쓰고 있다고, 잘 쓴 글은 아니지만 하여튼 잘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 당신이 쓴 글을 읽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코멘트를 달아주는 사람도 있다고, 그 사람은 모든 문장의 끝에 ‘잘 읽었어요.’를 붙인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은 생각했다. 당신은 잘 쓰지 못하지만 잘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 잘 쓰는 수밖에 없다고, 역시 그 잘이 어떤 잘 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쓰다 보면 잘 쓴 글이 나오지 않겠냐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쓰임이 있을지 의미가 있을지 당신은 여전히 모른다.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쓰기로 한다. 당신에게 읽고 쓰는 건 물을 마시고 잠을 자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써봐. 노래해. 피가 혈관을 흐르는 것처럼.

피가 혈관을 흐르는 것처럼 문장은 당신 속에 흐른다. 그것을 당신은 끄집어낼 것이다. 그렇게 일단은 잘 쓸 것이다.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1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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