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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Sep 29. 2023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feat. 봄맞이 - 김목인, 시와, 황푸하


 누가 울면 나도 운다. 이 울음은 감정 전이 이전에 발생하는 정전기 같은 현상으로 순식간에, 참을 새도 없이 일어난다. 버스 옆에 앉은 사람에게서, 티비에서, 버스 광고판에서, 유튜브 쇼츠에서, 걷고 있는 사람에게서. 아무 맥락도 없이 상대의 울음은 나에게 번진다. 그들과 나 사이엔 그 어떤 유대도 없고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진하고 불완전한 마음의 증거일까, 가벼운 연민은 싫은데. 그만해. 이 울음은 너의 것이 아냐.

 나는 쉽게 우는 내가 부끄러웠다.


 엠티였던가, 다 같이 강원도 어디로 갔다. 어린아이들이나 할 것 같은 꼬리 잡기를 다 큰 성인들이 우르르 몰려하다가 술을 마시는 며칠이 이어졌다. 둘째 날 아침인가 한낮인가, 누군가 배경음으로 틀어 놓은 티비에서 특집방송을 했다. 2003년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고, 아니 방화 참사에 관한 기록물이었다.

 화면은 먼저 어느 나이 든 여자의 인터뷰로 시작했다. 여자는 확인하고 싶다고, 자신의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데 혹시 지하철을 탔나 알아보고 싶다고, 만약 지하철을 탄 게 아니면 그냥 실종일 수도 있지 않냐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참사가 일어난 곳이 대중교통이라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힘든 탓에 유가족들은 실종자의 타다 만 유류물로, 혹은 지하철에 타는 CCTV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정말 자신의 가족을 잃은 건지 불안해했다. 설마와 제발이 그들의 입안에서 달그락거렸다.

 사고가 난 지하철의 CCTV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여자는 두 손을 모았다. 아이제. 아이제. 이거 안 탔제. 어느샌가 나도 그녀처럼 바랐다. 맞아요. 아니에요. 아닐 거예요. 가슴은 쿵쾅대고 어느새 여자의 시선이 손가락이 어느 한 점을 가리켰다. 시간은 느려지다 멈추고 곧 여자의 울음으로 터졌다. 아니데이, 그거 타지 마래이. 제발 타지 마래이. **아, 제발, 제발, 그거 타지 마래이.


 숨이 막혔다. 잠시 고개를 돌리고 간신히 다시 티비를 봤다. 여자는 여전히 폐쇄회로 녹화 화면의 작게 움직이는 자신의 딸을 정신없이 손바닥으로 쓸고 있었다. **아, 아이고 내 새끼 **아. 저화질 흑백 화면 속 딸에게 그녀는 울며 빌었다. 타지 말라고, 제발 그거 타지 말라고. 그러면 정말 그녀의 딸이 말끔하게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라도 한 듯 이미 한참이나 지난 기록에 여자는 오열했고 나도 비슷한 얼굴이 되어 갈 즈음 누군가 툭, 티비를 껐다. 막 끓인 라면이 방으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192명의 사람이 죽었다. 김대한이라는 사람은 사회가 싫다고 했던가 자기가 못났다고 했던가 어쨌든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약수통에 휘발유를 넣어 지하철 바닥에 부어대고 불을 질렀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죽고 정작 죽고 싶다던 김대한은 탈출했다. 불이 번질까 봐 어느 기관사는 1 호칸의 문 몇 개만 열고 대피했다던가. 남은 사람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그저 기다렸다고 했다. 119에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빗발쳤지만 유독가스가 퍼지고 두 열차의 철골이 녹아내렸다. 사망자 192명, 실종 6명, 부상자 151명.

 그리고 가족들만이 남았다.


  왜 그렇게까지 번졌을까. 우선 불을 지른 방화범, 아니 살인범은 둘째치고 초반에 열차 간 무선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불이 난 1079호 보다 잘못된 소통으로 멈춰버린 1080호 열차에 불이 번져 더 심한 인명피해가 생겼다. 잠시 뒤 출발 할 테니 조금 기다려주십시오,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말하고 절전되자 자리를 떴다.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레바를 당기면 비상문이 열리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기다리라고 하니 다만 기다렸을 것이다. 당시 열차는 의자부터 바닥까지 전부 불에 타는 가연재 소질이라 화마는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벗어난 승객들은 일찍 내려온 방화셔터 때문에 대피소에서 갇혀 탈출하지 못했다.

 일이 꼬였다는 단순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왜 그렇게 악화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지.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기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왜 자꾸만 반복되는 것인지.


 2003년 2월 18일 화요일.

수능이 끝나고 방학에 졸업 시즌이라 많은 아이들이 동성로에 모였다(10대 20대의 사망자는 82명으로 가장 많았다). 설에 받은 용돈으로 뭔갈 사고 싶었을 수도, 개학 전 실컷 놀고 싶었을 수도 있다. 동성로는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이자 대부분의 일이나 약속이 집결된 곳이다. 높은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에 어린아이와 어른들의 학원과 유흥이 섞여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즈음 나는 늘 뭔가로 채워댔다. 50년대 영화로, 뻔한 유행가로, 나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로 내 시간을 꾹꾹 채웠다. 그날도 대낮부터 시내에 나가 하릴없이 쏘다니자고, 사지 않을 옷도 구경하고 사계절 제철인 과일 빙수도 먹자고, 친구와 약속했던 날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엔 지하철이 없었다. 익숙한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가려는데 버스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어라. 난 내가 탄 버스의 번호와 경로를 확인하고 창밖을 기웃거렸다. 기사는 사고가 있다고, 버스가 서는 정거장이 다를 테지만 그리 멀지는 않을 거라고 했던 것 같다. 전에도 그랬던 적이 또 있었다.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였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 생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원래 내리던 시내의 반대편 정거장에서 내렸다. 훅 끼치는 매캐하고 역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멀지 않은 하늘에 시커먼 연기가 먹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시내를 둘러싼 거리들이 모두 봉쇄되자 아이들은 찻길을 가로지르거나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그냥 걸었다. 무슨 일일까, 불이 났나 봐. 우린 어쩌면 가볍게 생각했다. 차로 가득하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게 다만, 신기했다.


 소방차가 소란했던가, 뉴스에 온통 도배되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망자 숫자가 점점 늘었고 누군가를 찾는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용한 무당은 지하상가와 연결된 시커멓게 그을려진 하수채 구멍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시뻘건 손이 보인다고도 했다. 붉고 시커먼 화염 같은 손들이 하염없이 지상으로 뻗어낸다는 것이었다. 수도 없는 갇힌 마음들이라며 그들은 나오고 싶어 한다는, 무섭기보다 슬픈 얘기를 했다.

 그 후 시커멓게 재로 뒤덮인 지하철 입구를 볼 때마다 우린 어깨를 움츠렸다. 기다리고 남은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들이 되었을 수도 우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무차별적이고 끝도 없는 증오와 폭력, 무책임의 대상이 우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았다.

 

 아직도 중앙로엔 녹아내린 공중전화 수화기가 있다. 아크릴로 가둬 둔 부분의 벽에는 시커먼 재가 남아있고 보고 싶구나, 너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라는 말들이 남겨져 있다. 말보다 한에 가까운 언어가 그어져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재앙의 조각을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기억하자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결코 잊지 말자고. 타인의 고통을 우린 감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으니 다만 기억하는 것으로 애도하자는 것이다. **야만적인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해 제대로 남은 현실을 보고 그날을 인화해 두는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강제로 잘라 끝내버려서는 안 된다. 외면해서는, 그리고 반복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대구에 갈 때마다 기억공간이라 불리는 그곳에 간다.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또 부끄러운 눈물만 훔치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것뿐이다.




*세월호에서도 침몰되기 전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교감과 일부 교사가 학생들에게 한 움직이지 말라는 말은 세어보면 총 23번이었다고 한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 제목은 이성복 <편지 3>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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