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Oct 08. 2023

발코니

feat. My Funny Valentine, Chet Baker



 발코니는 좁은 골목 안 건물 이층에 있는 작은 바 bar의 이름으로 그곳의 사장은 한 달에 한두 번 마음이 내킬 때마다 콰르텟을 초청해 연주를 부탁했다. 정해진 요일 없이 무작위 한 날짜 선정이었지만 한 시간의 공연과 그 사이 조절 가능한 휴식 시간, 쳇 베이커의 곡 하나를 포함한 연주 리스트, 얼마간의 돈과 술 & 음식 무한 제공이라는 조건에 응하는 일일 뮤지션은 꽤 있었고 그들은 메신저를 통해 일정을 조율하고 머릿수를 맞췄다. 저마다의 사정과 서로의 음에 자신을 맞추는 게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내일 밤 여덟 시.


남자는 사장의 지시대로 메신저에 짧은 공지를 올리고 테이블을 닦았다. 끓어오르는 뱅쇼의 불을 줄이고 머리를 매만지다 어제 간 바버샵 나름 괜찮은걸,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일 있어요?


 발코니의 한쪽 벽면, 그러니까 남자가 있는 바를 마주한 정면에는 다양한 크기의 액자와 흑백 사진이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긋지긋한 역사,라고 사장은 말하지만 단골들은 자신의 얼굴이 그곳을 화병처럼 장식하고 있단 것에 괜스레 자긍을 느끼곤 하는 벽이었다. 여자는 그 앞에 커다란 초상처럼 서 있었다. 언제부터 그 벽 앞에 서있었을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던가. 천성인지 교육인지 여자에게는 기척이 없었고 매번 남자는 조용히 놀랐다.


-아, 벌써 여덟 시인가요. 오늘도 바깥으로 드릴까요?

-네. 고마워요.


 울 실크 코트의 끝자락이 살랑이며 여자는 발코니로 나갔다. 이 바의 하이라이트는 이 발코니라고, 그래서 가게 이름도 발코니라고 사장은 얘기했다. 물론 가장 하이라이트는 여기서 거리를 내다보며 피는 담배겠지만, 여자가 담배를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사장은 덧붙였던가. 남자는 발코니에 늘어뜨린 알전구 조명의 전원을 켜고 야외 스피커의 볼륨을 높였다. 피아노 솔로와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별 다른 말없는 연인처럼 속삭이는 곡이었다. 남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여자가 자주 마시는 싱글몰트를 한잔 따르고는 얇은 다크 초콜릿 하나를 챙겨 발코니 문을 열었다. 담배를 꺼내는 여자의 손가락이 빨갛다. 바람에서 벌써 겨울 냄새가 났다.     


-이제 초겨울이네요 정말.

-네, 그런데 아직은 견딜만해요.     


 노랗게 찰랑이는 잔을 받아 들던 여자는 검은색 벨벳 클러치를 열어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남자에게 건넨다. 둘의 얼굴은 가까워지고 붉게 타는 빛이 두 개로 늘어났다. 남자는 가까이 붙은 여자의 점, 한 번 본 사람이면 결코 잊을 수 없을만한 콧등의 커다란 점을 바라본다. 매끈한 도자기에 누군가 성의 없이 찍은 듯한 점. 조물주가 예쁘게 만든 자신의 작품이 오만해지지 않도록 흠집이라도 내려고 한 걸까 그는 생각했다.      


-역시 보기 흉하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눈에 띄어서요.


 남자는 멋쩍은 기색을 감추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닌 게 아니라 여자는 지나가다도 다시 돌아볼 만큼 미인이었지만 그 점은 그보다 더 존재감이 컸다. 어느 얼굴에라도 그런 점이 있다면 돌아볼 만큼, 작지 않은 벌레가 앉았나 싶을 만큼 큰 점이었다.


-이 점을 좋아하던 사람이 있어요. Funny 하다고 했죠. 그래서 제가 좋다고요. 이미 헤어진 데다 나를 만날 때도 아내가 있던 사람인데 왜 그 말이 여태 남았나 몰라요. 이 점이 나를 완성시킨다는 그의 말이요.   


 여자가 길게 담배 연기를 뱉었다. 남자도 같이 연기를 내쉬며 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빤히 그녀의 점을 바라봤다.


-다시 돌아오길 바라시나 봐요.

-글쎄요. 이 점을 없애야 할까요.

-음, 당신은 그대로도 아름다운데 점이야 어떻든 상관없죠.

-어쩌면 Funny라는 말이 좋았던지도 몰라요. 그와 나도 그런 관계였거든요. 굳이 없어도 되는 관계. 그럼에도 붙어서 사람들 눈에 띄던 우스운 관계. 이건 나 스스로에 대한 낙인인지도 몰라요.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인가요.


여자가 말을 마칠 즈음 바의 실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좁은 실내에 네다섯의 손님이 그를 찾고 있었다. 남자는 서둘러 담배를 투명한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럼 들어갈게요. 참, 내일 여덟 시에 공연이 시작하니 오실 즈음 시작할 텐데, 지금 앉으신 자리 맡아둘까요? 혹시나요.

-고마워요. 내일도 밖에 앉긴 좋을 거예요.


남자가 마지막으로 연기를 뱉고는 웃었다. 여자는 늘 그렇듯 다시 혼자 남겨져서 빨개진 손가락 사이의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녀 위의 알 전구 하나가 깜박거리다 탁, 소리와 함께 꺼지고 여자는 작은 어둠에 고요히 잠겼다.




_



이전 05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