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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Mar 30. 2023

죽은 사랑도 사랑의 일부니까요

이주영의 '꽃'을 듣고



 상상해 봅니다. 여자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려 기다리고 있어요. 기타 넥을 쥔 왼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을지도 모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에 빠져 무대 위엔 눈도 주지 않아요. 그래도 여자는 떨리고 맙니다. 단 한 명, 자신의 노래를 들을지도 모를 그 사람이 거기에 있어요. 조명에 눈이 부시지만 오랜 감각으로 압니다. 그는 거기에 있어요. 그를 위해 썼던 가사와 멜로디가 말합니다.

그는 여기에 있어, 확실히.


흠흠, 하고 목을 풉니다. 그러나 심장은 더 미칠 듯이 뛰어요. 그러나 이제는 노래를 해야 합니다. 한참이나 하려던 말이었어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곁을 맴돌던 순간들을 지나 모든 숨겨진 순간을 포함해 꾹꾹 눌러온 말이었어요. 이제는 해야 합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도 참아야 해요. 얕고 길게 숨을 내 쉽니다. 그를 향해 피었던 꽃이 지는 순간에도 그가 있습니다. 농담 같은 운명, 이라 스치듯 생각하며 여자는 눈을 감습니다. 청중이 조용해져요. 뭔가가 달라졌어요. 그도 여자를 바라봅니다. 여자는 알아요. 눈을 뜨지 않아도 알아요. 그래서 시작합니다. 기타 줄을 퉁기기 전에 '내가'라고 말해요. 오래 가둬둔 감정이 두 음절에 풀려 버립니다. 공간과 기타 바디의 울림이 굳어 있던 손가락을 위로해요. 괜찮아, 할 수 있어. 여자는 고백을 합니다. 음을 길게 늘이기도 힘을 빼기도 하며 사랑을 담은 노래를 불러요. 그래요, 사랑 노래. 이것은 사랑 노래입니다. 이미 지쳐 버린 사랑도, 퇴색되어 바랜 사랑도 죽은 사랑도 사랑의 일부니까요. 조곤조곤 혼자 버텨온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엔 '우리'가 없습니다. 오직 '내' 이야기와 '당신'이 각자 별처럼 떠 있어요. 당신이라는 항성을 '내가' 행성처럼 수없이 같은 궤도로 돌았지요. 그랬던 거 알고 있지요, 알고 있지요. 여자는 기타 음에 숨어 몇 번이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좋아했던 거 알고 있지요, 알고 있지요.


 그래요, 저는 그런 광경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이건 상상이 아닐지도 몰라요. 어느 뮤직바의 어두운 무대 위에서 여자는 정말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몰라요. 참고 터지고 져버린 사랑을 어디선가 소음에 섞여 노래 부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사랑 노래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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