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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22. 2023

나의 사랑, 나의 빛

feat. 걷고 싶다, 조용필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손님이 가고 여자는 서둘러 벽의 시계를 확인한다. 열한 시 삼십 분. 마감 시간이 삼십 분이나 늦어졌다. 걱정 마, 되도록 빨리 들어올게. 자신의 말을 기억하며 그녀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몸이 기억하는 노동. 그녀의 움직임에는 어느 잔 생각이나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다. 넓은 스텐 쟁반에 차곡차곡 빈 접시들이 쌓이고 가게 한편에는 술병이 모아졌다. 그러다 누군가의 생일이었는지 바닥에 떨어진 녹아 닳은 초를 줍던 사이 참, 케잌을 안 샀네 하고 여자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시계를 다시 봤다. 아직 문 연 케이크 집이 있을까. 급한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평소 같으면 두 번은 옮겼을 그릇과 병을 한 번에 옮기자고 욕심을 냈다. 아슬아슬하게 쌓인 그릇들이 달각였지만 무사히 싱크대까지 옮겨지나 하는 순간, 챙그랑. 유리의 거친 파열음과 함께 골뱅이가 담긴 접시가 부엌 바닥으로 미끄러 떨어졌다. 하아. 여자는 낮고 긴 숨을 쉬었다. 그러나 오늘은 여전히 가고 있다. 서둘러 앞치마에 손을 닦고는 맨손으로 골뱅이와 유리 조각을 쓰레받기에 주워 담았다.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었고 얼마 전부터 이날은 꼭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얘기했었다. 아이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지난주 아이가 화상을 입는 바람에 휴일을 전부 몰아 쓴 데다 교대로 마감을 지키는 김 씨도 최근 노모가 아파 당분간은 집을 비울 수 없다고 했다.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숨 쉴 공간을 가진 사람들. 그러면서 저마다 자리를 지켜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 이 가련한 사람들. 여자의 생각이 거기에 이르렀을 때 커다란 유리 조각에 엄지와 검지 사이를 깊게 베였다. 속살이 물고기 입처럼 뻐끔 벌어졌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안 되는 날, 뭘 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되는 날. 그러나 이 날도 이십 분도 채 남지 않았다. 피가 슬금슬금 새어 나오는 상처를 지혈하며 방수밴드를 붙였다. 누런 밴드는 남은 설거지에서 상처와 그녀를 지켜줄 것이다. 세상 모든 약한 것을 지키는 건 늘 그렇다. 저도 약한 것, 얼마 안 가 접착이 떨어지고 물이 새고 너덜해지는 것. 약한 것이 약한 것을 지키겠다고 몸을 비틀어 아등바등한다.

 그녀는 유리가 깨진 자리를 한 번 더 쓸고 가스와 등을 마지막으로 살폈다. 다시 긴 숨을 쉬며 오늘의 노동을 끝냈다. 여자는 몸에 붙은 고단함과 피로를 가게에 조금 털어 두고 나왔다. 그러길 바랐다.     


 다행히 집은 걸어서 가까웠다. 그녀는 되도록 아이의 학교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일을 구했다. 많이 컸다고는 해도 아이는 아홉 살이고 아홉은 열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인 데다 집주인 할머니나 윗집 부부가 자주 아이를 챙겨준대도 결국 모든 건 엄마의 몫이다.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 입고 있는 모든 옷, 숨 쉬기 위한 모든 조건은 때로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누운 자리 그대로 죽으면 좋겠다, 소망한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이가 있다. 무수한 실수 가운데 유일하게 빛나는 오류 값. 진창 밭의 오롯한 진주. 여자는 떨어지고 색이 바랜 목련 꽃잎처럼 자신을 여겼지만 아이는 아직 피지 않은 몽우리였고 그건 일종의 그녀의 삶에 대한 위로였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그녀는 온 힘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여자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아이는 곤히 잠에 들었겠지만 오늘 남은 몇 분이 가기 전 다만 아이의 머리칼이라도 쓸어 주고 싶었다. 여자는 좁은 골목으로 꺾기 전 편의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조각 케잌을 샀다.


 여자의 집은 일층이다. 골목 입구에 바로 보이는 어린아이 몸 만 한 문을 열쇠로 돌려 열면 서너 개의 콘크리트 계단 앞 작은 방문이 있고 그 안에는 7평 정도의 방이 있다. 계단 옆에는 아이의 킥보드와 아이가 학교에서 심어온 토마토나 봉숭아, 겹상추 같은 화분들의 자리다. 태양빛이 덜한데도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식물들이 여자는 고마웠다. 물론 아이에게도 그랬다.


 어두운 밤, 여자는 엄마를 위해 아이가 켜놓았을 작은 알전구를 끄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평소보다 문이 무겁게 안 열리나 싶더니 문 바로 앞에 아이가 모로 누워 잠들어 있다. 엄마가 들어오면 깨려고, 잠에 안 들려고 버틴 건지 방안엔 스탠드까지 켜져 있다. 여자는 앉은뱅이책상에 케잌과 가방을 올려두고 아이를 이불 위로 옮겼다.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3킬로 남짓이던 아이는 이제 그녀 몸무게의 반이 되었다. 이미 반쯤 떨어진 밴드가 붙은 손으로 빗을 만들어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아이의 팔뚝을 봤다. 오른쪽 팔오금에 칭칭 감겨진 흰 붕대에 그녀는 명치께가 저릿했다. 팔이 쭉 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의사는 가벼운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어떤 아인데, 이 아이가 어떤 아인데. 여자는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팔은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 했지만 대신 흉터는 조금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꽃처럼 이쁜 흉터면 좋겠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아니 어쩌면 알아서 그렇게 말했다.


 사고는 지난주 월요일에 났다. 주인집 할머니가 비명이 들려 내려가 보니 부엌 온통 물이 쏟아져있고 아이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고 전화했다. 여자는 까던 감자를 내팽개치고 집으로 달려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가게 신발을 신고 숨이 턱까지 차서 아이를 살폈다. 부엌바닥엔 뜯긴 라면 봉지와 불어 터진 면발, 물이 흥건했고 할머니는 아이의 팔을 찬물로 식히고 있었다.

 왜 그랬어. 이제 뭐야. 도대체 왜 그랬는데.

 아이는 라면이 먹고 싶었다고 했다. 혼자서 끓여 먹을 줄도 알아야지, 하고 엄마는 종종 아이에게 시키기도 했고 아이는 간혼 혼자 끓여 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날따라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고, 끓인 물을 버리고 면을 다시 볶아야 맛있다고 여자가 말한 게 기억났다고 했다. 그까짓 짜장면이 뭐라고. 아이는 엄마 미안해, 미안해라고 울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엄마 아파, 나 아파,라고 울어야지. 여자도 화를 내며 울었다. 병원에 갈 때까지 그들은 미안해 미안해 울었다.


 너에게는 세상이 다정했으면 좋겠다.


 여자는 아이를 살짝 끌어안으며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다 그런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 아이들은 엄마를 고를 수도 없는데, 너는 나를 만나 이렇게 힘들어서 어떡하니, 너처럼 예쁜 아이가 나를 만나 어떡하니. 생각은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이러려던 게 아닌데, 아이가 깨지 않게 소리 죽여 울었다. 내년 생일 아니 다음 주라도 어디든 꼭 같이 가자. 우리 함께 걷자. 네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거 다 가고 다 먹자. 우리 그렇게 살자. 여자는 덜덜 떨리는 턱을 간신히 버텨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그때 아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엄마?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아니야, 오늘 학교에서 너무 뛰어놀아서 피곤했나 봐. 먼저 자버렸어.

 잘했어, 잘했어.

 엄마.

 응?

 사랑해. 난 엄마가 내 엄마라서 행복해.      


 여자는 미처 대답도 못하고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러다 나, 도, 사랑해, 하고 간신히 대답하고는 입술을 깨물고 숨죽여 울었다. 가는 숨이 떨렸다. 스탠드의 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아래 아이는 헤헤, 웃으며 여자의 가슴을 파고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두 사람.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어둠이 한참인 밤 두 사람은 온 마음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한 사람은 울음을 한 사람은 웃음을 지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같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의 사랑, 나의 빛.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마워.


 아이는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고 여자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나직이 속삭이고는 함께 잠이 들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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