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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와 ohne

by 윤신
주재료가 없는 불가능한 요리는 결국 주재료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명되었다. 게다가 나는 독일어 메뉴판에서 요리 mit 주재료를 요리 ohne 주재료로 오독하기까지 했다. 내 마음대로 잘못 읽었다. 나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들은 손가락을 씹으며 비아냥거렸다. 자, 마술을 계속해보라고.

분더카머(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윤경희



다른 설명은 없었다. 주석도 번역도. 그저 앞 뒤로 연결된 단어들 사이에 mit와 ohne 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차분하고 낮은 내레이터의 음성 너머 정물처럼 놓인 푸른 눈의 단어, mit와 ohne. 요리와 주재료라는 단어 사이에 배치된 저들은 어떤 의미를 이룰까. 앞뒤에 명사가 있으니 품사는 조사나 전치사가 되려나. 미트와 오너 mit와 ohne. 마치 영화 제목 같아. 그런데 내가 처음 봤던 독일 영화가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über Berlin였던가 노킹온헤븐스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였던가. 실처럼 이어지는 생각 사이 사전으로 알아본 mit는 with, ohne는 without이었다. 단순하고 의외인 의미. 아니 어쩌면 당연한가. 명백한 오독을 위해서는 단어하나가 문맥을 전혀 다른 흐름으로 바꿔야 할 테니.


책의 면을 찍어 독일에서 생활했던 형에게 보냈다. 새벽이었다.

독일어는 악마가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건 형이었던가.


대학시절 프랑스어를 배우다 언어의 근원적인 차이에 머리를 쥐어뜯은 적이 있다.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아닌 각이 다른 시야와 세계를 습득하고 분류해야 하는 감각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바다라는 뜻의 라 메르 La mer. 프랑스어에는 정관사가 세 개로 여성 단수 앞에는 la, 남성 단수명사 앞에는 le, 남여성 복수명사 앞에는 les가 붙는다. 바다는 여성 명사라서 La mer. 그 외에도 la lune, la folie, le jour, le fleuve, la pomme. 그들의 성별이 정해지는 이유나 차이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랑스어 명사에는 여성형이 있고 남성형이 있고 그에 따라 관사는 물론 동사까지도 변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수학 공식의 대입해 미지수처럼 풀어야 하는 언어. 그 한 학기 수업 내내 몰라요 Je ne sais pas만 열렬히 외쳤던 기억이 난다. 숫자도 모르고 계절도 모르고 월요일도 모르고 미래도 모르고.

몰라요. Je ne sais pas.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Je ne sais pas.


그런데 독일어 사정은 더했다. 거기에 중성명사까지 더해진 것이다. 여성형 남성형 중성형. 게다가 명사에 따라 동사가 변형하고 분리되기까지 하는 언어라니. 언젠가 독일은 아기가 태어나도 출생신고서에 바로 성별을 써넣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간성으로 태어난 이들을 위한 배려로, 성별이 공란인 아기는 나중에 스스로 성별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의 정체성은 타인이 아닌 네가 정하도록 하렴, 너의 생과 방식은 네가 살렴, 그런 마음. 물론 악마가 그런 자상한 마음으로 중성형 명사를 만든 건 아니겠지만.

이른 아침 형에게 대답이 왔다.


mit은 3격 전치사, ohne는 4격 전치사, 둘은 격도 다르죠.

mit dir - 너와 함께

ohne dich - 너 없이


3격 전치사와 4격 전치사. 외계에 빙의한 언어인가. 전혀 알 수 없는 문법이지만 그 아래 친절한 예시를 보다 순간, 뭔가가 일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와 함께 mit dir , 너 없이 ohne dich. 우리나라 말로는 어느 다를 것 없이 같은 ‘너’지만 독일어에서는 ‘너’ 마저도 변한다. 나와 함께 있는 너와 나와 함께 있지 않는 너는 다르다. 머리칼도 표정도 옷차림도 웃음도 전부 다르다. 아니 그보다 더 근원적인 뭔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시간과 상황과 상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는 것들, 결국 이 모든 것들. 너와 함께 있는 나와 너 없는 나, 그녀가 혼자 타던 자전거와 그가 이른 저녁 홀로 바라보는 달, 그들이 걷는 한낮의 숲길. 인칭에 따른 동사 변형은 주체가 상대를, 그러니까 곁에 있는 대상의 형태와 상태를 바꿀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변환하고 떨어지는 동사로 나타나고, 그러니 어쩌면 악마는 인간의 그런 세밀한 마음을 잘 알았던 것이 아닐까.

mit dir , ohne dich.


너와 함께인 나와 너 없는 나. 그때마다 나도 다르고 너에 따른 나도 다를, 그대로 시가 될 언어들. 아마 나는 프랑스어든 독일어든 다시 배우려는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그런 언어를 배우고 난 뒤에 사람은 어쩌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다. Je ne sais pas. 결국은 또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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