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의 피날레인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두고 핸드폰의 배터리가 2% 남았다. 손끝에 닿아 사방으로 퍼지는 물줄기와 멈춰 선 대관람차, 햇빛에 녹아 손등에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사월의 하늘, 정원의 튤립밭 사이의 수선화. 정말 저 꽃이 나르키소스의 환생이라면, 그래서 모든 인간이 꽃으로 환생하고야 만다면 나는 어떤 계절의 꽃으로 살고 싶은가 따위의 생각까지도.
나는 습관처럼 모든 순간과 사물을 찍는다. 떨어진 낱장의 벚꽃 잎,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짜증, 에이 집 나오면 고생이야 누군가 슬쩍 흘린 말, 아이의 웃음 그리고 울음,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놀이기구, 시원한 맥주, 쿠로미 인형탈을 쓴 사람의 몸짓, 쉬지 않고 걷고 계속 찍는다. 어떻게든 이 좋은 것들을 다 담겠다는 마음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삼 년 동안 쓴 핸드폰에만 사만오천 장의 사진이 있다.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매일 늘고 있는 상태다. 어떤 날은 백장이 넘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피사체는 주로 내가 아끼는 사람이거나 사물(커피나 책)이지만 때로는 새롭다. 조금 전 양배추와 콩을 사러 다녀왔을 땐 길가 배수구 근처에 잔뜩 쌓인 연분홍의 얇은 꽃잎을 찍었다. 때로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 모서리나 바람에 날리는 커튼을 찍기도 한다. 나에게 시詩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하루에 전화를 하는 경우는 겨우 한두 통, 내 핸드폰은 핸드카메라라 불러도 무방하다. 되돌아 매 사진을 찾아보지는 않지만 꼭 돌아보고 싶은 순간은 어김없이 있고 사진과 영상은 그럴 때 유용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나는 좀 지나치게 찍는 편이다.
그러니 나에게 배터리가 2% 남은 핸드폰, 아니 핸드카메라로 문라이트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보는 것은 엄청나게 아슬하고 불안한 일이다. 다시 되돌아보고 싶으면 어쩌지. 남기고 싶은 시적 순간이 있으면 어쩌지. 퍼레이드를 위해 계단에 앉아 기다리는 지금이라도 어딘가에 충전을 부탁해서 불꽃놀이의 찰나라도 저장해 두는 게 낫나. 야광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앞에서 그래도 산 곁이라 밤의 공기는 차갑구나 저 멀리는 저토록 깜깜하구나 생각하며 갈등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르는 곳과 아이의 춤을 보고 웃다가 옆자리 여자가 밀고 있는 빈 유모차 안의 인형을, 낮은 목소리로 함께 온 남자에게 자신의 아기(인형)가 지금 잠에 들었다고 말하는 모습을, 그렇다면 저 유모차는 빈 유모차가 아니라 저 여자의 아이를 싣고 있는 유모차구나 생각하며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하루를 상상했다. 순간 훅 끼치는 단내를 맡다가 그런데 퍼레이드는 언제 올까 목을 빼면서. 그러다 아, 이 모든 게 실재구나 이 모든 게 살아있다는 감각이구나 물색없이 생각하면서.
관절을 꺾어 로봇 춤을 추는 무용수와 그에게 소리와 갈채를 보내던 관객들, 삼십 분 동안 이어지던 눈부신 퍼레이드, 머리 위에서 터지는 불꽃의 비명과 바닥에 남은 그 잔해들, 꼭 잡은 아이 손의 온기 같은 것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그 순간의 모든 것들.
찰나는 찰나로 아름다워서.
이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단 한 번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배터리도 없었지만 그럴 마음도 조급함도 없었다. 일주일에 몇 번 날을 정해 핸드폰을 켜지 않는 건 어떨까도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시간의 경험이 나에게 준 기쁨을 옮기기 위해서, 대부분의 순간 우리에게는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물론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나는 결국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을 것을 안다. 사진으로도 기억으로도. 나는 평생 편집된 장면과 부분만을 볼 것이고 그중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그 불안에 그렇게도 사진을 찍어댔을 것이다. 사진은 기억보다 더 정확하고 관리하기가 편하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카메라(이제는 대놓고 카메라라고 부른다)를 놓으니 주위가 더 잘 보였다. 작은 화면보다 넓은 시야과 냄새, 어깨에 닿는 촉각, 소리, 그런 것들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터지는 불꽃을 이렇게 온전히 바라본 게 얼마만인지. 작은 빛은 저렇게 멀리까지도 비추는구나 혼자 놀랐었다.
아마 아니 분명 나는 내일도 사진을 찍는다. 가정이나 미래형의 어미는 필요 없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문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작은 옵션이 생겼을 뿐이다. 진짜 중요한 순간은, 꼭 담고 싶은 순간은 나의 오감으로 기억하리라. 그 실재의 세계는 사진이 남길 평면의 세계보다 훨씬 풍부하고 감각적이고 아름다우리라, 하고.
온몸으로 담기, 나의 눈으로 담기.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숨을 쉬다 잠시 멈춘다. 순간을 순간으로 남기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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