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석에게

by 윤신


은석아

눈이 온다


네가 있는 그곳은 한여름인데 여기는 이렇게 눈이 온다 조각처럼 부서지는 얼음의 결정이 소음을 소란한 마음을 빨아들이고 몸을 바닥으로 던진다 벌어진 낮과 괴롭던 며칠의 밤이 언제였나 모르게 고요하고 가만한 눈만이, 그 정적만이 내린다 흰빛이 흰 숨이 흰 망각만이 얕게 쌓인다


우와. 눈에도 소리가 있어

놀라던 너의 감탄 입을 벌리고 동조하던 나의 기쁨

그게 벌써 몇 년이나 지난겨울이라니


참, 어제 소포를 받았다 투명 테이프가 온 테두리를 단단히 감싸 투명한 속도로 투명한 소리로 투명한 냄새로 문 앞에 도착한 하나의 행성이자 하나의 세계 ; 코코블랙의 다크 초콜릿, 검은색 양장 노트, 책갈피, 그림책과 캐러멜 루이보스 티, 겨울나무 향 비누. 무분별한 선택 속 익숙한 취향. 사물에 담긴 다정을 가만히 응시하다 웃다가 운다 적절한 순간에 만난 다정함은 가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워 다정의 껍데기를 벗겨 한 조각씩 베어문다 목구멍으로 다정이 흐르고 꿀꺽

그리고 이내 그것을 삼킨다


다정이 혀로

다정이 폐로

다정이 살갗아래 어딘가로

몸 하나를 그대로 통과해

차가운 공기 안 피어오르는 숨결 사이로

다정이 사방으로 퍼진다


나는 무엇을 너에게 보낼까

어린 동주처럼 눈을 한 움큼 넣을까*

긴 시를 쓸까


은석아

은석아

이름을 부를까


그러나 은석아

모든 것이 정지한 듯

여기에는 그저 눈이 온다

소리 있는 눈이 그때와는 다른 눈이 그만큼의 나이가 든 눈이

이렇게 온다


너에게 가려는 듯 점점 더 거세어진다





*1936년에 쓰인 윤동주의 시 <편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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