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고 흐린 바다에 어선이 서있다. 숲이 푸른 섬과 그 앞에 물결이 이는 대로 흔들리는 배. 가만히 기대서서 어선을 그 흔들림을 보고 있으려니 그 안에 누군가가 보인다. 누워서 팔을 뻗고 뭔가를 보고 있다. 가까운 하늘에서 갈매기 소리가 들리더니 팔이 다시 움직이고 배가 요람처럼 흔들린다. 누구도 깰 수도 깰 마음도 없을 고요. 바다 곁 오월의 아침은 아직 쌀쌀하구나. 어깨를 움츠렸다.
차를 돌려 바다를 향했다. 처음엔 나무들 사이에 차를 세우고 의자를 꺼내 그 앞에 오래 앉아 있고 싶었으나 오늘의 일들이 그곳을 지나치게 했다. 매번 나를 멈추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해야 할 일들, 계획된 일들, 보일 것들, 보이고 싶은 것들. 나를 이끄는 것은 대부분 반대의 것들이다. 의외의 것들, 날씨에 가까운 것들, 보이지 않을 것들, 나만 알 것들. 산 지 얼마 안 된 차의 쌩쌩한 스피커로 아오바 이치코 Aoba Ichiko의 살아남은 우리들 いきのこりぼくら이라는 노래가 나왔고 얼마 전 읽은 책에서는 기적에 대한 글이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너한테 하는지 아니. 너는 기적을 알라고, 너는 매번 기적을 살라고.*
왼쪽으로 꺾어야 할 차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기적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는 바다가 있다.
차를 세우고 정작 할 건 없어 챙겨 온 삶은 계란 하나와 약을 먹었다. 얼마 전 비행기를 탄 뒤로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다. 여행 내내 한쪽 귀로만 소리를 듣고 돌아와서도 한쪽귀로만 생활한다. 그래서 가끔 의도치 않게 큰 소리를 내거나 듣지 못하거나 한쪽의 소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불안해한다. 낮은 파도가 점점 거대해져 나를 뒤집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작은 불편이 내 인생을 꺾어버릴 것 같을 때가 있다.
항공성 중이염입니다. 이거 오래가겠네요.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세 번째 진료를 볼 때도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오래간다는 말은 일단은 끝이 있다는 얘기다.
날이 흐리다. 회색 물감이 얇게 잘못 칠해진 흰 하늘. 빈 공터에 주차했는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카라반이 서 있다. 그 차의 유리창이 환해 안이 다 보인다. 약을 먹고 두리번거리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사람 한 명, 개 한 마리. 사람은 먼바다를 보고 있고 개는 사람을 보고 있다.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여행을 상상했다. 어디를 돌아 여기에 왔을까. 둘은 차 안에 저장한 물을 함께 나눠 마시겠지. 그런데 순간 사람이 나를 정하게 바라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내 차는 까맣게 선팅이 되어있을 텐데도 분명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사람을 봤고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다가 문득 저 사람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만두었다. 그만둔다고 그 사람이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얼마 뒤 그는 개를 데리고 차 밖으로 나가 느린 산책을 했다.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였다. 개가 그의 속도에 맞췄다. 종종 거리며 앞뒤로 풀냄새를 맡다가 다시 사람에게로. 그의 걸음은 특이해서 나중에 보더라도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도 무엇도 모르지만 걸음만으로도 그를 알아보고 지금의 시간을 떠올릴 것이라고. 불현듯 눈이 나쁜 어느 아이가 멀리서 걸음으로 나를 알아보았다는 말이 기억났다. 흐릿하게 잘 보이지는 않아도 나의 걸음걸이가 나를 알아채게 했다고. 언니의 걸음은 몰래 걷는 고양이 같아.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나도 차를 나와 걸었다. 저 멀리 그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기적에 관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고 익숙해져 버린 매일의 풍경**에서 벗어난 것도 기적이라 부른다면 기적이겠지. 왼쪽으로 가야 할 길을 무심코 오른쪽으로 꺾고 커다란 불안을 달팽이처럼 작게 하고 바쁘던 걸음이 느려지고 조급한 욕심이 안도의 숨으로 내려진, 아주 별 것 없지만 특별한.
기적이 있을까. 어쩐지 어떤 일도 기적이라 부르면 기적이 될 것만 같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살아남은 우리들 いきのこりぼくら, 아오바 이치코 Aoba Ichiko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