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쳤다. 펼친 면면마다 좋다 좋아한다 좋겠지 좋아하는 이라는 말이 가득하다. 여름, 숲, 책, 강가, 도서관, 왜가리, 오랑쥬껍질, 목욕탕, 짙은 그늘, 사각사각.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생활은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 책은 여름 내 머문 여행의 기록이지만. 애초에 여행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찬미이지만. 뭐,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아는 것도 좋은 일이지. 팔랑. 책장을 넘기며 좋아하는 계절을 골라 좋아하는 장소에서 실컷 머무는 상상을 한다. 취리히, 교토, 멜버른, 슈바빙, 프라하. 진짜 갈 것도 아니면서 그곳의 날씨, 음식, 동물과 식물, 커피 같은 것들을 찾아보고 고심한다. 꼭 책에 빠져 읽을 때 같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문맥과 다른 공간에. 요즘은 책 읽는 시간이 늘어 진짜 현실과 문맥에 사는 시간은 아마도 8대 2 정도 될 것이다. 아니 거기서 꿈의 시간 1을 빼고 염려의 시간 1, 공상의 시간 2를 빼면 현실의 몫은 4 정도? 지나거나 오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는 시간과 sns에서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시간까지 빼면.
나에겐 얼마의 실제가 남았나.
책의 마지막 두 면은 한 장의 사진이다. 선풍기와 흰 수건, 라무네가 놓인 다다미 방 앞, 반쯤 열린 문 너머로 작은 나무가 보이는. 어쩐지 매미 소리도 들리고 어쩐지 더운 공기가 가득한. 안녕, 잘 가, 하는 인사가 나직이 들릴 것 같은. 그런 사진.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좋아하는 것들이 오래가도 좋겠다. 좋은 것들을 오래오래 두고 보면 좋겠다. 십여 년 전에 갔던 타국의 오랜 찻집이 그대로면 좋겠다. 좋아하는 수영과 요가를 어디서든 오래 하면 좋겠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또 오래 보고 싶다. 좋다는 말을 좋은 만큼 하고 싶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좋아하는 나의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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