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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Oct 24. 2024

다문 입과 벌린 꽃


두 팔이 잘린 맨발의 여인

금빛의 백열등을 후광으로 업고

빗속에 서있다
 

검게 물들어가는

젖가슴과 흘러내린 옷자락,

실컷 울고 난 뒤의 얼굴은 부드러워

무릎아래 핀 붉은 칸나꽃이

침묵한 그녀를 향해 입을 벌린다


아름다움의 끝은 슬픔이라는데

슬픔의 끝도 아름다움일까


상아빛 쇄골을 지난 빗물이 잘린 팔 아래로 떨어져

칸나가 그 물을 마신다

젖가슴 끝에 매달린 물이 떨어진다

칸나가 그 물을 마신다


말이 없는 여인은

땅에서 날 때부터 두 팔이 잘려 있었어

칸나는 얼굴을 붉히며

파초 같은 손을 뻗어 여인의 발등을 쓸었다 얼굴을 비볐다

잘린 어깨는 너무 멀었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같은 말일지도 몰라


빗속 여인의 발에

붉은 꽃물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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