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분신사바

by 윤신



기역 니은에서 시작한 어린 말놀이는

어떤 악의도 부귀도 없이

가벼운 저주를 내리는 것처럼


온 불을 끄고 숨죽여

속삭여야 한다 했다


그래야 귀신이 온다고


붉은 연필을 움켜쥔 작은 손들이 O와 X를 오가며

너 여기 있니


부르면 부르는 대로

온다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지

그게 엄마든 귀신이든

누군가 곁에 온다는 믿음은


얼굴이 지워진 손의 주인과

까맣게 태워버린 질문의 끝


누구는 기절을 했대 또 누구는 눈을 파내어 죽었다던데

납량한 괴담은 날로 늘었지만

니가 있어 다행이야

귀신에게 말했다


깊은 한밤 슬리퍼를 찰싹대거나

마주 서기 싫은 것들 앞에 서야 할 때에도

니가 있어 다행이야


아무래도 혼자인 것은 죽은 것보다 싫어서


귀신아 귀신아 나랑 놀자

입을 달싹였다


연필을 붙잡던 둘은 네가 힘을 줬지, 네가 무섭게 만들지 치를 떨었지만


아닌데, 다행인데

살아있는 것들 죽어버린 것들

모두가 함께라 다행인데


작은 손들에 땀이 찼다

불을 켤까, X를 향했다

너는 늘 여기 있니, O를 향했다


귀신에게 이름을 붙여 오래 같이 놀았다


이제는 잊어버렸지만

잊는 게 잃어버리는 건 아니고

잊었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연필이 혼자 무한대의 기호를 그린다





_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