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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Nov 08. 2024

현재계시록


잘린 혀를 입에 머금고 길을 걸었다    

 

부딪히던 입속의 말을 손가락으로 뽑아내

길가에 또박또박 글을 게웠다     


환 멸 의 새 끼 는 환 상 입 니 다     


지나가던 뱀이 도를 아시나요 라고 물었다

도는 모르지만 나의 죄는 안다고 하자

죄송하지만 죄 따위엔 관심이 없어서요     

눈썹을 올리며 뱀은 작게 웃어 보였다     


흐르는 침 비뚤어진 글씨

길에 누워 우는 엄마     


다가오는 계시에도 잘린 혀는 돋아나지 않아  

우물우물 형태 없는 비명에 웃음을

불완전한 미움과 영광을 담아 노래했다

빠르게 밀려오는 시커먼 구름에 울음이 터졌지만

딱히 이유는 없었다


비가 그치지 않을 것처럼 쏟아졌으나

누구도 우산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물에 둥둥 뱀이 떠다니고     

입안으로 밀어 넣은 손가락에 이빨이 깨지는     

불길한 천성


미워하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멸이라 으쓱대는 어깨가 있었다      


모두가 비를 덜 맞거나 더 맞았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디선가 크게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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