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절한 이후에 기억이 하나도 없다. 동생도 날 비난하려는 내용만 얘기하지 그 정황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나는 묻지도 않았다. 아마 119차를 불러서 날 싣고 대학병원에 데려간 거 같다. 그 대학병원은 내가 정신과 외래진료를 받던 곳이다.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나는 환자복을 입고 병실침상에 누워있었다. 엄마는 아버지랑 고모가 병문안을 왔다고 했다. 시력이 안 좋아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얼굴도 안 보인다.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
고모가 사 온 빵을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병원밥이 나는 입맛에 잘 맞았다. 엄마는 내 곁에서 간호를 했는데 엄마 식사는 챙기지 않고 나 혼자 매 끼니를 잘 먹었다.
어느 날 누워 있는데 내가 왼쪽 고관절 부위에 손을 갖다 댔다. 환자복이 특이했다. 바지부위가 옆으로 틔여있어 끈으로 묶여 있었다. 플라스틱 같은 긴 무언가가 만져졌다. 묶여있는 천으로 된 끈이 아니었다. 난 이게 뭔지 계속해서 거길 만지작 거렸다.
얼마 뒤 난 그 고관절 부위의 빨랫줄 같은 실을 풀러 갔다. 수술은 큰 수술이었나 보다 고관절 부위 세 군데에 칼자국이 나있었고 인위적으로 뼈를 붙여두는 것을 넣느라 깊게 찌른 거 같았다. 실을 푸는 작업을 하는 작업자 2명은 내가 오자 작업할 부위를 "힙"이라고 하며 나를 작업대에 올리고 그 두꺼운 실을 끊어서 내 살과 분리해 주었다. 아프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나는 좌측 고관절 뼈가 부러져 수술을 한 것이었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옥탑방에서 뛰어내려 땅에 부딪혔지만 난 일어나 걸었었다. 나는 계속 믿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사준 태블릿 PC에 동생이 구워준 최신 K-pop을 들으며 병원생활을 보냈다. 이렇게 보면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내가 기절하고 병원에 실려왔을 때 급박했던 것인지 내 팔에 주삿바늘이 꽂혀있고 멍이 들어 있었다. 그때 좀 병원이 무서웠다. 밤에는 자는지 안 자는지 간호사가 돌며 확인을 했었다. 내가 얼추 고관절 골절이 추스러질 때쯤에 그 병원의 나를 담당하던 정신과 전문의가 엄마를 찾아왔다. 이번엔 외래진료가 아닌 폐쇄병동으로 갈 것을 권했다. 그곳에는 노래방도 있고 탁구장도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가는 곳인데 그런 것들을 왜 얘기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옛날처럼 정신과 폐쇄병동이 어두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인 거 같다.
나는 완강히 거부했었다. 이번엔 정신과 폐쇄병동이라니 나는 엄마한테 절대 안 가겠다고 했었다. 나는 여러 사람이 쓰는 병실에서 다친 다리로 춤을 췄었는데 그때 내 옆 침상에 입원한 아줌마가 엄마한테 꼭 폐쇄병동에 가라고 했었다. 아마 내가 아픈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다친 다리로 일어나 춤을 추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거 같았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이트클럽의 영향인지 회식의 영향인지.
나는 수술한 다리의 빨랫줄 같은 실밥을 풀고 나서는 목발을 짚었다. 목발이 어려울 때는 휠체어를 탔는데 휠체어도 내 것이 아니라 무지외반증 수술한 여자애한테 빌려서 탔다. 그때 이종사존여동생이 휠체어를 밀어주었는데 나는 병원을 벗어나 멀리 나가고 싶어 했다.
목발이 익숙해진 저녁에 나는 엄마와 간호사 몰래 병원 밖을 산책했다. 그때 또 이상한 짓을 했다. 그때 어플로 동창들과 채팅할 수 있었는데 나는 동창 중에 어떤 남자애한테 호감이 있었다. 그런 몸 상태에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게 나스스로도 좀 그렇다. 그 친구 성씨가 이씨였는데 나는 병원 밖에 조형물에 이OO이라고 쓰여있는 곳에 입을 맞췄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그랬던 거 같다. 그 아이는 날 좋아할 리가 없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자 병동이 난리가 났다. 내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날 찾는다고 밖으로 나섰고 엘리베이터에서 그 폐쇄병동 가라는 아줌마의 남편인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엄마의 연락처를 물어보았고 나는 말해주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친엄마인 엄마가 날 폐쇄병동에 보내려하는게 이상하게 보여서 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병원은 분위기가 요상했다. 병동이 편안 했었지만 어딘지 새로웠다. 다쳐서오는 새로운 사람들이 넘쳐나며 밥도 먹고 잠도 자니까 편안하게 느꼈나보다. 절대 편안해 할 곳이 아닌데
그 대학병원에 외래진료를 다닐 때 정신건강의학과 분위기가 생각난다. 진료대기하는 의자가 놓여있는 곳에는 창문도 크고 많이 달려 있었다. 정신병원에 다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거 같은 분위기 였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한거 같다. 지금은 칸막이가 생기고 창문도 가려버려서 정신과를 다니는게 흠이 되어 그렇게 해둔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