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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움 Jan 04. 2021

자연에 의해, 자연을 위해

펜데믹 블루, 당신의 안부가 궁금한 날들(1)

“은경 언니, 북한산 갈래요?”


지난봄의 어느 날 친한 동생으로부터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코로나 19가 1단계로 완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도 느슨해졌지만, 섣불리 돌아다니기가 두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등산화가 없다는 핑계로 거절했고, 한 달 뒤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됐다. 예상보다 길어진 재택근무로 지쳐있었고,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았던 터라 돌파구가 절실했다. 그리고 탁 트인 북한산 백운대의 전경사진을 보는 순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려한 산세와 웅장한 암봉에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니, 듣기만 해도 흥미롭지 않은가.


토요일 꼭두새벽 전철을 타자 현실이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산 중턱에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평소 등산을 즐기진 않지만 작년 겨울에 다녀온 한라산 덕분에 오를만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러닝화를 신고 서리가 낀 암석을 오른 건 정말로 미친 짓이다. 나는 결국 정상을 100m 남겨두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만 보내고 천천히 하산을 하는데,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기는 높이였다. 엄지발가락 하나로 조약돌 모서리에 서있는 기분이랄까. 그 이후로는 거의 반 실신상태로 내려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오기인지 용기인지 패기인지 자꾸만 산에 가고 싶었다. 볼을 스치는 찬 공기와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흙 내음 속에서 이른 봄을 느끼며 나눴던 평안한 대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주말마다 서울의 명산들을 오르기 시작했고 관악산, 청계산, 인왕산, 아차산, 용마산, 불암산을 비롯해 13곳 정도를 등정했다. 아마도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평생 산 맛을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 산을 오르면 숨통이 트였고, 시대의 소란으로부터 잠시 멀어질 수 있었다. 심장이 벌떡벌떡 뛸 때 살아있음을,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산의 매력에 빠져 살았더니 ‘취미는 등산’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체력과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자연을 가까이 두자 몸과 마음이 점점 건강해졌고,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가혹하고 지독했던 지난여름, 연거푸 쏟아지는 장마가 모든 걸 흔적 없이 쓸어가 버렸다. ‘인생 덧없다’는 수재민의 인터뷰를 볼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빙하가 녹았고, 쓰레기 섬이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작은 섬나라에는 기름유출이라는 검은 재앙이 덮쳤다. 자연이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라고, 이제 바뀌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보기로 결심했고,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로도 써 붙였다. 마스크 버릴 때 귀걸이 자르기, 일회용 컵 대신 보온병 사용하기,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 사용하기,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포장재 이용하기, 그리고 최근에 시작한 하산 하면서 쓰레기 줍기까지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진득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세상에는 쉽고 간편한 제품과 서비스가 너무 많아서 매 순간 유혹을 참는 게 곤혹이었고, 나는 간사하게도 일회성 행복이란 구렁텅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무엇보다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주변의 싸늘한 반응에 위축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연은 후세대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문장을 되뇌며, 확신했다.


지난 5월부터는 2030 세대 젊은 등산객이 몰리면서 쓰레기 양도 눈에 띄게 늘었다. 거의 대부분 카페, 음식점, 클럽 등 밀폐된 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산으로 발길을 돌린 것 같았다. 우리는 결국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니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연에 의해 살아가면서 자연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는 건 많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가진 게 많지만 나눌 줄 몰랐다. ‘혼자서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하고 방관했다. 나는 환경운동가도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누군가 자연보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등산 호황기가 한낱 유행 거리가 되지 않길, 나와 같이 산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나는 오늘도 자연에 의해, 자연을 위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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