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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n 15. 2021

[일상의 단상]-<가장 마음에 드는 부캐>

*가장 마음에 드는 부캐를 얻었다.*

[일상의 단상]-<가장 마음에 드는 부캐>

*가장 마음에 드는 ‘부캐’를 얻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에 대한 단상*


요즘은 신조어나 줄임말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살면서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더냐?’ 하며 잘 못 알아듣는 말들을 빈번히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대학생인 아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써치해 가며 그 의미를 알아내어 이해하기도 하는데,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에서 ‘팽’ 당하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 나름대로 잘 적응해 어울려 살고 싶은 한 중년 아줌마의 순수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그래도 이런 작은 노력이나마 하며 살아서인지 누구를 만나 대화하든 답답하다는 소리는 안 듣는 수준은 유지하면서 그럭저럭 살고는 있다.


‘부캐’란 말 또한 최신의 트렌디한 신조어로써 원래는 온라인 게임용어라고 하는데, 게임 세계에서 사용자가 본래 사용하고 있던 계정이나 캐릭터 이외에도 새롭게 쎄컨으로 만든 ‘부캐릭터’를 축약하여 ‘부캐’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본캐’가 아닌 ‘부캐’란 의미일 테니 평상시의 본인 모습과는 조금은 다르게 새로운 캐릭터처럼 행동할 수도 있을 터이니, 옛날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를 발견하고 인식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아오느라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홀대했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끌어올려 부활시킬 수도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인 것 같다.


오늘 나는 ‘브런치 작가’라는 참 고마운 ‘부캐’를 얻었다. 마음껏 글을 쓰고 쓴 글을 브런치에 업댓하여 어느 누군가에게 읽혀질 수도 있고 공감받고 소통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선물 받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나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강력한 무언가에 의해 어긋나 버린 운명처럼 정식으로 글을 쓰는 일에 집중해 볼 기회와 경험은 늘 부족한 채로 온전한 내 것이 아니었고, ‘현실 생활인’으로써의 삶에 ‘충성!’하며 살다가 어느덧 반백의 나이에 이르렀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왔다. 살면서 역경이 올 때마다 ‘글’에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럴 때마다 ‘문학’은 나에게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처럼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포근히 감싸주고 보듬어 주기도 하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삶 속에 있었더라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언제나 ‘어쨌든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느라 오롯이 나로서 잘 존재할 수만은 없었던 스펙터클한 삶 속에서 글쓰기의 빈도나 완성도의 굴곡은 있게 마련이었지만, 마치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끝이 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떤 상황 하에서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해서 이어져는 왔다. 하지만 정식 글쓰기에 매진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늘 갈증을 느끼는 가운데 언젠가는 글쓰기에 올인하며 남은 삶을 채워가리라 스스로 다짐하기도 했었다.

한창때는 체력도 에너지도 ‘글빨’도 최고조였던 시절이 있었건만,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부모 형제 케어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 보니 나는 어느덧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고, 이제는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피로하고 기억력도 ‘글빨’도 예전 같지는 않다.


나는 어린날부터 어느 구석에 틀어박혀서 책읽기를 즐기는 아이였고, 초중고 시절의 생활기록부 취미란에는 ‘독서’가 빠지지 않는 데다가 각종 교내외 글쓰기 상을 휩쓸던 전형적인 문학소녀였으며, 여고시절에는 교지 편집장, 대학시절에는 학보사 문화부장을 거친 문학도였다. 그랬던 내가 글쟁이도 국어교사도 언론인도 출판업계 종사자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현실생활인으로서 직장일하고 살림살이하고 아이 키우다 청춘을 다 보내고 어느덧 ‘건강’이 화두일 뿐인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때때로 슬픈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고 ‘누구 자식,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만 살아가게끔 본래의 고유한 나를 무심하게 방치했었던 나의 지난날들에 대해 아쉬움과 후회와 연민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 중에는 최악과 최선과 같이 극과 극의 사안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반백의 나이를 살면서 그나마 얻게 된 ‘개똥철학’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들이 다 나쁠 수만도 다 좋을 수 만도 없다는 진리이다.

최전성기였던 한창때에 비해서는 체력도 두뇌회전도 이른바 ‘글빨’도 모두가 시원치 않아진 현재의 내 상태를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글프거나 비관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내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것만 같이 허덕거려야 할 만큼 높고 험한 산들을 기꺼이 넘어서기도 했었고, 허우적 거리다 빠져 버릴 듯한 고해의 바다를 어떻게 헤엄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할지라도 나는 안다. 내가 그 산의 높은 봉우리들을 어떤 마음으로 넘었고 그 바다의 큰 파도들을 어떤 방법으로 헤엄쳐 살아왔는지를 나 자신은 잘 알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부족하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느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었고, 때로는 어설펐고 미숙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무참히 깨지고 만신창이가 되었을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걷고 또 걸어왔다. 그런 만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해 왔을 것이고 어딘가 모르게 깊어지면서 단단해져 왔다고 나는 믿는다.

앞으로 남은 생을 뭔가 의미로운 것들을 찾아 부여잡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그런 활동으로써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본연의 내가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오늘 브런치가 참 좋은 기회를 주었다. 시의적절하게도 때마침 바로 이때에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명분과 자극을 선사해 준 것이다.

그간은 글을 쓰고도 원고 관리도 잘 안되었을 정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로써만 개인 페이지에 차곡차곡 모아 놓는 그저 그런 자기만족의 행위일 뿐, 내가 쓴 글을 누군가와 나눌 기회도 딱히 없었다.

나름의 신념으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믿음 하에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글을 쓰면 어쨌든 그 글들이 기록으로 남게 될 터이니, 언젠가 내가 먼 여행을 떠나간 이후에라도 내 사랑하는 아들아이가 그 글들을 들춰보면서 엄마를 추억해 줄 수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일 것이고, 단지 ‘내 삶의 흔적’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로울 수 있다고 자기 암시를 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나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발견하는 작은 소재거리를 통해 떠오르는 단상들이 무심하게 휘발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들을 상쇄시킬 수 있도록, 꾸준히 글을 쓰며 일상의 기록을 남겨 브런치에 올리고 좋은 님들과 공감하고 싶다.

그간 취미생활로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책영화 친구님들과 ‘북토크’와 ‘영화토크’를 해오고 있었는데 ‘책영화 모임’에서 오고간 책과 영화에 대한 감상들을 리뷰하는 글쓰기도 하고 싶다. 또한 갈수록 실감하는 체력저하를 조금이나마 지연시켜 보고자 시작한 걷기 활동에서 느끼는 단상들을 풍광사진을 첨부한 에세이로 쓰고 싶다.

한편 여태껏 혼자서 끄적거려 놓았던 책, 영화 리뷰와 감상들도 다시 소환해 와서 좀 더 틀을 갖춘 글쓰기로 리라이팅 하기도 하면서 결이 비슷한 브런치의 친구님들과 소통하고도 싶다.


돌고 돌아 중년이 된 지금 이 시점에서야 제대로 ‘글쓰기’를 해 볼만한 계기를 마련한 기분이다.

‘나는 소싯적 문학소녀로서의 추억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그럭저럭 적당히 살다 떠나가겠구나.’ 하던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구석탱이로 숨어버리려 했던 내 소심한 ‘작가부캐’를 토닥이며 일으켜 세워 다시금 글쓰기의 장으로 데려와 기회를 준 브런치팀의 작가 수락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이메일을 열어 보았을 때 문득 1997년 개봉작인 영화 ‘접속’이 생각났다. “삶은 때론 먼 길을 원한다.”라는 영화 속 라디오 DJ의 멘트가 떠올랐고, 한석규 배우와 전도연 배우가 주고받는 대화 중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라는 대사도 기억났다.

‘나에게 글쓰기란 먼 길을 돌고 돌아와 또다시 꼭 재회할 운명과도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가 울컥하고 감동스럽기도 했다.


오늘 나는 가장 마음이 드는 ‘부캐’를 얻었다.

일명 ‘브런치 작가’로서 브런치에 내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이메일을 받은 매우 기쁜 날이다. ‘작가’가 ‘부캐’가 아닌 ‘본캐’라고 인식하게 되는 그날까지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한 글쓰기를 해 나가고 싶다.

이렇듯 참 좋은 기회를 어느날 느닷없이 받은 뜻밖의 선물처럼 선사해 준 ‘브런치팀’에 대단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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