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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an 10. 2024

[프롤로그]-<어쨌든, 책>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 쓰는 즐거움*

[프롤로그]-<어쨌든, 책>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 쓰는 즐거움*


Prologue

       

♧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 쓰는 즐거움     

저는 어린시절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였습니다. 늘 주변의 인물과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관찰자 시점으로 예의주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조용히 응시만 하고 지켜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일까? 왜 그럴까?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항상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많은 아이였고,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편이었던 듯합니다.

경주 김씨 상촌공파 종가집의 장손인 내 아버지 덕에 얼굴도 모르는 몇몇 대 조상님들의 기제사를 비롯해 매번 찾아오는 명절까지, 제사가 빈번하다 못해 일상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의 한때를 보냈습니다. 참빗으로 빗어 단정하게 말아 올린 흰 머리카락에 은비녀로 쪽을 진 증조할머니가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시며 집안의 대소사를 진두지휘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사가 있는 날이면 대청마루가 널찍했던 기와집 본가였던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신길리의 종가에 종중의 어르신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양복으로 단정하게 격식을 갖춰 차려입은 집안의 남자들만이 제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개중에는 덥수룩한 흰 수염에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옛날 할아버지들도 계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는 꽤 흥미로운 모습이었는데, 여자아이인 저는 차마 문틀을 넘지 못하고 방문 뒤편에 기대서서 재미있게 구경했던 제사 광경이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만약 그 제사 장면을 묘사하라고 하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들이 한 번씩 떠오릅니다.

알 수 없는 운명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어쩌다 발생한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만 해도 종가의 대를 이어야 할 의무가 있었던 저의 부모님은 딸만 내리 셋을 낳으셨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대화를 관찰하던 어린 저는 집안의 대가 끊겼다고 걱정하시며, ‘저 녀석이 고추 하나만 달고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겠누…’ 하는 한탄 섞인 증조할머니의 한숨 소리에 뜻 모를 송구함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과 그때 뜻모르고 겸연쩍었던 마음이 지금도 어렴풋하게 기억납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아련한 슬픔 같았던 그 느낌은 ‘내가 상기할 수 있는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제 슬픈 감정선은 증조할머니의 한숨 섞인 한탄에서부터 그렇게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나 활자로 구성된 것이면 무엇이든 보고 읽는 것을 좋아했고, 뭔가를 끄적이며 써대고 그리는 것을 재미있어했습니다. 하다못해 아버지가 자주 들춰보시던 대한민국 전국지도책과, 방안지에 열심히 그려대시던 아버지의 건축설계 도면을 비롯하여 오른쪽 하단에 쓰여 있는 조그만 축척 비율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외 집에 굴러다니던 신문쪼가리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는 것들을 자세히 읽었고, 종이와 필기구만 있으면 낙서 같은 쓰기와 그리기를 끄적거리며 혼자서도 잘 놀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내 부모님이 어린 세 자매에게 주었던 가장 큰 선물은 책상과 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부모님은 어린 딸 셋에게 당시 꽤 고가의 오동나무 책상을 개인별로 각각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출판사 방문판매 판촉 사원에게 영업을 당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계몽사/삼성당/금성 출판사 등등 당시 유명했던 출판사들의 대표 전집들을 세트로 사들여 꽤 그럴싸한 인테리어 효과를 덤으로 얻었던 듯합니다.

세계문학전집, 위인전집, 식물도감 전집, 백과사전전집 등 참 다양한 종류와 꽤 많은 분량의 책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던 덕분에, 책 내용이 궁금해지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이나 심심해지는 때에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습관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만의 책상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랐습니다. 딸 셋 중 둘째인지라 언니와 동생의 가운데에 끼어서 위와 아래로 이리저리 치이는 입장이었지만, 내 책상에 앉아있을 때 만큼은 온전히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옮겨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내 책상에 앉아 읽고 쓰고 그리기를 할 때에는 등 뒤에서 어린 동생이 장난을 치며 떠들어대도 큰 상관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개인 책상과 다양한 책이라는 똑같은 환경이 주어졌지만, 음악을 좋아하던 언니와 그림을 즐기던 동생에 비해 아마도 제가 훨씬 더 많이 그 책들을 사랑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 환경을 충분히 활용하며 마음껏 누린 최고의 수혜자는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바로 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결론적으로 저는 그토록 좋아하는 읽고 쓰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거나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삶으로부터 차차 멀리 밀려나서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반백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저 또한 고군분투하는 삶 속에서 여러 부침을 겪으며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과 결혼, 육아 등 삶의 변화를 겪으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성실한 생활인으로 사회적으로 온전하게 기능하며 무탈하게 살고자 노력하며 살기는 했습니다. 위치하는 곳에서의 제 역할을 나름대로 열심히 소화해 냈고, 삶의 롤러코스터에서 그때그때 만나게 되었던 다채로운 나의 인생을 최선을 다해 꾸려왔다고 생각합니다.

닥친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내다 보면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며 살 여유를 갖기는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게 현실 생활인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좋아하며 즐기던 읽고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으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정서적인 목마름을 느끼며 뭔가에 대한 욕구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을 한 번씩 동반하였던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꾸준히 책을 읽는 루틴은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저를 붙잡아 주며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어 준 것은 ‘어쨌든,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현실 생활인으로서 일과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이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점에 도달할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은 저는 휘몰아치는 듯 바쁜 현실 속에서도 관심사를 찾아 탐색하며 중간중간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그것을 깊은 고민 안하고 그냥 하였습니다.

남들이 한 분야를 좁고 깊게 파서 석/박까지 이어가고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 나가면서 전문가로서의 경지에 이를 때, 저는 넓고 얕게 여러 개의 전공 분야를 공부하였고, 문득문득 관심이 가는 분야에 대해서도 살짝살짝 넘나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혼자만 뿌듯한 장롱면허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다양한 자격증들도 여러 개 취득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제가 읽고 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보고서 쓰고, 시험 보는 일을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았던 까닭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런 공부를 왜 또 시작해서 이 생고생을 사서 하나 후회 섞인 투덜거림을 입에 달고 산 때도 있긴 있었지만,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마무리를 해내는 성실한 태도가 저에게는 습관화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성실한 태도와 마무리하는 습관인 듯합니다. 아마도 해병대 출신으로 베트남전 참전용사이자 국가유공자이신 제 아버지가 규칙적이고 근면 성실한 자세를 늘 강조하셨던 것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린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일적으로나 가정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일과 가족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개인적인 자유의 시간이 차차 늘어가는 시기가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여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도서관과 서점 나들이를 하였고, 가장 좋아하는 취미처럼, 습관처럼 틈만 나면 손에 책을 잡았습니다.

독서량이 늘어갈수록 좋은 작품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감동이 깊은 책을 접했을 때면 누군가와 그 책에 대해 공감의 수다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안타깝게도 20대에 만나 50대가 되도록 적지 않은 세월을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오리지널 공학도 출신’답게 단순명료한 성향의 현실남편이었고, 섬세한 정서적 소통과 예민한 감수성을 동반하는 대화가 잘 통하는 영혼의 단짝과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를 함께 볼 수는 있을지언정,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문화/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친구는 아니었습니다.     


혼자 하는 독서가 심심해질 무렵 집 근처 도서관에서 열린 한 작가의 특강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간 어쩌다보니 반 포기 상태로 살아왔던 제 글쓰기에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책특강, 작가강연, 책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읽고 공통의 주제로 관심을 집중하여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과 다양한 의견을 교류한다는 것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많고 공상을 잘하는 저는 고민을 길게 하는 걸 싫어하는 데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실천해 보는 일에 그다지 신중하거나 망설이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끌리는 일이 있으면 일단 시도해보고 혹시 아니면 조용히 접으면 된다는 실험정신으로 시작은 어렵지 않게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보기보다 단순하고 꽤 추진력이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던지 어느날 즉흥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힘입어 작은 인터넷 플랫폼을 개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해 책친구님들을 만나 독서토론 비슷한 어설픈 책모임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다른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모임의 주최자가 책보다는 친목에 더 방점을 찍고 있었던지 책모임의 형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어쩌다 보면 책이야기보다도 일상수다 시간이 되면서, 책모임이라는 본질은 흐려지고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책모임을 알차고 의미 있게 하려면 일정한 형식과 진행순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후로 제가 개설한 커뮤니티에서 책모임을 추진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각자가 귀한 시간을 내어 책모임에 참여하는 것이니만큼 되도록이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시간이 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원님들 중 누구는 조용한 구경꾼 모드이고 누구는 자기 말만 계속하는 독점적인 수다쟁이가 아닌, 참여자들 모두가 균등하게 발언권을 갖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운데 편안하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랐습니다. 좀 더 알찬 책모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느라 고민이 참 깊어졌던 시기였습니다.     


함께읽기책을 선정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회원님들의 추천과 투표에 의한 동의, 또는 도서관 사서님들이나 북에디터들에 의해 손꼽히는 책 등 참고할 만한 기준이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서토론 논제를 정하는 일은 그 중요도와 필요성에 비해 마땅한 참고자료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독서토론 논제를 뽑아 모아놓은 독서토론 지침서 같은 성격의 책은 없을까 하여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독서토론 모임의 노하우나 책모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경험담, 독서토론 논제를 발췌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 성격의 책들은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책모임에서 그달의 함께읽기책으로 선정된 딱 그 책을 정확하게 다룬 맞춤자료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리더인 제가 책모임을 준비하며 그달의 함께읽기책을 먼저 완독한 후 독서토론의 논제를 발췌해 필요한 토론자료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북토크 주제를 구체화 시킨 토론논제를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토론순서를 정해 진행했더니 좀 더 밀도 있게 토론하면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공통의 주제에 대해서 저마다의 경험과 생각이 다양하게 나오게 되면서 훨씬 풍성하고 알찬 내용의 책모임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기록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는 직접 만든 토론 논제 자료는 물론이고, 북토크 현장에서 나온 회원님들의 발언 내용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키워드 위주로 빠르게 메모하였습니다. 독서토론이 끝나면 개인적인 독서리뷰까지 꼼꼼하게 작성하고 커뮤니티 게시판에 꾸준하게 업댓하여 회원님들과 공유하였습니다.     


그렇게 읽고 쓰는 작업에 탄력이 붙던 어느 날 우연히 ‘다음 브런치’라는 작가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무작정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운좋게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브런치 계정에 책리뷰/영화리뷰/전시리뷰/일상을 사유하는 소확행 에세이 등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만의 브런치 계정에 내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브런치 작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고, 너무 길지 않은 일정한 텀을 두고 꾸준히 글을 써서 업데이트 할 거라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일과 회사 일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변수와 처리해야 할 일들은 왜 그렇게 많이 끼어들던지,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는 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일상에 치이고 당장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에서 글쓰기가 뒤로 밀리면서 생각만큼 꾸준한 글쓰기를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버려서 늘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한편 가족이나 친구 등을 비롯하여 여러 지인들처럼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준다는 것에 대해 다소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 샤이한 마음에 의한 자기합리화였던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널리 읽히기를 추구하기보다는 나의 기록을 차근차근 쌓아간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브런치의 독자 수가 몇 명이 늘어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브런치 계정에 자연스럽게 찾아와 제 글을 읽어주시고 구독자가 되어 주신 소수의 귀한 독자님들이 생기는 것이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제 글에 댓글을 남겨 다양한 의견을 주시는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과 소통하게 되는 경험은 정말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글이 어느 정도 모이게 될 무렵 좋은 기회를 얻어 열정 넘치는 한 에디터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누적된 글로 책을 출간하고자 막연히 생각해왔던 희망사항을 현실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정 넘치는 에디터님과의 미팅 과정에서 부딪친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아쉽게도 전문성 있는 북에디터의 도움을 받아 출판사와 계약하여 책 출간을 진행하는 일은 결국 접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숙제를 마무리하지 못한 듯한 느낌으로 책출간에 대한 방법을 생각하던 그 무렵, 제가 참여하고 있는 중앙도서관 책모임 회원님들과 더불어 원고를 모아 공동 집필한 작은 문집이 나왔습니다. 그때 요청받은 원고를 작성하고 취합하는 과정에서 출간할 책의 서식을 받아보게 된 일을 계기로 ‘자가출판플랫폼’이라는 유연한 출판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가출판의 옵션이 매우 다양하며 독립출판의 길도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문적인 북에디터의 도움과 출판사와의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닌 자기주도적인 출판 방법을 선택해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브런치 계정에 모아진 글들 중에서 책과 영화라는 테마를 잡아 목차를 두 갈래로 구성하려 했었는데,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분량이 너무 많다고 느꼈습니다. 고민 끝에 첫 책출간이니만큼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폭을 좁혀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화는 다음 기회로 미뤄놓고 일단 책 하나만 컨셉을 잡아 첫 책 출간을 진행하기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쨌든, 책’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독서토론 모임에서 다루었던 여러 책들 가운데 일단 10편의 책을 골랐습니다. 책모임을 좀 더 알차게 진행하기 위해 토론주제를 직접 발췌해 작성한 독서토론 논제 발제문을 수록하고, 독서토론에서 제가 의견을 발표한 부분만 선별해 취합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책리뷰를 연계성 있게 이어 붙여 ‘어쨌든, 책’의 목차를 구성하였습니다.

북토크 자리에서 나왔던 책친구님들의 다양한 의견들도 책에 함께 수록하여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다채로울 수는 있겠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정리한 핵심 메시지와 저의 의견 발표 부분, 그리고 책과 독서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리뷰로 책의 내용을 구성하였습니다. 그 외 다른 회원님들의 감상과 토론해 주신 발언 내용은 배제하였습니다. 독서토론 참여자님들의 주옥같은 견해와 다양한 의견들이 포함된 더 많은 생각들은 그 내용을 정리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제 책에 타인들의 생각을 함께 싣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모임에서 별점주기를 하는 것은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수치화하여 발표해보는 재미의 한 부분이고, 별점이 그 책과 저자에 대한 공신력 있는 평가와는 거리가 멉니다. 사람마다 자기 주관에 따라 느끼는 바가 참 다채롭다는 것이 흥미롭게 작용하여, 독서토론 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다이내믹하게 견인해 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는 진행상의 묘미일 뿐,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 속에 수록된 ‘책 별점 주기’ 코너에서 부여한 제가 준 별점 또한 전문 평론이나 비평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에 기초한 것이므로, 그 의미에 경중을 둘 필요가 절대 없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특히 이 책은 거의 가내수작업 수준의 셀프기획과 구성, 직접 편집으로 진행된 만큼, 편집과 교정에서 부분적인 오류를 포함하여 부족함이 있을 수 있고 다소 어설픔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 과정에서 결정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을 포함하여 출간의 모든 프로세스를 온전히 저 스스로 선택하며 진행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제가 독서토론 모임의 초창기에 그토록 애써 찾아 헤매었던 토론논제가 필요하신 분들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모임에서 ‘함께읽기’ 하고 ‘독서토론’을 진행했던 만큼 저에게 특별하게 머물렀던 책들을 지금 어딘가에서 읽고 계신 분들을 응원합니다. 이 책이 독서리뷰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작은 매개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끝으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면 ‘어쨌든, 책’의 책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함께 고민해 주며 항상 아무런 대가 없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었고, 존재 자체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는 나의 최측근인 두 남자, 즉 20대에 만나 50대를 넘어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전수전 속에서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애증과 우정의 친구이자 인생의 동지이며 삶의 동반자인, 근면/성실하고 스마트한 남편 ***씨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이라는 말의 참뜻을 너무도 잘 이해하게 만들어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언제까지나 사랑스럽고 지극히 지적인 내 아들 *** 군에게 감사와 축복을 담은 나의 온 마음을 전합니다.     

                                                                                               

                                                                                            2023년 12월, 소래빛도서관에서

                                                                                                                       김선(金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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