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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un 21. 2016

라쇼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양윤옥 옮김

어느 날 해 저물녘의 일이다. 한 백성이 라쇼몽(일본 헤이안 조의 수도였던 교토의 중앙로 스자쿠 대로 남쪽 정문. 이중각의 건축물로 오층 돌계단이 있었다.)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널찍한 문 아래에는 이 사내뿐,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귀뚜라미 한 마리만 단청이 군데군데 벗겨진 커다란 둥근기둥에 달라붙어 있었다. 라쇼몽이 그 넓은 스자쿠 대로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이 사내 말고도 비를 긋는 이치메가사며 모미에보시 차림의 사람들이 두어 명 더 보일 만도 했다. 그런데 이 사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최근 이삼 년 동안 교토에는 지진과 회오리바람, 그리고 화재와 기근 같은 재앙이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성안의 피폐상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기록에 의하면 불상이며 불구를 때려 부수어 그 단청이며 금박 은박이 박힌 나무를 길가에 쌓아놓고는 겨우 장작 값이나 받고 팔았다는 얘기도 있다. 성안이 그런 판이었으니 라쇼몽의 수리 같은 건 애초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지라 되는 대로 내팽개쳐 둘 뿐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그 황폐한 꼴을 얼씨구 좋아라 하면서 너구리가 와서 살고, 도적들이 와서 살았다. 그러다가 끝장에는 거둬줄 이 없는 시체를 떠메고 와 이 문의 누각 위에 내버리는 풍습마저 생겼다. 그러니 사람들은 해만 떨어졌다 하면 모두 무서워서 라쇼몽 근처에는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까마귀가 어디선가 떼로 몰려들었다. 한낮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까마귀들이 라쇼몽의 높은 용마루 끝을 빙빙 돌며 울어댔다. 특히 문 위의 하늘이 석양으로 붉게 물들 무렵이면 그 까마귀 떼가 깨라도 뿌린 듯 더욱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까마귀는 문 위에 버려진 시체의 살을 쪼아 먹으러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간이 늦은 탓인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고 그 무너진 곳마다 수북하게 풀이 자란 돌계단 위에 허연 까마귀 똥이 점점이 붙어 있는 것만 보인다. 사내는 색 바랜 남색 옷의 뒤춤을 걷고 오층 돌계단의 맨 윗자리에 앉아 오른쪽 뺨에 생긴 커다란 여드름을 만지작거리며 멀거니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는 앞서 '한 백성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 백성은 비가 그친 다음에도 딱히 뭘 어떻게 하겠다는 작정이 없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라면 당연히 주인집에 돌아가야 할 참이었다. 그러나 사나흘 전에 그 주인에게서 이제 그만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 교토는 예삿일이 아닐 만큼 쇠퇴해 있었다. 이 백성이 오랜 세월 일해 왔던 주인에게 그만 오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실은 그 쇠퇴의 작은 여파였다. 그러니 '한 백성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하기보다 '비에 몰린 한 백성이 갈 곳이 없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그런데다 그날의 하늘 꼬락서니도 적잖이 이 헤이안 조 백성의 센티멘털리즘에 영향을 끼쳤다. 신시 무렵부터 뿌리기 시작한 비는 아직껏 걷힐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 백성은 다른 건 고사하고 당장 내일 입에 풀칠할 방도를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두서없는 생각을 더듬어 가며 아까부터 이곳에 앉아 스자쿠 대로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듣고 있었던 것이다.

비는 라쇼몽을 휘감고 저 먼 곳에서부터 쏴아 하는 소리를 모아 왔다. 저녁 어스름이 슬금슬금 하늘을 나지막하게 덮어 와서 고개를 들어보니 라쇼몽은 지붕의 삐죽 튀어나온 기와 끝에서 묵직하면서도 시커먼 구름을 받치고 있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는 해보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다. 이래 가리고 저래 가리다  가는 남의 집 토담 밑이나 길가 맨땅에서 굶어 죽기 딱 좋다. 그 다음에는 이 라쇼몽에 개처럼 버려지는 수밖에. 그러니 무슨 일이건 가리지 않는다면...... 백성의 생각은 수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던 끝에 가까스로 이 지점에 다다랐다. 그러니 이 '...... 않는다면'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국 '....... 않는다면'이었다. 백성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이 '....... 않는다면'을 매듭짓자면 당연히 따르게 될 '도둑놈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백성은 한바탕 재채기를 하고는 그만 진이 빠진 듯 몸을 일으켰다.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교토는 벌써 화로가 그리울 만큼 쌀쌀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서 바람이 라쇼몽 기둥 사이를 뚫고 사정없이 불어제쳤다. 붉은 칠 기둥에 붙어 있던 귀뚜라미도 그새 어디론가 가버렸다.

백성은 목을 움츠리며 누런 여름옷에 겹쳐 입은 남색 겉저고리의 옷깃을 치켜세우고 문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바람이나 면하고 남의 눈이나 피해 하룻밤 그럭저럭 잘 만한 곳이 있으면 거기서 우선 당장 오늘 밤을 보내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행히 문 위의 누각으로 올라가는, 폭이 널찍하고 역시 붉은 칠을 한 사다리가 눈에 띄었다. 누각 위라면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차피 죽은 사람뿐일 터였다. 백성은 허리에 찬 칼이 칼집에서 빠질세라 조심조심 짚신 신은 발로 사다리의 맨 밑단을 짚고 올라섰다.

그리고 잠시 뒤였다. 라쇼몽 누각으로 통하는 널찍한 사다리 중간에 한 사내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인 채 위쪽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누각에서 비치는 불빛이 희미하게 사내의 오른쪽 뺨을 적셨다. 짧은 수염 속에 불그레한 여드름이 난 얼굴이었다. 애초에 이 백성은 누각 위에 모조리 시체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다리를 두세 칸 올라보니 위에서 누군가 불을 밝히고 있었고, 게다가 그 불빛이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쳐진 천장에 그 칙칙하고 누런빛이 흔들흔들 비쳤기 때문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비 오는 밤에 라쇼몽 위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니, 이건 분명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백성은 도마뱀붙이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마침내 경사 급한 사다리를 맨 윗단까지 기듯이 올라섰다. 그리고는 몸을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리고 고개를 최대한 쭈욱 빼서 멈칫멈칫 누각 위를 살펴보았다.

누각에는 소문에 듣던 그대로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지만 불빛이 미치는 범위가 예상보다 좁아서 몇 구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희미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중에 벌거벗은 시체와 옷을 입은 시체가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여자고 남자고 가릴 것 없이 마구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주검들은 모두 예전에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는 사실마저 의심스러운 만큼 영락없이 흙덩이로 빚은 인형처럼 입을 떡 벌리거나 팔을 내던진 채 되는 대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어깨나 가슴처럼 높직하게 솟은 부분에 부연 부빛이 비쳐 낮은 부분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 채 영원한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백성은 썩어 문드러진 주검들이 풍기는 악취에 자기도 모르게 코를 싸쥐었다. 그러나 그 손은 다음 순간 코를 싸쥐는 것마저 잊었다. 어떤 강렬한 느낌이 이 사내의 후각을 거의 송두리째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백성의 눈은 그제야 비로소 주검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을 보았다. 노송나무 껍질 색깔의 옷을 입은, 키가 작고 말라빠진 백발의 원숭이 같은 노파였다. 노파는 오른손에 불 붙인 소나무 막대기를 들고 한 시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긴 것을 보면 아마도 여자의 시체일 것이었다.

백성은 열에 여섯은 공포감에, 나머지 넷은 호기심에 휩싸여 잠시 숨 쉬는 것마저 잊었다. 옛 기록자의 말을 빌리자면 '머리털이 쭈뼛 곤두셨다'고 느낀 것이다. 노파는 소나무 막대기를 나무 바닥의 틈새에 꽂고는 지금까지 들여다보던 시체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더니 마치 원숭이 어미가 새끼 원숭이의 이라도 잡아주듯이 그 긴 머리카락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손에 집히는 대로 뭉텅뭉텅 뽑히는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이 한 번씩 뽑힐 때마다 백성의 마음에서 서서히 공포감이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노파에 대한 격한 증오감이 조금씩 커졌다. 아니, 노파에 대한 증오감이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 오히려 온갖 악에 대한 반감이 시시각각 강렬해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아까 문 아래에서 이 백성이 궁리했던 ,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놈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 들고 나온다면 아마도 백성은 아무 미련 없이 굶어 죽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럴 만큼 이 사내의 악에 대한 증오는 노파가 바닥에 꽂아둔 소나무 막대기처럼 거세게 타올랐던 것이다.

물론 백성은 어째서 노파가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는 그것을 선악의 어느 쪽으로 정리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백성에게는 이 비 오는 밤에 라쇼몽 누각에서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물론 조금 전까지 자신도 도둑놈이 될 생각이었다는 것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거기에서 백성은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넣고 느닷없이 사다리를 박차며 누각 위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칼자루를 붙잡고 성큼성큼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화들짝 노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파는 백성을 흘끔 보자마자 마치 새총의 돌멩이라도 맞은 듯 펄쩍 뛰었다.

"이봐, 어딜 가!"

백성은 노파가 시체에 걸려 넘어지며 허둥지둥 도망치는 앞길을 잽싸게 가로막고 서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노파는 그래도 백성을 밀치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백성은 또 그것을 가지 못하게 다시 제자리로 밀어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체들 속에서 잠시 말도 없이 씨름을 했다 그러나 승패는 애초부터 뻔했다. 백성은 이윽고 노파의 팔을 잡아 비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마치 새 다리처럼 뼈와 가죽뿐인 팔뚝이었다.

"뭇느 짓을 하고 있었던 게야?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이거야."

백성은 노파를 내동댕이치고 재빨리 칼집에서 허연 빛을 뿜는 칼을 빼내 그 눈앞에 들이댔다. 그러나 노파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두 손을 벌벌 떨고 어깨 숨을 몰아쉬며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만큼 눈을 크게 뜨고는 벙어리처럼 고직스럽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백성은 비로소 이 노파의 생사가 완전히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했다. 그 의식은 지금까지 거세게 타오르던 증오심을 어느 결에 식어버리게 했다. 뒤에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이 벌린 일이 원만하게 성취되었을 때의 느긋한 자부심과 만족감뿐이었다. 백성은 노파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약간 부드럽게 낮추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게비이시 청의 관리가 아니오. 마침 이 문 아래를 지나가던 나그네요. 그러니 할멈을 오랏줄에 묶어 끌고 가겠다는 게 아니오. 그저 방금 여기서 무얼 했었는지 그걸 내게 말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자 노파는 둥그렇게 뜬 눈을 한층 더 큼직하게 뜨고는 물끄러미 백성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두덩이 불그스레한, 육식조처럼 날카로운 눈이었다. 그리고는 축 처져서 거의 코와 한 덩어리가 된 입술을 뭔가 씹듯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가느다란 목에 불거진 목젖이 깔딱깔딱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 목구멍에서 새어나온 까마귀 우는 듯한 소리가 백성의 귀에 들려왔다.

"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말이지, 가발을 만들려고 그랬어."

백성은 노파의 대답이 뜻밖에도 평범한 데 실망했다.

그 실망과 동시에 조금 전의 증오심이 차디찬 모멸감과 함께 다시 가슴속에 밀려들었다. 그런 기미가 상대방에게도 전해졌던 것일까. 노파는 한 손에 아직도 시체의 머리에서 뜯어낸 기다란 머리칼을 쥔 채 두꺼비가 골골거리는 듯한 소리로 우물우물 이런 말을 쏟아놓았다.

"그야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나쁜 일이겠지. 그러지만 여기 죽은 사람들은 모두 그런 일을 당해도 괜찮을 사람들이여. 지금, 내가 지금 머리카락을 뽑아낸 이 여자는 말이여, 뱀을 잡아다가 네 마디씩 잘라서 말린 것을 건어물이라고 궁성 호위대에 팔러 다녔단 말이여. 역병에 걸려 뒈지지 않았으면 아직도 그걸 팔러 다녔을 거여. 그것도 말여, 이 여자가 파는 건어물은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호위대 사람들이 너나없이 찬거리로 사들였대. 이 여자가 한 짓거리가 나쁘다고는 안 하겠어. 안 그러면 굶어 죽을 테니 어쩔 수 없이 한 짓이지. 그럼 지금 내가 한 짓도 나쁜 짓이라고는 못하지. 이렇게 안 하면 당장 굶어 죽을 테니 할 수 없이 한 짓이여. 이런 할 수 없는 사정을 잘 알던 이 여자는 내가 한 짓도 아마 너그럽게 봐줄 것이여."

노파는 대충 그런 뜻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백성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그 칼자루를 왼손으로 잡은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오른손으로는 불그레하게 고름이 잡힌 큼직한 여드름을 만지작거려 가며.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백성의 마음에 어떤 용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아까 라쇼몽 아래에서 한없이 망설이던 때는 도무지 생겨나지 않던 용기였다. 또한 아까 이 누각 위에 올라와 노파를 붙잡던 때의 용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용기였다. 백성은 굶어 죽느냐 도둑놈이 되느냐에 대한 망설임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순간 이 사내의 마음속에서 굶어 죽는다는 따위의 일은 아예 생각해본 적 조차 없었던 것처럼 의식 밖으로 멀리 밀려나 있었다.

"그래요? 그 말이 틀림없지요?"

노파의 이야기가 끝나자 백성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다짐을 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썩 나서더니 여드름을 만지던 오른손으로 갑자기 노파의 멱살을 움켜쥐며 씹어 뱉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옷을 홀랑 벗겨 가도 원망은 못하리라. 나도 그렇게 안 하면 당장 굶어 죽을 처지요."

백성은 잽싸게 노파의 옷을 벗겨냈다. 그리고는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려는 노파를 거칠게 시체 위로 밀쳐버렸다. 사다리까지는 겨우 대여섯 걸음이면 되는 거리였다. 백성은 벗겨낸 노송나무 껍질 색 옷가지를 옆구리에 낀 다음 눈 깜짝할 사이에 경사 급한 사다리를 짚고 어둠의 밑바닥으로 뛰어내려 갔다.

한참이나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노파가 시체들 속에서 벌거벗은 몸을 일으킨 것은 그 조금 뒤의 일이었다. 노파는 투덜거리는듯한,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직 타고 있는 불빛에 의지하여 사다리까지 기어갔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짧은 백발을 거꾸로 들이밀어 누각 밑을 내려다보았다. 밖에는 오직 시커먼 동굴 같은 밤이 있을 뿐이다.


백성의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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