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데 May 21. 2016

실수는 인간의 일, 공중부양은 신의 일

우디 앨런 단편집/ 성지원,권도희/ 웅진

내 인생이 연속적으로 아쉬운 장면들만 남긴 채 숨을 헐떡이며 눈앞을 스쳐지나가던 몇 개월 전, 나는 매일 아침 현관문 투입구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 우편물의 쓰나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나마 바그너 애호가인 파출부 그렌델이 산처럼 쌓이는 아트쇼 초대장, 자선 강요 편지, 가짜 대박 경품권들 밑에 깔린 먼지들의 숨죽인 오페라를 들으며 청소기를 돌려대지 않았다면 질식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배달된 우편물을 알파벳 순으로 신중하게 추려서 종이 재단기에 집어넣다가, 새 모이통은 물론이고 매월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는 말린 자두와 밀감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온갖 물건을 담고 있는 상품 카탈로그 더미 속에서 구독 신청을 한 기억이 없는 얄팍한 신문 하나를 발견했다. '마술적 체험'이란 제명이 붙은 이 신문은 뉴에이지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기사들은 수정의 신비한 힘에서부터 전인적인 치료법과 영기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영적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물론 사랑과 스트레스 조절법, 환생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어디에 가야 하고, 그곳에서 어떤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실려 있었다. 하단에는 건강 철분제제, 보텍스 워터 활력제, 여성의 유방을 풍만하게 해주는 '허벌 그로버스트'란 제품 광고들이 눈에 띄었는데, 사기 단속반에 걸리기 쉬운 비상식적인 광고들과는 확연히 구분되게 쓰인 문구들이 제법 양심적으로 조리 있어 보였다.

또한 이런 신문에 영적인 조언자들의 광고가 빠질 리가 없다. '영적이며 직관적인' 한 영혼의 안내자는 '컨소시엄 세븐이라 명명된 천사 컨소시엄'이 인정한 통찰력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스트립쇼를 하듯이 세례를 받고 '살리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는 젊은 여자는 '당신의 기에 균형을 맞춰주고, 잠자는 DNA를 깨워주고, 부를 얻게' 해주겠다고 제언하고 있다. 원래 영혼의 중심을 찾아가는 이런 탐구 여행 광고의 끝자락에는 항상, 통행세와 영혼의 지도자께서 전생에 진 빚 같은 기타 제 비용을 커버할 약간의 소요 경비를 항목별로 제시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혼의 안내자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인물은 '지구별 하토르 여신 승천 운동본부의 설립자이자 신성한 지도자'였다. 추종자에게는 '가브리엘 하토르'로 알려진 이 여인은 광고 카피에서 스스로를 '인간의 형태로 현신한 충만의 여신'이라 선언하고 있다. 이 서해안 지역의 우상에 따르면, "업의 윤회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 지구는 이미 영적인 겨울에 들어섰으며, 이 겨울은 지구 기준으로 사십만 육천 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토르 여사는 인간이 겪을 긴 겨울의 고통을 염려하여, 지구인에게 '고주파 차원의 세계'로 승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회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아마도 그 세계는 밖에 나가 골프를 즐겨도 좋을 만큼 날씨가 좋은 모양이다. 이 매혹적인 선전 문구는 계속해서 허황된 말을 떠벌리며 호객을 하고 있다.


「공중 부양, 순간 이동, 전지전능, 물질화 및 비물질화하는 능력 등이 일상적인 능력의 일부가 된다.(....) 고주파 차원에 오른 승천자는 보다 주파수가 낮은 차원들을 훤히 감지할 수 있는 반면에, 저주파 차원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보다 주파수가 높은 차원들을 감지할 수가 없다.」


그녀의 광고에는 '플레이아데스 문스타'라는 사람의 열정적인 추천사가 곁들여 있었다. 만일 위험한 뇌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요동치는 비행기에 앉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수술을 맡은 의사 혹은 조종사의 이름이 '플레이아데스 문스타'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하토르 여사 운동본부에 일하는 수련생들은 그들의 자만심을 누그러뜨리고, 더 높은 주파수대로 상승하기 위해 소위 '굴욕적인 절차'라는 것을 생활화할 의무가 있다. 현금 보수를 바란다면 눈총만 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약간의 굴종적인 충성과 생산적인 노동의 대가로, 의식을 잃거나 혹은 회복할 때 사용할 침대와 한 그릇의 유기농 녹두죽 정도는 얻을 수 있다.


지금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그 신문을 발견한 바로 그날 오후 해머셔 슐레머 매장에 갔다가, 늘 그렇듯 인공지능형 오리 육즙기를 살까 아니면 세계 최고의 휴대용 종이 재단기를 살까 장시간 강박적으로 고민하느라 기운을 다 뺀 후 초췌한 몰골로 막 매장을 나서는 순간, 마치 타이타닉이 오래된 빙산에 쾅 부딛치듯 대학 동창 맥스 엔도르핀과 우연히 조우했기 때문이다. 중년의 두둑한 뱃살, 흐릿한 동태 눈깔, 앞머리에 붙인 가발에 빽빽이 심은 인모를 빳빳이 세워 올려 올백으로 넘긴 그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요란하게 악수를 하더니, 최근에 얻은 엄청난 행운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걸 뭐라고 하지? 그래, 대박이 터졌어. 난 내 안의 영적 자아와 만났고, 그후로 계속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인생을 살고 있지."

"이봐,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의 말쑥한 맞춤 정정과 구두, 말기 암 덩이만 한 루비 반지를 눈여겨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사실 저주파 세계 사람과 얘길 나누는 건 금지돼 있지만, 너랑은 과거의 친분도 있고....."

"저주파?"

"응, 난 지금 다른 차원의 세계에 대해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처럼 보다 높은 음계에 속한 사람은 너희같이 생명이 유한한 야만인들에게 건강한 이온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배우지. 미안,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저차원적 인간형을 하찮게 여긴다거나 배려하지 않는 건 아냐. 아무튼 내 말뜻을 이해할진 모르겠다만 이게 다 레벤후크(네덜란드의 현미경학자, 박물학자) 덕분이라고."

그 순간 갑자기 마치 독수리가 본능적으로 먹잇감을 좇아 날아가듯이, 엔도르핀이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쭉 뻗은 '롱다리'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금발의 미녀가 택시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유령이라도 봤어? 왜 허엏게 뜬 얼굴을 하고 그래?"

그가 군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플레이보이 모델이 분명해, 저 저 속이 다 비치는 블라우스를 보라고."

흥분한 나머지 내 목소리에선 '삑사리'가 났고, 갑작스런 열병의 징후마저 느껴졌다.

"잘 봐."

엔도르핀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땅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미스 칠월도 입이 떡 벌어졌다. 그가 해머셔 슐레머 매장 앞 57번가 인도 위에서 한 자 정도 높이로 붕 떠오른 것이다! 혹시 어딘가에 와이어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살피면서, 그 섹시한 얼짱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봐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목소리가 고양이처럼 약간 갸릉갸릉거렸다.

"자, 이건 내 주소요. 오늘 밤 여덟시 이후에는 집에 있을거니까, 한번 들러요. 당신도 바로 뜨게 해주겠소."

"페트루스도 한 병 가져갈게요."

그녀가 은근하게 속삭인 후, 재회를 위한 세부 사항이 적힌 쪽찌를 가슴 골짜기 깊숙이 찔러놓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가버리자, 그제야 엔도르핀이 천천히 땅에 내려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너 혹시 후디니냐?"

"그게....."

엔도르핀은 자애로운 얼굴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

"실상 짚신벌레에 불과한 너로서는 내가 말을 걸어준 것만도 참으로 황송한 일이란 걸 알아야 해. 하지만 이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네게도 알려주는 게 낫겠지? 우린 일단 스테이지델리로 가자. 난 알현을 베풀 테니, 넌 달팽이 요리나 시켜."

말이 끝나자마자 뿅 소리와 함께 엔도르핀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숨 막히게 놀라서 나도 모르게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꽉 눌렀다. 몇 초 후 뉘우치는 얼굴로 엔도르핀이 다시 나타났다.

"미안, 너희 최하층민들은 비물질화도 안 되고, 순간 이동도 할 수 없다는 걸 깜빡했어. 나의 실수! 그냥 같이 걸어가자."

엔도르핀이 다시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나는 계속 얼굴을 꼬집어보았다.

"오케이, 육 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당시 엔도르핀 여사의 귀염둥이 아들 맥스는 연속되는 시련을 겪으며 감정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지. 내 베레모를 찾다 찾다 못 찾은 것까지 합치면 가히 욥이 겪은 시련을 능가할 걸. 처음엔 내 밑에서 해부학적 응용유체역학을 개인 지도 받던 예쁘장한 대만 여학생이 파이 가게 수습한테 반해서 날 본체만체 하더군, 그 다음엔 재규어를 후진시키다가 크리서천 사이언스 도서관을 들이받아 고소를 당하는 바람에 아까운 배춧잎을 엄청 날렸지. 설상가상으로 참혹하게 끝난 결혼 생활에서 얻은 아들 녀석이 잘나가는 변호사 일을 관두고 복화술사가 되겠다지 뭐야. 그러니 내가 어땠겠어.

잔뜩 우울함에 절어서 존재 이유, 말하자면 내 영혼의 중심을 찾아 온 도시를 헤매다가 갑자기 마치 하늘의 뜻인 양 <바이브 일러스트레이트드> 최신호에 실린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된 거야. '당신의 나쁜 업을 말끔히 제거해주는 스파 타입 시설. 당신을 고주파의 세계로 상승시켜드립니다. 마침내 당신도 파우스트처럼 천지만물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난 워낙 영리해서 보통은 그런 황당한 미끼를 덥석 무는 편이 아닌데, 그 센터의 최고경영자가 인간으로 현신한 진짜 여신이라는 말에, 까짓 거 밑져봤지 본전 아닌가 싶더라고. 게다가 무료야. 입회비도 안 받아. 뭐랄까 일종의 변형된 노예제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인데, 노예 봉사를 한 사람에겐 보상으로 신비한 힘을 키워주는 수정과 식용 재배한 성 요한의 풀을 주지. 오, 한 가지 빠뜨렸는데, 그녀는 수련생에게 엄청난 모욕을 줘. 하지만 그것도 치료의 연장이야. 예를 들면 그녀의 부하들은 기습해서 내 침대를 흩어놓거나, 나도 모르는 새에 바지 뒤에다 엉덩이 자국을 찍어놓기 일쑤였지. 맞아, 난 한동안 놀림거리가 됐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로 인해 내 자만심이 사라졌다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난 내 전생을 깨닫게 됐어. 처음에 난 평범한 네덜란드 시장으로 살다 죽었고, 다음 생에서는 위대한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로 환생했지. 아닌가? 이런, 까먹었네. 아마 루카스가 아니면 그의 아들이었을 거야. 아무튼 그 다음에 난 조악한 짚 침대 위에서 깨어났는데, 글쎄 어느새 내 주파수가 가장 높은 차원에 올라 있더라고. 내 후두부 주위엔 후광 같은 것도 생겼어. 한마디로 전지전능해진 거지. 난 당장 벨몬트 경마장으로 날아가서 돈을 두 배로 땄고,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카지노에 데뷔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엄청난 구경꾼을 끌어 모으는 유명 인사가 됐지. 만약 어떤 경주마가 이길지 알쏭달쏭하다거나, 슬롯머신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블랙잭을 하는 게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천사 컨소시엄의 도움을 받기도 해. 뭐, 꼭 엑토플라즘으로 형성된 몸에 날개가 달린 자라고 해서, 경마 결과를 예측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친구 이걸 봐봐."

엔도르핀은 이쪽저쪽 호주머니에서 애기 주먹만 하게 똘똘 만 지폐 뭉치를 여러 개 끄집어냈다. 전부 천 달러짜리 지폐였다. 그는 지폐 뭉치로 원뿔을 쌓다가 재킷에서 루비 몇 개가 굴러 떨어지자, "어이쿠, 실례"하며 주섬주섬 주워 올렸다.

"아니, 그 최고경영자는 이런 걸 가능하게 해주고도 정말 아무 대가도 안 받는단 말이야?"

내 가슴은 유량 독수리의 날개를 단 것처럼 높이높이 비상했다.

"그러니까 신의 현신이지. 이런 권능을 하사하는 건, 그녀에겐 통 큰 취미일 뿐이라고."


그날 밤 마누라는 내게 저주를 한 바가지 퍼붓고, 슈미켈앤드선즈 법률 회사에 전화를 걸어 우리 혼전 계약서의 이혼 사유에 배우자의 갑작스런 조발성 치매 징후도 포함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난리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신이 거주하는 서부 해안의 '웅장한 승천 센터'로  날아가면서, '프레더릭스 오브 할리우드' 속옷을 입은 '갤럭시 선스트로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꿈에 부풀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내가 도착한 곳은 예전에 신문과 잡지에서 본 적 있는 찰스 맨슨의 스판 목장과 신기하게도 꼭 닮은 어느 버려진 농장이었다. 여신은 내게 그녀의 주거지를 특징짓는 성소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내가 들어서자 그녀는 손톱 줄을 내려놓고 긴 의자에서 비스듬히 누웠다.

"다리를 쉬어요, 허니. 그러니까 당신도 영혼의 중심과 만나고 싶은 거군요."

그녀의 목소리 톤은 아이리스 아드리안(글래머 여배우)과는 거리가 멀었고, 마사 그레이엄 필(현대 무용가)은 더더욱 나지 않았다.

"예, 제 주파수를 높이고 싶어요. 공중 부양, 순간 이동, 비물질화하는 능력도 키우고 싶고, 또 뉴욕 주 복권에 당첨 될 임의의 숫자 조합을 미리 점 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전지적 능력을 갖고 싶어요."

"직업이 뭐죠?"

소위 전능한 자라 일컬어지는 존재가 그런 비전능적인 질문을 하니까 좀 이상했다.

"밀랍 인형 전시관의 야간 경비원입니다.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그다지 성취감은 없답니다."

그녀는 옆에서 커다란 야자수 잎으로 부채질을 해주고 있는 누비아 흑인 중 하나를 돌아보았다.

"얘들아, 어떻게 생각하니? 보기엔 훌륭한 관리임감인데. 정화조를 한번 맡겨볼까?"

"감사합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복종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렸다.

"좋아!" 

그녀가 손뼉을 탁탁 치자, 구슬 커튼 뒤에서 충성스러운 시종 다섯이 잰 걸음으로 열을 맞춰 걸어나왔다.

"저 자에게 밥그릇을 하나 주고, 머리를 밀어라. 침대를 마련할 때까지는 닭장에서 자게 해."

말을 끝내자 선스트로크 여사는 낱말 맞추기를 시작했고, 나는 내가 혹시라도 똑바로 쳐다보면 게임에 열중하고 계신 그녀의 주의가 산만해질까 봐 흘끗 보는 것조차 삼가며 눈을 내리깐 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오로지 순종하겠나이다."

잠시 후 성소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나온 나는 슬슬 걱정이 됐다. 혹시 여기서 낙인까지 찍는 건 아니겠지?


다음 며칠 동안 나는 센터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알게 됐다. 우선 그곳은 온갖 종류의 낙오자들로 꽉 차 있었다. 비겁한 놈, 따분한 놈, 전적으로 별 점에 의존해 살아가는 여배우들, 뚱땡이들, 예전에 어떤 인간 박제 스캔들에 연관된 적 있는 남자, 자신이 난장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난쟁이..... 이들은 모두 보다 높이 뜬 비행기에 오르려는 열망에 차서, 높으신 여신님께 기꺼이 로봇처럼 순종하며 하루 종일 군소리 없이 노력 봉사를 했다. 여신은 가끔 일터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사도라 덩컨처럼 충르 추거나 기다란 담뱃대로 약초를 피우다가 명마 시비스킷처럼 히히힝거리며 웃어대곤 했다.

또한 센터에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전직 경비원인 그가 왠지 낯이 익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성범죄자석방공고법'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자였다. 아무튼 간에 이 충직한 노예들은 그가 가끔씩 시범 보이는 몇 가지 주문과 주술을 구경한 대가로, 해의 길이에 따라 하루 열 두시간에서 열여섯 시간은 들에 나가 센터 직원들이 먹을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밤에는 누드가 그려진 트럼프 카드라든가 자동차 룸 미러에 매다는 장식용 스펀지 주사위, 식당에서 요긴하게 쓰일 빵가루 빻는 방망이 같이 쉽게 잘 팔리는 다양한 소모품을 만들어야 했다.

내 경우에는 오수 정화조를 유지,보수하는 책임 외에, 관리인으로서 땅 위에 뒹구는 캐러브 캔디 바 포장지나 담배 마는 종이 등 센터 경관을 헤치는 각종 쓰레기를 주워야 했다. 오로지 알파파 콩과 된장국, 이온수만으로 버티며 이 고된 하루 일과를 반복하는 건 적응하기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약간 군기가 빠진 라마승 중에 근처에서 간이 식당을 하는 형을 둔 자가 있어서 그에게 십 달러만 찔러주면 간헐적으로나마 참치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었다. 

규율은 느슨했고, 스스로 알아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자율 규제 시스템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규정된 식사 규칙을 깨거나 근무 태만으로 걸리면 매질을 당하거나 야전용 전화기를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또한 자만심을 씻어내는 의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굴욕을 참아내야 했는데, 급기야 미식축구 코치였던 빌 파셀지를 꼭 빼다 박은 전생의 여사제와 사랑을 나누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나는 이제 그만 짐을 싸야겠다고 결심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철책 담장 밑은 등으로 조금씩 기어서 빠져나온 나는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로 향하는 그날의 마지막 747기를 멈춰 세웠다.


"그래서...... 비물질화하고 순간 이동해서 여기에 온 거야? 아니면.... 어머, 당신 턱 밑에 두른 그거 혹시 콘티넨탈 에어라인의 칵테일 냅킨 아냐?"

아내는 아직 기는 게 서툰 아기 달팽이한테나 보여줄 법한 상냥한 인내심을 갖고 물었다.

"그런 경지에 오를 만큼 충분히 오래 있진 못했어."

난 그녀가 야죽거리는 것에 열 받아서 일단 한발 물러섰다가 결정타를 날렸다.

"하지만 이 정도 가벼운 묘기는 건질 만큼 충분히 땀을 뺏지."

내가 바닥에서 육 인치 높이로 슝 떠올라 공중을 선회하자, 아내의 입이 상어 아가리처럼 떡 벌어졌다.

"당신 같은 저주파 차원의 헛똑똑이가 뭘 알겠어."

난 한 방 먹인 기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짐짓 너그럽게 그녀의 무지함을 일깨워줬다. 그런데 이 여자, 갑자기 적군의 공습이라도 당한 것 처럼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더니, 우리 애들한테 악마의 주술을 피해 도망쳐 숨으라고 소리치는게 아닌가.

내가 도로 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강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미 지상에서는 영화 <오페라의 밤>에 나오는 대형 홀 신과 유사한 아수라장이 연출되고 있었다. 애들은 덜덜 떨며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었고, 그 소리를 들은 이웃들은 피의 대학살극이라도 벌어진 줄 알고 우리 가족을 구하러 달려나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마임 배우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뒤틀며 어떻게든 고도를 낮춰보려고 안간힘을 썼고, 결국 이 꼴을 보다 못한 내 인생의 반쪽이 팔을 걷어붙이고는 이웃에서 빌려온 스키 한 짝으로 일반 물리학에 나오는 시공간 휨 현상을 정복하고자 나섰다. 그녀는 스키 앞부리를 내 뒤통수에 건 다음 힘껏 잡아당겼고, 세 번의 시도 끝에 나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맥스 엔도르핀에 대해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어느 날 그가 비물질화된 후 다시는 재물질화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갤럭시 선스트로크의 웅장한 승천 센터는 소문에 의하면, 재무부 요원들에게 초토화됐고 여신은 환생을 했다고 한다. 아니, 환생이 아니라 투옥이었던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렇게 크게 한 번 홍역을 치른 이후로 다시는 공중으로 떠오르지 못했고, 애쿼덕트 경마장에서 육 등보다 더 잘 달린 말의 이름을 한 번도 맞추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수 좋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