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영화 다섯 편

두 번째 결산

by 도군

2016년에 본 영화 리스트를 보니 2015년보다 개봉작 관람편수가 많이 줄었다. 그에 반해 집에서 봤거나 재개봉, 기획전에서 본 편수가 엄청 늘어났다. 2016년에는 좋은 영화들도 많이 개봉했는데 놓친 영화들이 많아서 아쉽다. 극장에 찾아가서 신작을 보는 빈도는 줄고 익숙하고 검증된 고전 혹은 재관람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니 나의 영화 관람 형태가 게을러지고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극장에서 처음 본 히치콕, 기타노 다케시 영화는 스크린에서 처음 보길 정말 잘했다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여전히 나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체험이니까.


2016년 관람형태에서 또 새로운 건 반복관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아가씨>, <아수라>, <비밀은 없다> 같은 경우는 첫 번째 관람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다시 본 경우인데 <아가씨>를 제외하면 재관람이 훨씬 더 좋았다. 특히 <아수라>나 <비밀은 없다>의 경우 내가 올해 가장 많이 떠든 영화기도 하고 그간 내가 얼마나 영화를 관습적으로 봤는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튼 2016년 개봉작 중 베스트 5편, 그 외에 언급하고 싶은 영화 몇 편을 뽑고 단평을 남기고자 한다. 2017년에도 부디 나를 흥분시키고 떨리게 하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길.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뽑았던 베스트 5에서 <벨빌의 세 쌍둥이> 대신 <헤이트풀8>을 넣었다.)


2016 개봉작
미씽 사라진 여자, 라라랜드(2회), 립반윙클의 신부(SE), 위자 저주의 시작, 벨빌의 세쌍둥이, 닥터 스트레인지(ATMOS 3D), 네온 데몬, 최악의 하루, 아수라(2회),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맨 인 더 다크, 할머니의 먼 집, 그림자들의 섬, 카페 소사이어티, 고스트 버스터즈(3D), 스타트렉 비욘드, 걸즈 앤 판쳐 극장판(4D), 서울역, 터널, 부산행, 에브리바디 원츠 썸!!!, 우리들, 비밀은 없다(3회), 아가씨(2회), 엑스맨 아포칼립스, 본 투 비 블루, 곡성, 싱 스트리트,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트럼보, 이니시에이션 러브, 클로버필트 10번지, 헝거, 룸, 헤일, 시저!, 어린왕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쿠미코 더 트레저 헌터, 헤이트풀8, 자객 섭은낭, 스티브 잡스, 캐롤(2회), 데드풀(2회), 빅쇼트, 주토피아, 남과 여


2016 베스트 다섯

우리들.jpg 윤가은 - <우리들>


"흐규흐규 애들 너무 귀엽네 우쭈쭈쭈" 이런 느낌이 아니라 정말 그들의 세계가 완벽하게 짜여있었다. 나노 단위로 분석해보고 싶은 그런 영화랄까.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곤 '영화적'이라는 것은 뭘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영화 속에서 짧아진 봉숭아 물을 보며 누군가는 시간의 흐름을, 누군가는 그녀들의 우정을, 누군가는 다른 무언가를,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이것이 내가 영화에 매료된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밀.jpg 이경미 - <비밀은 없다>

올해 극장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인데 볼수록 더 좋아진다. 세 번째로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연홍의 모험담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 번째 보고 난 뒤엔 이 영화에 대해 뭔가 쓸 수 있을까.


캐롤.jpg 토드 헤인즈 - <캐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엄청나게 나를 흔들어놓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속 모든 것이(연기, 음악, 촬영, 편집, 미장센 등) 너무나 완벽하게 그 자리에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냥 옳은 영화랄까. 사실 토드 헤인즈 감독 작품의 경우 같은 해에 봤던 <벨벳 골드마인>이 훨씬 더 나를 흔들어 놓았다.


아수라.jpg 김성수 - <아수라>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단순히 아수리언 열풍을 떠나서 영화적으로도 살펴볼수록 매우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알탕 영화 유행이 낳은 돌연변이 같은 작품.


헤이트.jpg 쿠엔틴 타란티노 - <헤이트풀 8>

현존하는 가장 성공한 덕후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타란티노가 이역만리 먼 땅에 있는 내가 열광할만한 덕질을 또 해냈다. 현재는 사장된 2.76:1 비율로 된 서부영화를 70mm 필름으로 찍었는데 아마 전 세계에서 이 영화를 제대로 된 상영 환경에서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망할 씨지비 놈들이 단독 개봉을 해놓고 상영 환경을 개똥같이 조성하는 바람에 영등포 스타리움에서 마지막 타임으로 봤는데, 보고 나니 왜 이 포맷을 고집했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 가득 찬 타란티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이 영화를 봤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엄청 좋았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오프닝 시퀀스를 2시간 넘게 늘려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선, 긴장감, 대사빨이 정말 엄청났다.


2016 특별언급작

룸.jpg 레니 에이브러햄슨 - <룸>

<프랭크>의 감독 작품이라는 걸 우연하게 알게 되었는데, 연기도 촬영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인상적이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는 작품 중 하나


클로버.jpg 댄 트랙턴버그 - <클로버필드 10번지>
다크.jpg 페데 알바레스 - <맨 인 더 다크>
위자.jpg 마이크 플래너건 - <위자 저주의 시작>

재밌는 장르영화를 만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끈한 영화를 뽑아냈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리듬감이 좋다는 건데 요즘 같이 지루하게 매끈한 영화가 넘쳐나는 시기에 이런 영화들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그런 의미에서 블루레이로 직행한 <위치>가 너무 궁금하다.


립반.jpg 이와이 슈운지 - <립반윙클의 신부>

일본에서만 개봉했다던 3시간짜리 버전을 특별상영으로 봤다. 엄청나게 공허한 영화였는데, 인물들한테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감독이 인물들을 텅 빈 도시에 던져놓고 인스타그램 필터로 무심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후반부의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서늘하다가 아름답다가 뭉클하다가 공허한 이상한 영화였다. 사실 대체 가족 모티브가 나올 땐 소노 시온이 생각나기도 했다. 뭐 이 영화는 그냥 이와이 슈운지가 하고 싶은 말들을 그냥 이어 붙인 느낌이 더 강하긴 했지만.


걸장판.jpg 미즈시마 츠토무 - <걸즈 앤 판처> 극장판

나는 개인적으로 3D를 좋아하지 않고 4D는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다. 영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관람료를 높이기 위해서 기술을 덕지덕지 처바른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술이 영화의 일부가 되어서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4D 상영은 영화 관람을 방해할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퀄리티로 뽑아낼 거 아니면 4D 상영 안 했으면 좋겠다.


벨빌.jpg 실벵쇼메 - <벨빌의 세 쌍둥이>

셀 애니메이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형식만이 줄 수 있는 질감(물론 일부분 CG가 쓰이긴 했지만)과 묘한 운동감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는데 극장에서 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시저.jpg 코엔 형제 - <헤일, 시저!>

1950년대, 컬러 TV의 등장으로 "누가 극장에 가겠나"라는 우려가 나오는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촬영 현장, 배우, 감독, 공산주의자, 기자 할 것 없이 모두 놀림감으로 만든다. 유일하게 놀림감으로 삼지 않는 건 프로듀서인 에디 매닉스인데 그는 부인 몰래 담배 피운 것만으로도 고해성사를 하는 인물이다. 난 이 영화의 태도가 아직도 혼란스러운데, 영화에 대한 영화이고 고전영화에 대한 태도는 진지하지만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부 조롱거리로 만든다. 감독이 가장 진지하게 그려내는 에디 매닉스는 직업의식은 투철하지만 공장형 영화를 찍어내는 장사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넷플릭스가 등장한 요즘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난장판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인들에 대한 오마주 같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 더 봐야지.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채닝 테이텀의 뮤지컬 시퀀스는 영원히 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라라랜드.jpg 데이미언 셔젤 - <라라랜드>

첫관람때의 열광과는 달리 사실 두 번째 관람 때는 처음만큼 좋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은 여전했다. 희한하게도 곱씹을수록 그렇게 좋은 감정이 사라지는 영화라서 3번까지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2016 대실망쇼

엑스맨_아포칼립스.jpg 브라이언 싱어 - <엑스맨 아포칼립스>

성의없이 찍었따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 자체가 그냥 아포칼립스라고 느껴질 만큼 놀라울 정도로 엉망인 작품이었다. 감독이 망친건지 스튜디오의 입김을 이겨내지 못한건지 알 수 없지만 CG로 그려넣은 지루한 스펙타클에 경도된 나머지 연출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비슷한 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도 너무나 지루했다.


데몬.jpg 니콜라스 윈딩 레픈 - <네온데몬>

예쁘고 항기 나는 쓰레기를 보러 갔더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두 시간 동안 자위를 하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을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심지어 사정도 못했으면서 스스로 엄청 으쓱해하는 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 엘르 패닝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살아남았다.



덧.
집이나 or 상영회에서 본 영화들
이터널 선샤인, 아수라, 신세계, 흑사회, 괴물(봉준호), 파수꾼, 님포매니악 볼륨1, 식스 센스, 싸인, 사랑은 비를 타고, 본 얼티메이텀, 끝까지 간다, 내일을 위한 시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짝패, 나를 찾아줘, 특종 량첸살인기, 더 픽사 스토리, 러브픽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콩나물, 토이스토리1~3, 라따뚜이, 갈증, 뜨거운 녀석들, 박쥐, 스토커(박찬욱),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21 점프 스트리트, 원티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추격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22 점프 스트리트, 비디오드롬, 트윈스터즈, 티그, 카르텔 랜드, 에어플레인, 파이트 클럽, 레퀴엠(대런 아로노프스키), 미쓰 홍당무, 블레이드2, 펀치 드렁크 러브, 서유기 월광보합~선리기연, 레이드2, 저수지의 개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폴리스 스토리2, 표적, 꿈보다 해몽, 스파이(폴 헤이그), 퍼펙트 블루, 살인의 추억, 파프리카


영화제, 기획전, 재개봉으로 본 영화들
사냥꾼의 밤, 키즈리턴, 소나티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하나비, 떠돌이 개, 올드보이, 싸이코, 새, 킹덤(라스 폰 트리에), 할로윈, 뚜르누예의 집, 록키 호러 픽쳐쇼, 고백(나카시마 테츠야), 백설공주 살인사건, 호수의 이방인, 데어 윌 비 블러드, 스파이 브릿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블랙 앤 크롬), 벨벳 골드마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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