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물이 난다
물보라가 세포 속까지 스며들어 경련을 일으켰다. 물빛은 마음을 흔들었다. 어디서나, 아무 때나 흔들리다가, 멈추다가, 이내 떠나버린 바람처럼 잠잠한 것이 마음이다. 마음의 본질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마음을 꽉 잡고 살라는 말은 바람을 잡으라는 말과 같다. 애쓴다고 손아귀에 들어올 바람인가.
에메랄드 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탓 꽝시'폭포를 끝으로 라오스 여행을 마쳤다. 라오스는 어디를 가도 느림의 가치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폭포의 물은 곧은 자세로 꾸준하게 떨어지고 고였다가 흐르는 물길에는 4/4박자의 리듬이 숨겨졌다. 생전에 다시 족적을 남길 확신이 없으므로 영원히 안녕, 이라고 마음속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느림을 인정받는 곳이니 천천히 변했으면.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지금과 같길. 그러나 덧없는 세월을 앞에 두고 무엇을 장담할까. 라오스는 지금 개발의 불빛에 깨어나고 있다. 불나방은 천지사방에서 모여들 것이다.
어디를 다녀도 무엇을 해도 오늘, 지금, 마지막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이다. 예전 같으면 천수를 누린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감정의 요동 폭이 제법 다스려지는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걸핏하면 눈물이 흐르니 살아온 세월 동안 꼭꼭 눌러 놓았던 휴화산이 이제 조금씩 분출하는 거다.
루앙프라방 공항에서 베트남으로 오는 기내에서 라오스의 날들이 생각났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한몫 단단히 챙긴 기분이 이런 것인가. 메콩 강 가를 거닐며 노을의 소멸을 지켜봤고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에 아들과 강물에 몸을 맡긴 일,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는 탁발 행렬에 동참한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험이다.
인생의 터닝과 티핑 포인트를 꿈꾸는 아들과, 여생만큼은 곧고 바른 직선으로 살고 싶은 내가 십여 일 넘게 동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잘 쉬어야 더 잘 걸을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가 함께 걷는 것은 걸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품에 안아 키운 자식이 장성하여 이제는 품을 떠났으니 어미와 자식 입장만도 아니다. 때로는 인생 선배로 작은 도서관 하나쯤으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행하는 관계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토피 피부염에 시달렸다. 증세가 심해질 때마다 병원에서 준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전부였으나 연고에 내성이 생겨 그마저도 듣지 않을 때는 온몸을 무던히도 긁어댔다. 아픈 것보다 가려운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 것은 그 때다. 화기로 가득한 열꽃이 얼굴을 뒤덮고 있으면 아이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도 미안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태중의 열 달이었지 않은가. 우매한 엄마는 걷기 시작하면 저절로 낫는다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었지만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열이 나거나 땀을 흘리면 가려운 부위가 늘었다. 습도가 높은 날이나 밤이 돼도 심해졌다. 밤새 울어대는 아이의 환부에 연고를 바르며 달래다가 같이 울고, 울다가 지치면 서로 졸았다. 발갛게 부어오른 두 눈덩이와 침으로 얼룩진 턱 사이로 해맑게 웃던 아이의 미소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이가 29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처음으로 새집을 장만했다. 앞에는 왕방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있고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봄이면 싹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현관문만 열면 산바람이 불어왔다. 단풍 물이 들었는가 싶으면 낙엽이 쌓이고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갈 무렵이면 또 잎이 났다. 사계절의 산을 풍경화처럼 볼 수 있는 곳이다.
뒷 베란다에 서면 산의 사계절이 모두 잡히는 집으로 이사 오고부터 더는 울지 않아도 되련만 또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흙 기운 덕분인지 아이는 씻은 듯이 맑은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뒷산 약수터를 오를 때나 가려워하지 않고 천진하게 놀 때, 걸핏하면 눈가에 젖던 눈물의 농도와 온도는 진하고 뜨거웠다.
베트남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미니밴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둘 다 지칠 대로 지쳤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쉬는 것이 먼저여서 씻고 누우려 하는데 그 사이에 아들은 밖에 나가 몇 가지 음식을 사 왔다. 밤을 하얗게 밝히던 아기가 이제는 나를 위해 피곤을 마다하고 있다. 울컥, 가슴이 뜨거웠다. 배가 고프면 잠도 안 온다는데, 피곤을 못 이긴 어미는 제 생각만 하는데, 자식은 어미 생각을 한다.
반나절의 휴식 후, 수상 인형극장으로 가서 저녁시간에 공연할 인형극 티켓을 예약하고 검을 돌려주었다, 는 뜻을 가진 구시가지의 호안끼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베트남을 거쳐 왔다는 라오스에서 만난 여행객의 호들갑처럼 못 견딜 더위는 아니나 견디기도 힘들었다. 별스러우나 생각 차이인 것처럼 고통은 땀을 통해 분산되고 흐른 땀만큼 몸도 마음도 가벼우니 이 고통 후에 느끼는 달콤함이 썩 괜찮았다.
호수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세웠다는 대성당이 있다. 이곳을 지나 마냥 걸으니 차의 거리로 알려진 항 디에우 거리에 이르렀다. 거리를 헤매다가 베트남 최대 규모의 카페라는 '쭝응우엔'을 기어이 찾아냈다. 하노이서 꼭 해봐야 할 것 중 하나가 연유가 들어간 커피인 ‘카페 쓰어다’를 맛보는 것인데 하이랜즈 커피점을 비롯해 이 커피를 파는 곳은 무수했다. 하지만 꼭 그곳이어야 했다. 어리석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열사병으로 쓰러질 정도가 아니라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어쩌랴.
위에 얹힌 핀에는 커피 가루가 담겨 있고 아래 컵에는 단내가 나는 연유가 들어 있다. 종업원이 가지고 온 물병의 용도를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물을 직접 부어 커피를 축출할 때, 그리고 얼음과 연유가 담긴 아래 컵에서 커피의 완성이 이루어질 때, 모든 것이 첫 경험이다. 다람쥐 똥 커피로 유명한 베트남에서 진하게 축출한 커피의 쓴맛과 연유의 달콤함을 동시에 느낀다. 너무 써서 달아야 했던 조화가 달콤 쌉쌀하다.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커피 맛과 연유 맛이 앞 다툰다. 분명히 잘 저었지만 커피와 연유는 섞이지 않았다. 쓰면서 달다가, 달다가 쓴 묘한 맛이다. 설탕은 녹는 순간 단맛으로 변하는데 우유를 농축해 만든 가당연유는 두 맛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물과 기름이 평생 따로 인 채 서로를 인정하듯 서로 다르면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카페 쓰어다’를 마시며 두 잔, 세 잔, 아니 무수히 많은 잔의 커피를 마시며 위로받던 쓰고 달던 지난한 인생길을 돌아본다. 초년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쓴 물 나는 젊은 날의 고생 끝에 달콤한 노후를 맞는다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다.
맛의 깊이를 가늠하며 한 모금씩 커피를 넘기니 또 슬며시 눈물이 배였다.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가 한 잔의 커피로 위로받는다. 커피의 힘은 위대했다. 그래서 전 세계인이 커피의 질을 논하는가. 아들도 커피를 즐긴다. 그래서 다행이다. 같이 다니며 취향이 다르면 잔과 잔 사이에 두 가지 향이 섞여 이질감이 생기련만 늘 하나여서 좋다.
저녁 식사 후, 좁은 골목과 작은 거리가 얽히고설킨 구 시가지의 ‘36길’을 걸어서 떠돌이 배낭자의 집인 숙소로 왔다. 오토바이와 차가 내뿜는 매연, 소음이 대단하다. 대단한 거리에 있는 음식점의 낮은 의자에 앉아서 저마다의 인생을 즐기는 이들이 더 대단하다. 전 세계의 모든 냄새가 다 모인 듯, 삶의 냄새가 진하다 못해 덩어리로 엉겨 붙었다. 눈물로 점철된 지난한 인생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