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이 필요해
한바탕 스콜이 쏟아지고 나니 가을 날씨 같았다. 아열대 기후의 우기인 나라에서 가을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모하지만 헉헉대던 공기와 땅의 뜨거움도 호우 덕분에 한풀 꺾였다.
비가 내릴 무렵 씨싸왕웡 거리의 ‘조마 베이커리’에서 ‘시나몬롤’ 빵과 셰이크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현지 음식을 도통 적응 못했지만 빵과 음료로 식사를 대신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마 베이커리’는 비엔티안과 방비엥에도 지점이 있다. 커피와 곡물 쿠키, 크루아상 등을 주로 파는데 맛과 분위기가 썩 괜찮았다. 가는 곳마다 여행객이 손님의 주류를 이루며 문 밖에는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테라스가 있어서 냉방을 한 실내보다 햇빛을 즐기는 유럽인에게 인기가 높다. 무료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잘 되는 덕분에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 폰을 이용하며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며 여유롭다. 더위로 숨이 막힐 것 같아 절절매는 나와 달리 현지의 주어진 환경과 기후를 느긋하게 즐기며 여행의 진수를 누리는 모습을 보면 감히 엄살을 부릴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는 더욱 사나워졌다. 우산은 가지고 있었지만 거리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식사를 하여 배는 든든했으나 이쯤에서 비와 커피의 융합을 어찌 피할 것인가. 테라스의 의자를 당겨 다시 앉았다. 한 잔의 커피를 둘이 나누어 마셨다. 여행 경비의 지출을 맡은 아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는데 비 때문이야,라고 핑계를 대며 커피를 사달라고 여행비를 축냈으나 아들도 기꺼운 표정이다.
도로가로 급류가 흘렀다. 갑자기 쏟아진 비를 예상하지 못한 아가씨들은 시원함을 즐기며 당차게 걷고, 달리는 송태우의 노인 여행객들은 들이치는 비를 피하려고 허둥거린다. 오가는 차의 바퀴가 인도로 물을 튀겨도 앉아 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모두 개의치 않는다. 더위가 멈추고, 온갖 얼룩이 다 지워질 것 같이 비가 내렸다.
삶이 지루하거나 힘이 들 때 긴 여행을 떠나보란다. 낯선 곳을 서성이며 다양한 체험을 하다 보면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고 나도 모르는 나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분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행의 요건은 시간과 돈, 그리고 건강과 용기가 필요이다.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길을 떠날 수가 있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용기도 없으면서 마음만 달뜬다. 탑을 쌓고 부수다가 핑계를 앞세운다. 결국에는 삶에게 죄를 묻고 포기를 위한 포기를 하는데 그것은 용기 없는 자신에 대한 변명이었음을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닫는다.
여행지에 오면 현지민보다 여행객이 더 많다. 그 틈의 나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들도 분명히 그들만이 영위하던 삶이 있다. 그런데 여기 있지 않은가. 이렇게 오면 될 것을 그동안 참 많이도 별렀다. 여행을 떠난 나에게 지인들은 여러 날 째 걱정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여기에 있는 나는 오히려 평범한 생활을 한다.
루앙프라방은 칸 강에서 흐르는 강물과 서쪽의 메콩 강의 물이 합수되고 두 강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칸 강의 다리 건너 북동쪽에 있는 마을은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에 있는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어쩌다가 한 그루씩 있는 나무 그늘 외에는 달리 그늘이 없다.
더위에 아랑곳없이 걷고 또 걸었다. 타박 걸음을 걸으며 땀으로 목욕을 한다. 어쩌다가 쏘이는 햇빛은 피해보기라도 하겠지만 여기는 차라리 맞이하는 편이 현명했다. 매일 10킬로를 훌쩍 넘게 걷는다. 섭씨 38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매일 걷는다는 것이 사실 녹록지 않다. 그러나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불볕을 감내하고 있으니 내 무의식의 세계, 그 마지막은 어디인지 나도 모르겠다.
10년이 넘게 사는 곳도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니 동네에 무슨 가게가 있고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동사무소의 게시판에 주민을 위한 안내서가 붙어 있어도 모른다. 예쁜 카페가 생겨도 모르고 계절마다 피는 길가의 들풀과 들꽃의 아름다움도 모른 채 살았다. ‘귀한 것은 다 놓치면서 무엇을 얻고자 허둥거렸나’ 걷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강 건너 마을과 시내를 다녀와 오후는 숙소에서 쉬었다. 배탈이 났던 아들이 아직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고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서로 지치다 보니 약간은 날카로워졌고 초심을 지키는 방법으로는 몸을 쉬어 주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루앙프라방 시내 중심에는 푸시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탓 촘씨, 라는 금빛 사원과 동굴 사당, 그리고 부처의 발자국이 있던 곳에 세웠다는 '왓 파 풋 타밧'이 있으며 칸 강과 메콩 강, 그리고 루앙프라방 시내가 한눈에 보여 여행객의 사랑을 받는 장소라고 한다.
해가 지기 전, 일몰이 아름답다는 ‘푸시’의 300여 개 계단을 올라 와 흐르는 땀을 닦았다. 북동쪽을 바라보니 오전에 건넜던 칸 강의 대나무 다리가 보이고 서쪽에는 메콩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루앙프라방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나지막하나 우뚝 솟은 푸시 언덕은 여행객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랜드마크 임을 실감한다.
푸시의 일몰은 기대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차지한 구름이 태양을 가렸고 이미 산 저 너머로 해는 졌는데 일몰의 장관을 기다린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두 여행 책자에 아름답게 묘사된 푸시의 저녁 풍경을 기대하고 왔으니 가슴속에서라도 일몰의 환희를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매일 출근하고 종일 업무에 열중하다가 집에 오면 대충이나마 살림을 살아야 하니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미명 아래 스스로 갇혀 사는 내 모습을 보았다. 틀을 만들어 그곳에 스스로 들어앉아 있으니 틀에 꼭 맞는 맞춤형 인간이 되었다. 타성으로 둘둘 말아 정형화된 삶, 누가 나의 자물통을 열어야 하는가.
낭떠러지 앞에 선 듯, 매달리 듯, 아등바등 살다 보니 등을 기댈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산다는데 나에게는 기대고 의지할 언덕이 있는가. 아무 때나 이무롭게 만나 차 한 잔 나누며 서로가 서로의 언덕이 되어 대화 나누기, 소박한 꿈을 꾸며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기 등등의 소박한 언덕을 하나쯤 가지고 사는가.
이러저러한 사념은 내 안의 나를 일깨운다. 새로운 길로 나가라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고, 세상은 넓다고, 그리고 마음 놓고 의지할 작은 언덕 하나쯤은 가지고 살라고 종용을 한다.
자그마한 언덕 가지기. 내 한 몸 지탱하기는 그것이면 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