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공생
태양이 하늘 길을 나서기 전, 마을은 어둠의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다. 숙소 뒤편에서 흐르는 강 물결도 조신한데 어둠 속의 거리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새벽 6시에 시작될 탁발의 공양물을 파는 사람과 행렬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이 뒤섞여 소음을 일으키는 것인데 그들에 의해 새벽의 원칙은 마구 깨지고 있었다.
“엄마가 강가에서 산책하기 좋을 곳에 숙소를 예약했어요.”
이곳에 오기 전날에 아들의 했던 말이다. 실제로 캄코 거리에 있는 숙소와 메콩 강은 아주 가까웠다. 그다지 여낙낙한 성품은 아닌데, 매번 다음 여행지의 숙소를 고르는 일이 만만치 않은데, 숙소를 고르는 기준이 엄마인 나란 사실. ‘엄마가 산책하기 좋을 곳’ 이란 말에 고슴도치 엄마는 팔불출이 되고 만다.
진심이 느껴지는 상냥한 말 몇 마디가 민트 향처럼 연두 빛이거나 푸르렀다. 같은 방향을 향해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예사로 들었다면 말이었겠지만 마음으로 들으니 별이 되고 가슴에 별빛으로 빛나던 말, 쉽게 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말이다. 가졌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어려운 마음이다.
‘탁밧’이라고도 하는 탁발은 승려의 수행법 중 하나라고 한다. 수행자의 아집과 아만을 없애고 무소유와 무욕을 실천하는 행위로 꼭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잘 사는 집과 못 사는 집을 골고루 다녀야 하며 누구나 복전을 일구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수행법이다. 그래서 신도가 승려에게 공양물을 바치는 것은 신도들에게 공덕을 쌓을 기회를 주는 나눔이다.
라오스의 남자는 평생에 한 번은 승려로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한다. 사원에서 공부를 하고 탁발로 먹을 것을 구하며 아프면 병도 고쳐주므로 라오스의 사원은 국민의 교육기관이며 의료기관이고 복지기관인 셈이다. 새벽에 걸식하여 얻은 음식의 일부는 가난한 중생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사원으로 가져간다. 가져간 음식은 부처와 성현에게 먼저 공양한 후에야 하루 한 두 번을 먹는데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음식만을 섭취하는 무욕의 삶을 살면서 타인의 보시하는 마음을 헛되게 않게 한다.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온 목적 중에 하나가 하루를 알리는 탁발 풍경을 보고 싶어서였다. 국민의 97%가 불교신자인 라오스 사람은 아침 일찍 음식을 만들면 조상에게 가장 먼저 올리고 그다음이 탁발승이다. 그 후 아침밥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데 불교의 철저한 나눔을 실천이 삶에 배어 있다.
“둥, 둥.....!”
불법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여명 속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떼려는 발걸음마저 멈추게 하는 장중함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요동쳤다. 그러나 얼어붙은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은 상인이다. 그들의 법고소리는 공양물을 팔 기회가 줄어드는 소리라 밥이 담긴 도시락과 과자, 사탕 등을 하나라도 더 파느라 다급해야 했다.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공양물을 가지고 나온 처지다. 탁발의 순수를 훼손시키는 관광객이 되고 싶지 않아 전날 미리 정성껏 장만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보시를 할 사람은 인도 위에 자리를 잡았고 구경꾼은 차도에 서서 승려의 긴 행렬을 기다렸다. 음식을 산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돗자리를 피해 맨땅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지 않았으니 맨바닥에 앉는 것이 마땅하고 무엇보다도 나를 낮추며 진정한 보시의 마음을 가져보고 싶었다.
안갯속에서 맨발의 군단이 나타났다. 80여 개의 사원에서 동시다발로 나온 승려 군단은 긴 대열을 이루고 거리를 향해 불법을 쏟아내고 있다. 중생이 건네주는 시주 음식을 발우에 받은 승려들은 길 중간에 놓인 큰 바구니에 받은 음식을 덜어 넣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마지막 골목길 끝의 남루한 차림의 어린아이들에 게도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모두 나누고 베푸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구경거리가 되고 관광 상품이 되어 버린 루 아프라 방은 탁발 풍경은 보시의 참뜻이 상업화되어 안타까웠다. 목탁소리를 듣고 쌀이 담긴 조롱 바가지를 들고 대문으로 달려가던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새 떼가 떨어진 밥알을 쪼아 먹기에 바빴다. 승려들은 보이지 않고 맨발의 아이들도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슬을 머금은 꽃이 깨어나고 마을은 하루를 향해 수런거리는데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거리에 서있는 나는 허전했다.
여행객은 여행을 즐긴다. 시주 음식을 팔는 현지민은 여행객 덕분에 먹고 산다. 가난한 집의 어린아이는 승려가 나누어주고 간 음식으로 하루를 살고 승려의 뒤를 어슬렁거리며 따르는 늙고 병든 개와 새까지 모두 승려의 걸식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종국에는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나눔이었지만 순한 자연색 그림에 만들어진 물감을 마구 덧칠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다 같이 생을 이어야 한다. 800년간 란쌍 왕조의 수도였던 고도 루앙프라방에서 살았던 사람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 그리고 훗날, 모두 그렇게 생을 잇고 역사를 만들어 나아갈 것이다.
1995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메콩 강과 칸 강에 둘러싸여 물도 풍부하며 나지막한 프랑스식 건물들은 아늑하며 단정한 모습이고 이곳에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고풍스러운 멋이 흐를 곳 같은 곳.
내일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떠남이 섭섭하다. 여행은 떠남을 의연하게 해주는 행위인데 설익은 여행자는 자꾸 눈으로 가슴으로 뭔가를 밀어 넣으려고 애를 쓴다. 루앙프라방이 사라질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