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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ul 30. 2022

그냥 사람이 되기로 했다

최근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이 터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방들은 모두 자기가 하던 대로 했을 뿐이지만 그간 쌓여왔던 내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부터 시작해, 아빠까지.

오래오래 곪아왔던 해묵은 감정이 결국 억눌리다 못해 다 역류했다.


배려하고 또 배려하고.

그들 입장을 헤아려 내 욕구를 꾹꾹 참고.

그들의 요구를 외면하면 죄책감부터 올라와 결국 내 요구를 외면해버린 나날들.

모두 이어져 하나의 폭탄이 되어버린 듯하다.


최근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나 잠결에 터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분노에 쌍욕을 했다.

숨이 막힐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이 쿵쾅 거리고, 머리까지 아픈 증상이 며칠간 이어져오던 차였다.


상대의 요구에는 코웃음까지 치며 하나도 귀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본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에게 지쳐버린 탓이었다.

그래, 저 사람들은 상처가 있으니까’, ‘힘드니까’라고 배려하던 게 어느새 배려가 아닌 나 자체가 되어버린 탓이었다.

그들이 날 이렇게 우습게 보며 배려 따위 하지 않게 된 것은.


그런 며칠을 보냈다.

그간 그냥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그 누구의 요구에도 귀 기울이지 않으며 내 마음속 목소리에만 귀 기울였다.


사회적 체면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서, 그리고 욕먹을까 봐 두려워서.

나는 수많은 두려움 때문에 여태 날 억누르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것이다.


부모님이, 교회의 어른들이, 교회에서 만났던 또래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리고 수많은 스쳐간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하고는 했었다.

모두와 잘 지내야 하며, 모범이 되어야 하며, 절대로 정도의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관계라는 게 쌍방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 사람들은 목사님 딸인 날 탓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도 나를 억눌러왔나 보다.

이제는 그런 착한 아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는 서른의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착한 사람이 안 되면 그토록 죄책감을 느꼈나 보다.


그렇게 날 억누르기만 하니, 타인을 향한 이해심이 점점 더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속으로는 못마땅해하면서도, 모두와 좋은 관계여야 하기 때문에 난 불만 표출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니 속은 점점 더 썩어 들어갈 뿐이었다.


썩다 못해 문드러져 마음속에 분노만 남자,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상대도 자기 욕구만 따라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데 도대체 나는 왜 나를 억누르면서까지 저들의 욕구에 나를 맞추고 있나?라는 질문이 그렇게 툭 머릿속에 들어왔다.


억울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는 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속아, 그게 내 정체성인 줄만 알고 살아왔다는 게.


분노가 한번 가시자 이젠 억울함이 솟구쳤다.

평생 억눌려왔던 모든 억울함이 그대로 역류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다 내 탓이오,라고 지나왔던 모든 시간들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만큼 억울해 죽겠더라.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걸 관두기로 했다.

그냥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는 그냥 사람이 되기로.


아직 연습을 많이 해야 하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잠에 못 들 만큼 괴롭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내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내 마음속을 더 이상 점령하지 않는다.

죄책감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들 생긴 대로 사는데, 나도 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이 생각을 굳게 가지고 나니,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면 그만이다.


그러니 상대가 내 기준에 좀 이상하게 굴어도 저 사람도 저 사람 방식이 있겠거니, 라며 전보다는 더 잘 넘기게 됐다.

날 이해해주는 마음을 가지며 스스로를 방어해 주기로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타인을 향한 이해심이 늘어난다.


과거에 내게 상처 준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받게 될 스트레스를 미리 현재까지 끌어와 받는 짓도 멈추게 됐다.

그러니 인생이 한결 살맛이 난다.


아직도 착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날 불쑥불쑥 찾아오고는 하지만, 이제는 그걸 떨쳐버릴 수 있게 됐다.

그 누구보다 나를 신경 써주는 게 당연하니까.

타인들도 내게 맞출 의무가 없듯, 나에게도 그렇게 할 의무가 없는 거다.

남의  드느라  죽이는  아니라  편을 제일로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나는 앞으로 그냥 사람처럼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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