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어가면서 느끼는 점은, 나의 마음이 거친 세상에 쓸려서 둥글어지기보다는, 뾰족한 모양으로 갈렸다는 것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둥글게 이해하고 넘어가고, 조금 기분 나빠도 져주고 넘어가던 일에 대한 사실확인을 하기 위해서 약간은 뾰족한 모양새가 되었다.
단순히 나이가 먹어가며 생겨난 자존심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이유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전 같았으면 사람 좋게 ’허허허’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믿으며 차라리 내가 바보 입장을 자처하고 말던 게 과거의 나였다면, 요즘의 나는 분명 가시가 돋아난 모양새다.
누군가가 날 콕 찌르면, 그 사람을 한 번쯤은 따갑게 쏘아봐 줘야 하는 정도의 소심한 복수는
해야만 하겠다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 언제부터인가 자리를 잡고 있더라.
그러면 그럴수록 날 쿡쿡 찔러대는 사람을 걸러내기에는 좋지만, 동시에 곁에 더 오래 남길 수 있을 인연이나 언젠가 도움을 한 번쯤은 받을만한 사람을 놓치고 마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누군가가 실수를 해놓고 내 책임으로 돌리길래, 사소한 일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일에 대해서 나는 한번 톡 쏴주고 말았다.
그래서 그럴까. 내가 실수한 일을 충분히 필터링해줄 수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함구하더라. 그리고 그 실수에 책임을 지는 건 오롯이 내가 되었고. 아마도 내가 따갑게 쏘지 않았더라면, 충분한 배려를 통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서 나는 아차, 싶었다.
이것은 한번 허허, 웃고서 넘겼을 일에 나잘났다고 가시를 세웠던 결과물이라고.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때가 있고,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툭툭 치며 자극할 때도 있었을 텐데. 나는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상대의 실수에 뾰족하게 반응하고 날았으려나.
마음에서 찰나동안 삐져나오려는 뾰족함을 참아내는 힘을 기른 게 어른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조금 퇴화된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그런 대접을 이웃에게 해주라는 성경의 가르침도 잊은 지 오래였다.
억울하게 한 대 맞으면 나도 당연히 한대 돌려줘야지,라는 결단의 폐해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물론 일부러 날 때리는 사람을 향해서는 싸워야겠으나, 어쩌다 실수로 치고 날 지나간 상대에게 지나칠 정도로 뾰족하게 굴 이유는 없다.
인생은 공수교대이기에, 내가 언젠가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본의 아니게 실수로 치게 되는 날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뾰족함을 못 참아서 옆에 사람을 찌르고 나면, 나도 그만큼 찔릴 위험에 나 자신을 노출시키고 마는 것이다.
찰나의 뾰족함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조금이라도 허허 웃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조금 더 너그럽게 상대의 실수를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저 사람과 같은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뾰족함으로 상대를 대했던만큼, 공수교대의
순간이 더 괴로워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