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세상을 배우는 수업

교실에서 아이들이 묻는 말들, '서평쓰기'

by 구름빛

책 읽고, 글쓰기 수업을 학교에서 진행한 것도 벌써 6년이 되었다. 처음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을 때는 나도 막막했다. 어릴 때는 글 꽤나 쓴다던 문학 소녀였고, 대학에 와서도 꾸준히 글을 쓰긴 썼는데 막상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무게가 달랐다. 독서량을 늘렸고, 사람들이 잘 쓴 글이라고 하는 글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평 쓰기 수업은 현 학교에서 2년차 수업 때 시작하게 되었다. 독후감 쓰기도 좋았고, 생활글 쓰기도 재미있었지만 서평 쓰기 수업은 특히 다르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분석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의미있게 다가왔고, 세네시간의 책 대화 끝에 제출한 완성글에 담긴 청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을 읽어 가며 스스로 반성도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진지하고, 깊게 고민했고 그래서 이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조금씩 즐거워졌다.


수업을 처음 준비할 때는 학생들이 ‘비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정말 ‘서평’을 완성해 내는 아이들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학생들이 서평을 쓰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이 맞는지 고민되기도 했고, 자신의 진솔한 감상을 파악하기 이전에 책만 ‘분석’하다가 본인에게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비논리적인 비난을 쏟아내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처음 했던 책 대화에서는 아이들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책을 탓하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이 걱정과 고민은, 수업 설계 단계에서 학생들과 충분히 소통하게 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서평’은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내가 이 책을 ‘추천’해주는 글임을 충분히 이야기했고, 여러 선생님과 논의해서 아이들이 읽을 만한 ‘교육적 의미‘가 있는 책을 선택했음도 안내하였다. 그렇게 하고 났더니 서평 쓰기를 위한 책 대화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책을 탓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게 되었다. 책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 애쓰는 몇몇 친구를 중심으로 아이들은 장면을 중심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어떨 땐 문장을 중심으로 글을 뜯어 읽어 나갔고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3년간 계속 글을 쓴다. 그 첫 시작을 고1 때 서평으로 여는 셈인데, 그렇게 책읽는 습관이 만들어지면 2학년, 3학년 때는 별 이야기를 안해도 알아서 읽고 쓰는 학생들이 생긴다. 나 또한 아이들과 책 대화를 하고, 글을 읽고 평가해야 하다보니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고 고민하게 된다.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하는 방법도 공부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글이 쓰고 싶어져 최근에는 한달에 1편도 안되지만 에세이도 쓰고 아이패드에 읽은 책도 정리해두고 있다. 학교에서의 서평 쓰기 교육은 학생들에게 ‘책 모임’을 경험하게 한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대화를 나누려면 완독을 해야하고, 완독 후에 질문을 만들어 보려면 꼼꼼하게 뜯어 분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작가에게, 인물에게 ‘질문’을 던지며 읽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의 문해력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된 독서 교육은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교육 체제에서 대입을 앞둔 아이들에게 ‘평가’와 ‘성적’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교사들도 이를 시도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필요성은 알지만, ‘일단 대학부터 가자.’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국어 학원’에 돈을 내는 것을 선택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성과를 위해 지금 세네시간 소설을 읽는 것에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다양한 학교에서, 도전하고 있다. 개인의 노력과 도전이 시스템을 넘어서기 쉽지 않지만 지속적인 노력 끝에 국어 교과서, 교육과정에서 ‘독서 교육’이 주요 교육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개인의 시도가 모여 교육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희망을 품게 된다. 학교 수업에서의 서평 쓰기는 단순히 책을 요약하고 감상을 적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학생들이 끝까지 읽고, 질문하고, 말하고, 써보는 경험 속에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자신의 언어를 찾는 훈련이다. 어쩌면 그렇게 쌓아가는 시간들이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문해력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작고 단단한 씨앗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