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하면.
일을 좀 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안방 문을 열었다. 이불을 똘똘말고 있는 남편이 침대 끝에 매달려 자고 있다. 그는 왜 넓디 넓은 라지킹 사이즈의 침대를 두고도 꼭 끝에 저렇게 매달려 잘까. 나는 그 이유를 남편이 어느 날 찍은 사진에서 발견했다. 나는 내 뒤에 큰 공간을 남겨 두고 남편 등에 매달려 잔다. 끝으로 끝으로 향하던 남편은 침대 모서리에, 나는 그 등 뒤에 꼭 매달려서 잔다. 어느 날 남편은 어이가 없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왜 본인 뒤에 공간이 저렇게 넓은데도 자기 쪽으로 와서 자냐며.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겁'.
나는 본래 겁이 많다. 어릴 때도 밤에 잠을 자다가 괜히 등골이 오싹해지면 안방으로 건너가 한참 동안이나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으로 돌아가서 자라며 혼난 것이 부지기수. 집에 일이 있어 부모님께서 자리라도 비우신 날이면 나는 온 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잠을 청했다. 왜 그렇게 겁이 많았는지. 어떤 날은 창문 밖으로 어른거리는 빛이 꼭 귀신 형체처럼 느껴져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온 나와 만나 결혼한 남편은 겁이 없다. 쪼만한 키에도 어찌나 대찬지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거라면서 이렇게 겁 많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남편과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나는 이세계를 믿을 때도 있고, SF 소설 속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N 중에 N이다. 입에 '만약에'를 달고 살며, 가끔은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혹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한다. 침대에서도 혼자 별생각을 다하다가 무서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 뒤에 붙어 있으면 그 체온이 나를 안전지대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요전날은 와인을 몇 잔 마셨더니 잠을 도무지 깊이 잘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몸이 불편해져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잠깐 잠이 든 사이 한기가 느껴졌고, 차가운 거실 소파에 혼자 누워 있자니 괜히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안방으로 들어가려 몸을 일으켰는데 괜히 등이 쭈뼛서더니 무언가 내 뒤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안방만을 보면서 그 새벽에 뛰어서 문을 열었다. 문 뒤, 깜깜한 방 안에서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 침대 끝에 붙어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뒤를 돌아보니 환한 거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 불을 끄고, 남편 뒤에 붙어서 숨소리를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한 집에 살면서 이렇게 위안을 받다니. 새근새근 잠을 자는 소리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좋다. 내가 아플 때, 힘들 때 이 집으로 돌아오면 이 사람이 내 손을 잡아주겠지.
내 키는 167이 넘는다. 남편은 170 남짓. 체격은 내가 남편보다 더 크다. 가끔 나는 남편을 번쩍 들어 올릴 때도 있다. 그런데도 여지없이 밤만 되면 남편 등 뒤에 붙어서 잔다. 불편해서 뒤척일 때까지 꼭 붙어 있는다. 그의 등 뒤는 나에게 안전하고도 위로가 되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