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주사를

남편에게도 역할이 필요해

by 구름빛

인공수정 1차가 말도 안되는 수치로 마무리되고, 시험관 1차가 시작되었다. 시험관이 하기 싫었던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자가주사가 두려웠다. 워낙 겁쟁이여서, 친정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 때도 새벽녘에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다 커서도 부모님 방 앞에서 서성였다. 지금도 남편이 당직으로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온 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산다. 불이 꺼져 있는 방에서 무언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극단적인 N.


그런 나에게 자가주사란,

- 혹시 한 번에 바늘을 찌르지 못해서 여러 번 찌르게 되면 어쩌지?

- 약제를 잘못 섞어서 한 텀을 낭비하게 되면 어쩌지?

- 공기 방울을 제대로 빼지 않고 맞아서 몸이 잘못되는 건 아닐까?

- 과한 호르몬 투여로 쇼크가 오는 건 아닐까?


...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나이는 이제 빼박 마흔이지 -물론 생일 안지났으니 서른 아홉이지만- 난임 병원에서 4번의 자연 임신, 1번의 인공 수정을 시도했지만 임신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병원에서는 이제야 말로 시험관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사실 꽤 오래 미뤄온 것이다, 이 시험관이란 결정을. 결혼도 어느새 3년차가 되었고 남편 머리만 흰줄 알았는데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많이 생겼으니 더 늦으면 아이에게 미안할 일이다.


다행히 지난 인공수정 과정에서 남편이 기가막히게 주사를 잘 놓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이번에도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는 늦잠을 포기했고, 남편은 출근하는 시간을 5분 당겼다.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6시 반에 주사를 맞는다. 가장 괴로운 것은 일명 '퍼고'라고 불리는 흰색 가루와 섞어 맞는 약제이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도 이 약은 좀 뻐근하고 아플테니 살을 꽉 잡아서 아플 지경이 될 때 놓으라고 추천해주셨다. 꼬집는 아픔으로 주사의 아픔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도시락을 다 싸고,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바깥을 보며 약제 1과 약제 2를 섞어서 주사 약을 만들었다. 고날에프도 맞아야 하는 관계로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주사를 꺼내서 225ml로 수치를 맞추어 놓고 아일랜드 식탁에 두 개의 주사를 나란히 놓았다. 남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배를 움켜 쥐고는 두 방의 주사를 나란히 놓았다. 오늘따라 퍼고가 너무 아파서 놓는 내내 나는 끙끙거렸다. 나를 올려다 보던 남편이 주사를 다 놓고는


"많이 아픈가보네. 참느라 수고했어."


한마디 하고는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오빠가 주사 안놔주면 나 시험관 안할거야. 나만 주사 맞아야 하는 게 너무 속상해."


그의 위로에 나는 투정을 부렸다. 시험관 과정에서 여자는 병원에 가 초음파를 보고, 주사를 맞고 수면 마취를 한 뒤 난자를 채취한다. 난소가 과자극되면 복수가 찰 수도 있고, 난소와 방광이 맞닿아 있으면 방광을 주사가 스쳐지나갈 수도 있다. 혈뇨의 위험도 있으며 때때로 장기 내 출혈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수많은 설명 조차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여자에게만 한다. 남성들은 용어를 잘 몰라, 설명을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여성인 내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 그리고 몸에서 이루어지는 불편함을 남편과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이 자꾸 나를 외롭게 만든다. 그럴 때면 남편이 놓아준 주사 바늘 자국을 본다. 어깨를 두드리던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 침대에 누워 혹시 결혼을, 그리고 임신 시도를 후회하지는 않는지 조심스럽게 묻던 그의 뒤통수를 떠올린다. 시험관 과정에 남편은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야 한다. 감정을 만져주던, 집안일을 더 하던 어떤 식으로든 지금 우리가 '함께 이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마음이 누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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