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
방학을 하자마자 시험관을 시작하려 했었다. 겨울 방학은 시험관으로 보내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12월의 내 모습과는 별개로, 과거의 나는 1월이면 '태교여행' 정도가 가능할 거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자신감이었다. 그렇게 잡은 일본여행은 나의 배란기와 거의 닿아 있었고 계산해 보니 시험관은 도무지 들어갈 수 없는 일정이었다. 난자 채취를 여행 직전에 한다 해도 이식은 불가능했고, 조금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난자 채취 자체가 여행 기간과 겹칠 판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생리 이틀차에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 실은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내가 이미 교사임을 알고 있었던 의사 선생님은 혹시, 여행가세요? 라고 물으셨다. 나랑 또래처럼 보이는 의사여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잘아는지. 그 질문 끝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돼! 정말요? 언제 가세요?" 질문을 쏟아부었다. 이번 사이클에는 시험관을 시작해야 한다는 계획이 이미 그의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이야기해왔으니까. 이상하게도 그 아쉬움이 나를 안심시켰다. 수많은 환자 중 한 명일텐데, 이렇게까지 아쉬워해주다니. 여행 일정을 말하자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인공수정은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한번 해보실래요?"
여행 전날 인공수정, 불확실 of 불확실성에 배팅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있을 배란통도 걱정이었고, 인공수정 후에는 매일 질정이란 이름의 프로게스테론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잘 챙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서 매일 내 몸을 살피며 예민하게 구는 것보다 어쩌면 여행 직전에 인공수정을 하는 게 차라리 나을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인공수정 1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난임 진단서'가 발급되었다. 보건소에 진단서를 비롯하여 몇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난임'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6개월간 자임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서류상 나이도 서른 아홉이었다. 진단서에 의하면 나는 "35살 이상이면서 6개월 이상 자연임신이 되지 않"으면 "원인불명"의 난임이다.
여행이 잡혀 있으니 과배란주사는 하지 않고, 배란유도제를 먹기로 하였고 그간 시기를 잘 맞추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착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소론도정을 함께 받았다. 여행 가기 직전 주에는 3일이나 병원에 들러서 초음파를 보았고, 다행히 내 몸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초음파 후 토요일 저녁에 맞아야 할 난포주사를 처방받았다. 처음으로 집에서 내 몸에 주사를 놓아야 했다.
주사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데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한 마디라도 놓치면 시험을 망칠까 봐 숨죽이며 듣던 그때처럼. 내가 과연 스스로 주사를 놓을 수 있을까. 주사바늘을 잘못 찌르면 다시 써도 되나. 한 번에 못 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이 많아질수록 자꾸만 문 밖의 남편이 신경 쓰였다. 다행히 그도 내 눈빛을 알아보고 설명 도중에 주사실로 들어왔다.
"남편분께서 잘 들으시고, 아내분께 주사를 놔주시는 게 나을 수 있어요. 혼자 주사 맞는 건 간호사들도 잘 못하거든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말에 마음도 한결 든든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물었다.
"아까 계속 나 찾은거지, 혼자 주사 놓기 무서워서? 걱정하지마 내가 놔줄게."
뭘 믿고 저렇게 단정짓는지 의아했지만, 그의 한마디에 마음이 좀 놓였다. 나보다 꼼꼼하고 섬세한 사람이니 적어도 실수는 하지 않겠다 싶었다. 주말이 되었고, 하루종일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유튜브로 자가 주사 놓는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계속 읽어댔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공부는 내가 다 했는데, 막상 주사는 남편이 놓았다. 뱃살이 많으니 아플리 없다는 농담과 함께(진담일수도) 주사 바늘은 단박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 순간, 남편만 옆에 있다면-남편이 주사를 놓는다면-시험관도 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에 갔다. 사흘 내내 3만보 가까이 걸었고, 4일차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서 놀이기구도 탔다. 최대한 임신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우리끼리 노는 것에 집중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즐겼다. 피검사 결과 0.2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를 확인하고 나니 너무 놀았었나 싶기도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니 이제 정말 시험관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과배란도 무섭고, 난자 채취도 엄두가 나지 않지만 주사를 잘 놓는 남편이 있고 다녀오고 싶은 여행도 다녀왔으니 새로운 시작을 할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생리를 기다리고 있다. 프로게스테론 질정은 오늘부터 넣지 않을 예정이니 곧 시작하겠지. 그러면 다시 병원을 찾아서 이야기해야겠다. 2월에는 시험관을 해보겠다고.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 없다지만, 내 몸을 알아가는 일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다.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모양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시간을 먼저 살아내야 하는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