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기다리는 두 시간
생활기록부 정리도, 성적 확인도 모두 끝내고 방학을 맞이하였지만 아침 6시 5분, 오늘도 남편과 함께 일어났다. 먹다 남은 피자를 아침으로 싸주고 나도 가방을 바리바리 싸서 집을 나섰다. 병원에 재진접수를 하고 22번이라는 순서를 받았다. 최소한 두시간은 걸리겠다 싶어 근처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이 난임 병원은 어플로 진료 대기 순번을 안내해 준다. 혹시 모르니 7번째쯤 되면 병원으로 돌아가야겠다. 이번 주기에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배란유도제도 잘 받았고, 조금 일찍 내원해서 보니 난포도 잘 자라 있어 난포주사도 적당한 때에 맞았다. 혹시 몰라 의사가 안내해준 것보다 숙제를 한두번 정도 더 했고 그래서 기대감이 더 컸던 주기였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는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일은 성실함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면 어느 정도는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커피를 끊고, 와인과 맥주를 줄였다. 쑥차, 오르조, 카모마일, 루이보스 등 평소에는 내 돈을 주고 사지 않았던 무카페인차를 들였고, 와인과 맥주 대신 탄산수와 애사비를 섞어 마셨다. 그렇게 쌓인 날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오늘도 병원 앞이다.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통제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오전을, 어떤 날에는 하루를 통으로 비워야 한다. 이 흘러가는 순간을 그냥 두어야 한다. 아무리 아까워도, 해야하는 일이 있어도. 아이를 갖는 일이 그만큼 나의 우선 순위로 올라왔으므로. 지난 6개월간은 주말에 놀러가기도 어려웠고, 혹시 모를 이벤트를 대비해야 하니 친구들과 술약속도 잡지 않았다. 늦게 잠을 자면 착상이 잘 안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지만 몸은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았다. 때가 되면 배란을 하였고, 또 시기가 도래하면 생리를 했지만 그 뿐이다.
병원에서는 늘 비슷한 말들이 반복된다. “수치는 괜찮아요.” “이 정도면 잘 자라고 있어요.” “조금 더 지켜보죠.” 그 말들은 모두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설명은 있지만 이유는 없고, 과정은 있지만 방향은 없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선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는 이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안 생기면 안 낳지 뭐.'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가 간절하지 않았고, 남편과 둘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지나치게 더운 여름, 생각보다 춥지 않은데도 폭설이 내리는 겨울. 그 계절들을 지나며 정말 아이를 낳아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도 불안하다. 가끔 남편의 얼굴에 비치는 아이의 얼굴을 엿보면서, 가족을 만드는 행복을 나도 모르게 꿈꾸고 있었나 보다.
예측이 어긋나는 일이 뉴스에 연일 보도된다. 갑자기 붕괴된 환율, 변덕스러운 날씨,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집값, 이를 붙잡으려는 정책들. 그 불안 앞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망설이는 것처럼, 남몰래 꿈꾸고 있는 미래와 불확실한 임신 사이에서 매일 흔들린다. 마흔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데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말을 듣지 않는 세계에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