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술마시는 날

생리가 시작했다.

by 구름빛

자임 준비도 이제 반년이 되었다. 8월부터 병원에 들러서 꾸준히 초음파를 보면서 임신 시도를 하고 있다. 아주 정상적인 사이클로 돌아가는 편에 속하는 몸인데도, 배란 유도제를 먹으면서 간혹 이상증상이 나타난다. 내 경우, 배란이 매우 빨라졌다. 그렇다고 생리 주기가 짧아진 것은 아니다. 생리주기는 이번에는 생리가 시작한 날 기준 열흘만에 배란이 됐고 이후 17일 뒤 생리가 시작되었다. 첫 주기 때에만 정상적이었고, 그 뒤로는 계속 배란이 8~10일 안에 진행되고 있다. 생리가 시작한 날 기준이고, 생리 3~4일째부터 배란유도제를 먹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5일간 배란유도제를 다 먹자마자 배란이 되는 셈이다.


황체기가 점점 길어진다고 병원에 이야기를 하니, 의사는 착상이 안되는 경우 그럴 수도 있다는 말만 남겼다. 당연하다. 내 몸에 현미경을 달아놓고 24시간 확인하는 게 아닌 이상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100% 확신할 수 있을까. 배란통이 있는 내가 그나마 가장 확인이 빠르다. 이렇다 보니 배란테스트기도 함께 확인하며 진행 중인데, 어떤 주기에는 배란테스트기 조차 확실하게 피크가 뜨질 않았다. 난포 안에 난자가 있는 것 맞는 건가 의심이 될 때도 있다. 다낭성도 아니고 피검사 수치는 모두 정상인 데다가 난포 크기도 잘 자라고 있으니 3개월 정도는 식단을 매우 클린하게 먹었다.


살도 4키로 정도 빠졌고, 술과 커피를 모두 끊었다. 그런데 이번달, 예상보다도 너무 빠르게 이루어진 배란과 남편이 밤샘 근무 이슈로 충분한 시도를 하지 못한 채 주기가 지나가 버렸다. 숙제를 안한 건 아니라 커피와 술은 계속 끊은 상태로 생리 주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생리 주기에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서 그런지 밤마다 술이 땡겼다. 간혹 PMS 증상으로 술이 땡길 때가 있기는 했는데, 이번엔 유독 심했다. 야근을 하거나, 저녁에 문제집을 쓰거나 하는 일을 조금 무리해서 한 날에는 여지없었다. 그럴 때마다 애호박전을 조금 먹거나, 제로 콜라를 반컵 정도 먹거나 하면 기분이 가라앉아 그렇게 지내다가 생리를 확인한 날 친구와 술약속을 잡았다.


한 3~4개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서일까? 둘이 900짜리 사케 한곽을 시켜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안주를 든든히 먹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술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친구와 나는 원래 주당 출신(?)이라 그렇다고 사케를 왕창 남기진 않았다. 거의 한 곽을 다 마셨고 스키야끼와 함께 먹다보니 기분 좋게 얼큰한 상태가 되었다. 임신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임신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도 여전히 술이 맛있었고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는 기분이 좋았다. 일본 주점을 그대로 갖다 놓은 듯한 이자카야에서 대학생들의 시끌한 목소리를, 아저씨들의 호탕한 웃음 소리를 듣다가 이제 이런 생활은 끝이구나 싶었다.


술은 먹을 만큼 먹었다. 이십대에는 술을 마시다가 길바닥에 토하기도 했고, 맥도날드에 술취해 엎어져 있는 나를 남자친구가 데리러 온 적도 있었다.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보았고, '못 놀았다'는 후회는 정말 전혀 없는데도 내 젊은 날이 이렇게 끝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다니.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가 넌 놀 만큼 놀았다고, 너 만큼 젊음을 즐긴 사람도 없을 거라며 본인을 보라고 했다. 친구는 서른에 아이를 낳아서 벌써 아이 둘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야 조금씩 사람들과 저녁에 술자리를 갖는다. 그래, 난 정말 놀만큼 놀았다.


임신을 준비하며 깨끗한 음식을 먹으며 몸도 마음도 클린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나다. 깨끗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간혹 맥주 한잔이 간절하고, 운동을 억지로 하면서도 짜증이 난다. 귀찮은 날에는 청소도 미루어 두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임신을 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이렇게 누워 있을 수만은 없겠지?


임신은 정말 보통의 마음 준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아직은 임신 후 '못하게 될 일'만 생각이 나고, 찾아올 행복은 묘연하다. 그러면서도 생리를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안생기면 안생기는 대로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 조급해 진다. 86년 범띠, 2026년 내 생일이 지나면 나는 빼박 마흔이다. 대학을 다닐 때는 마흔에 임신을 고민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대범하게 미래를 단칼에 결정한, 멋있는 중년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의 마흔은 청년도 중년도 아니다. 나이는 중년을 향해 가는데 마음은 청년 그 자체. 기억력과 체력은 나이를 따라 가는데 놀고 싶은 마음과 흥은 이십대에 멈추어 있다. 슬픔을 느끼는 예민함도 이십대에 머물러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처는 똑같이 받고.


그러니, 한달에 한번 술을 마신다. 생리가 시작하면 배란 유도제를 마시기 전까지 그 어느 날. 엄마가 되기로 했다고 한순간에 성숙한 건 아닌가보다. 어쩌면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는 평생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일 매일 조금씩 성숙해 가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겠지? 내일부터는 다시 클린한 생활로 돌아가봐야겠다. 기약없고, 대답없는 임신이지만 그래도 혹 모르니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잡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