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이의 얼굴
내가 최초로 가족으로 선택한 내 남자의 얼굴에, 아이의 얼굴이 서려 있다. 그것이 곧 사랑의 자화상일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에 의미를 부여한다. 남편과 나를 꼭 닮았을 그 얼굴에. 그것이 영원한 사랑의 징표임을 믿으면서.
아이가 꼭 사랑의 징표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후회해도 현재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 그것은 어쩌면 또 다른 나에 대한 미련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기로 한 현재를 후회해서는 안된다는 합리화일수도 있고. 특히 여성에게 아이의 의미는 각별하니 말이다.
회사에서 ‘내 배 아파 낳은’ 프로젝트 하나만 좌초되어도 마음이 아픈데,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산출물인 아이를 바라볼 때면 어떤 감정이 남지 않겠는가. 잘난 조각도 나이고, 못난 조각도 나일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결국 뫼비우스의 띠 위에 던져진다.
문제는 그 삶이 허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실제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신중했다. 결혼 전부터, 결혼 후까지 매 순간 질문했다.
아이가 태어나도, 우리의 삶은 괜찮을까.
아이가 태어난 후 혹시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은 ‘(우리 사이는 앞으로도)괜찮을 것이다’라는 답을 찾았고 나는 ‘괜찮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찾았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래도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중간값으로 수렴했다.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굳건하게.
우리 부부는 특별하지 않다. 둘 다 공무원이고, 양가에 손을 벌리지 않고 신혼집을 꾸렸다. 나이는 사십대지만, 그 시작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원했다면 유학도 갈 수 있었지만, 이십대의 나는 고군분투해야 하는 그 선택을 않았다. 나는 조금 더 무난하고 편히 살고 싶은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성실한 삶을 살아온 K-장남 그 자체이다. 다복한 가정, 부모의 사랑 속에서도 예민한 장과 불면을 안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안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추었고,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나는 남편의 그 ‘새초롬한 얼굴’을 안다. 내가 대충 저녁을 차려줄 때, 잠을 못 자 예민해질 때, 배가 아파 출근이 힘든 날에도 그는 늘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의 예민한 장도, 불면도 어쩌면 이 나라의 삶을 닮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에게 말한다.
“돈은 내가 벌어올게. 짤려도 되니까, 마음 편히 살아.”
나는 진심이다. 세상의 문이 나에게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공동선을 향하고, 내 사랑이 옳은 방향이라면 그 문이 나에게만 나쁠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내 하루의 장애물처럼, 발자국처럼 남는다.
그 얼굴은 언젠가 우리 아이의 지문이 될 것이다. 언젠가 나는 아이에게 말하겠지.
“제 아버지를 똑 닮아, 피곤해.”
“어쩜 예민한 장도 제 아빠랑 똑같네.”
그 말 속에 겹쳐 있는, 그 문장에 스며든 시간들을 그 아이는 알아야 한다.
사랑이든, 애틋함이든, 순간의 기억이든.
모든 사랑이 영원할 필요는 없다.
순간의 기록이라도,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 아이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임신을 결심했다. 미래는 덮어두더라도, 내 삶에서 단언컨대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그 남자와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