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결심한 임신

가족을 만든다는 의미

by 구름빛

나는 1986년에 태어났다. 만나이와 전통적인 대한민국의 나이에 가장 집착할 나이일 것이다. 서른 아홉과 마흔의 경계에서 나는 '내가 몇살이더라.'를 생각한다. 삼십대 후반에 느즈막히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남편과의 신혼 생활을 즐긴 것이 어느새 3년째. 2023년 봄에 결혼을 하고 2024년 겨울까지는 아이에 대한 생각도, 미래에 대한 생각도 흐렸다. 철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늦게라도, 수도권에 집을 구입한 것이 만족했고 둘이 사계절을 즐기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임신'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너무 늦어서 묻지 않으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들이 급하면 더 급하겠고, 알아서들 하겠지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특히 나는 지금까지 벌려놓은 일들로 골치가 아팠고, 일에 제법 욕심이 있었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기에 한해만 더 한해만 더 하면서 그 일들을 끌고 오고 있었다. 저녁마다 맥주, 와인, 위스키 주종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이 즐거웠고 1년 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10kg, 남편은 +5kg 을 증량한 뒤였다. 임신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살이 찌고 건강이 안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계속 우리 둘이 살아도 괜찮을까?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나온 배, 나의 퍼진 엉덩이를 보면서 혹시 아이를 가지려면 더 늦기 전에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2024년 초에 근종 수술까지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더 늦어 지면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게 된다. 그래도 괜찮을까? 그런 질문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나 어쩌면 아이를 갖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벼르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니? 나 진지해. 계속 살이 찌고 있는데 혹시나 아이를 가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 둘다 몸 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근종이 또 재발하면 임신은 더 힘들어질 것도 같은데."

"바쁘고, 일이 많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냥 기다렸지. 나는 아이 한 명 정도는 키울 수 있겠다 싶어. 두 명은 우리 체력에 힘들 것 같고...."


나 또한 다정한 남편을 보면서, 우리의 이 행복한 생활에 아이가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완전 진부한 표현인데, "그와 나를 닮은 아이가 궁금해졌다." 내가 이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정말 그랬다. 웃을 때 반달눈을 한 그를 보며 그리고 그 앞에서는 말도 안되는 춤을 추는 나를 보며 우리를 닮은 아이를 함께 키워 나가면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행복의 장을 열고 싶어졌다. 나와 그를 남기고 싶어졌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임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원래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이지.


그래서 2025년 여름 방학에 난임 병원을 방문했다. 우리는 산전검사를 받았고, 나의 난소 수치(AMH)는 내 나이 평균치였다. 난소의 나이는 36 정도였고, 남편의 검사 결과는 정자의 양이 다른 사람들의 2배라서 자임 가능성도 제법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덧붙였다.


"그치만 나이가 있으셔서, 수정은 되더라도 끝까지 가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요. 그런 면에서는 시험관이 좀 더 확실하죠."


그렇다, 잘 안되면 내 나이 때문이란 거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잘 놀고 먹은 걸 후회하지 않았다. 뭐 인생이 다 내 맘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임신도 마찬가지. 남편과 늦게 결혼한 걸 어쩌랴. 임신하자고 아무나랑 결혼할 순 없으니까. '이 남자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남편 없이 혼자라도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나는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 인생에 임신을 하기엔 결국 지금이 적기다.


학기 중에는 시험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절박하지 않은 철없음이 첫번째 이유였고, 시험관을 시도하면서 아주 작아 보이지 않던 씨앗 근종이 커지거나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나의 일을 이유로 지난 2년간 피임을 했던 것이 조금 후회되기는 했지만, 인생을 거꾸로 살 수는 없으니까. 남편과 일단 학기 중에 난임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자임 시도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배란 유도제를 먹고 초음파를 하면서 3~4개월 정도 자임 시도를 해보고 안되면 방학이 다가오는 12~1월부터는 시험관을 시도해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이 서른 아홉에 자임 시도도 모험이란 걸 안다. 이미 아이를 낳은 주변인들은 그냥 단번에 시험관으로 가지 왜 시간을 낭비하냐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뭐 이미 낭비한 시간이 스무살 이후로도 19년이나 되는데, 1년 더 낭비한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질까. 몇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삶에 그런 운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나도, 남편도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난임 병원을 다녀와서 배란테스트기와 임신테스트기를 종류별로 잔뜩 사서 쟁이고 우리는 당장 8월부터 장어와 소고기를 먹으며 임신을 시도했다.


AI 프로그램이 이 두 아이를 나의 자녀라고 예측해주었다. 둘다 나의 어린 시절보다 예쁘다 후후.


예전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남편이 생기고 나서 이런 걸 해보니 묘한 마음이 생긴다. 결혼과 사랑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나를 변화시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