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시작에 앞서)
대부분의 대한민국 30대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오며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남아버린 낡은 이념들을 선택지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때론 견뎌내야만 한다. 어떠한 요소들이 우리를, 아니 정확히는 나를 끊임없이 고난 속을 맴돌게 하는가?
태어나기 전 이미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후 유교문화권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명칭으로 구분되는 성 인지와 역할, 태어나며 (선택권 없이) 지정되는 가족(구성원, 경제력)과 지역으로 인해 형성된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 성장하며 강압된 종교와 교육,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무논리와 폭력의 산실 군대, 성인이 되어서도 의지와 관계없이 끝없이 등 떠밀려하게 되는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부동산, 그리고 은퇴 이후 삶과 장례의 준비까지...
한국인으로 태어난 인간의 한 생을 통틀어 봤을 때 위 요소들의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이를 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과정을 걸쳐 만들어진 현재의 자신과 이 사회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소위 '어른'이란 명찰을 스스로의 가슴에 달고 그것이 명예인 것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다'라는 말로 함축되는 아주 간단한 요소들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죠?"라는 질문 따위는 먹혀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은 가치중립적이며 선악이 없어야 한다. 쉽게 생각하자면 당연한 일을 했는데 스스로 고통스럽다거나 자신이 범죄자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시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30대의 많은 청년들에게 '당연함'은 가치 편향적(주입적)이며 '악'하다. 우리는 '당연'하게 살아왔지만 그러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자아'는 사라지고 사회가 주입해 놓은 '타아'만 남게 되었다. 인생의 목표를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성취'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생존'의 단계로 몰락시켜놓았다. 우리는 그저 '생존'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따뜻하고 배부르기만 하면 성공한 인생인가?
하여,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나는 이 '당연'한 요소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의문을 제기하고 문제를 통찰하고 비판하려 한다. 가능하면 건설적인 대안도 찾아보려 노력하겠다. 이 글이 작게는 나와 같은 이들, '당연'이 고난이었고 앞으로도 고난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한 청년들, 에게는 당신과 같은 이가 여기에도 있음을 알려 고립감을 해소해주었면 하고, 크게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에 대한 통찰과 틀에서 벗어난 범문화적 시선을 갖게 하여 이 사회에 '당연'을 없애가는 진원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