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혹(ad-hoc) 가설

교육정책, 어디부터 손대야 할까?

by Hache

다양한 변인이 있는 과학현상을 분석할 때는 예상되는 조작, 종속 변인을 지정해놓고 나머지 변인을 모두 통제시킨 후 (조작, 종속 변인으로 인과적인) 가설을 세워 실험을 진행한다. 실험 결과를 통해 가설의 진위여부가 밝혀지면 새로운 가설과 변인통제, 그리고 실험을 통해 변인들의 관계에 대한 실험과 증명을 반복해 나간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다양한 변인이 얽혀있는 복잡한 현상은 이런 식으로 변인들 간의 관계를 하나하나 분석해 나가다 보면 현상에 관한 충분한 이해에 다다르게 되며, 이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러한 복잡한 현상의 통제, 조작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한 가지 예로 아인슈타인은 광속 불변과 상대성원리라는 두 가지 변인통제를 하여 빠른 속력과 시간, 거리 사이의 관계를 밝혀냈고 이를 통해 시공간의 가변성에 관한 특수 상대론을 완성해냈다.


교육문제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욕망이 얽혀있는 가장 복잡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각 나라의 정부는 교육을 국가 발전의 토대로 인식하고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교육정책을 내어놓는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중등교육과 고등교육(대학), 기업위주의 인사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교육의 긍정적인 사회기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4년마다 교육정책을 수정하는 행위를 지속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교육받은 성인, 교육받는 중인 학생들의 인생에 대한 만족과 행복지수는 늘 전 세계에서 최하위에 머문다.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될까?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조건하의 중등교육과 고등교육(대학),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변하지 않을 통제 변인으로 잡고 입시제도라는 조작 변인만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한국인의 인생이라는 함수에 이를 대입하여 한국 교육의 결과(종속 변인)를 봐왔다. 이를테면 '한국인의 인생 방정식'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y=f(x)의 표현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한국 교육의 결과=한국인의 인생(중등교육=불변, 고등교육=불변, 기업위주의 인사=불변, 입시제도=가변)


안타깝게도 수십 년간의 이 입시제도 실험에서 한국 교육의 결과가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이 되어야 할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한 삶'이 되진 못했다. 대신 '한국인의 인생=기업(혹은 집단)의 부품'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어져 왔다. 정부는 홍보한다.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GDP 몇 만불에 달했다고, 호화스러운 광고의 이미지와 거대한 숫자를 제시하며 당신의 인생은 한국 교육에 의해 성공했다고 주입한다. 실은 당신의 삶은 고작 기업의 부품이 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전 세계 최하위의 행복지수가 이 사실을 반증한다.


한국인들의 각성은 이제야 시작되는 것 같다.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퇴직할 나이가 되어서야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고 내가 뭘 위해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무언가 잘못되어져 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후회하며 깨닫고 있다. 80년 대생들은 30세가 넘어서야 내가 원하던 삶이, 직업이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외치며 직장을 때려치우고 갭이어를 갖고 있다. 뒤늦게야 진짜 자기 인생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한 나라의 교육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로 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세대들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좀 더 나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올걸...'


늦었다. 백번 양보해도 인생 2막, 은퇴할 나이와 직장생활에 이미 깊숙이 들어가 버린 때에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니 잘못'만은 아니다. 하지만 늦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육제도가 있었기에 한국인의 삶은 나아지고 있다는 그릇된 신념을 가진 한국 정부와 교육계는 터져 나오는 불만들에 대해 '중등교육, 고등교육, 기업위주의 인사'라는 통제 변인을 획기적으로 바꿔볼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저 건드리기 만만해 보이는, 이전부터 늘 조작 변인이었던 입시제도만을 조금씩 '땜빵질'하여 기존 '한국인의 인생 방정식'을 지속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과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애드 혹 가설'이라고 한다. 기존 가설(한국사회, 교육정책)이 맞다는 신념을 가지고 예상과 다르게 도출되는 실험 결과(인생에 대해 후회하는 은퇴자들, 퇴사, 갭이어를 가지는 젊은이들)에 대해 가설이 반증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임시방편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가설이 반증된 것이 아니라고 주변과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계속해서 실험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종종 이런 방식은 최후에 이르러서 옳다고 판명 나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가 극소수일 경우에 한해서다.


한국사회는 어떤가? 너무 많은 반증 사례가 지나치게 오랜 기간 쌓여왔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한국 교육제도,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A부터 Z까지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가설과 통제 변인을 이제는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새로운 판을 짜는 교육 설계의 시작을 한국 교육으로 인해 개인이 도달하게 되는 종단에 위치한 변인인 '기업 위주의 채용방식'을 180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즉, 구직자 위주의 채용방식의 도입이다.


기업위주의 채용방식은 모든 구직자들을 동일한 잣대의 1열로 줄 세워 앞줄에 서 있는 사람만을 뽑는 형태이다. 구직자들은 조금 더 앞줄에 서기 위해 스펙을 쌓으려 자신의 돈을 써가며, 빚을 내가며 끝이 없는 경쟁을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뭐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경쟁이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시각을 조금 조정하고 다시 경쟁을 돌아봐야 한다.


하나, 기업은 왜 채용을 하는가? 기업이 채용하는 이유는 일 할 사람이 필요해서다. 일 할 사람이 없다면? 기업은 유지될 수 없다. 그대로 무너진다.


둘, 우리는 기업에 들어가야만 먹고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돈을 버는 방식은 사람 수만큼 많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남들에게 팔아(그것이 시간이든, 재능이든, 물건이든) 수익을 얻으면 된다.


그렇다면 아쉬운 건 누구일까? 바로 기업이다. 아무도 기업을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작금과 같은 '갑질'을 할 수 없다. 돈도 없는 처량한 청년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빚까지 내가며 기업을 위해 꽃 같은 인생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비용은 사실 기업에서 청년들에게 제시하며 자신의 기업을 위해 일해달라고 부탁하고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다. 왜 우리의 돈을 쓰면서까지, 우리의 꿈을 버려가면서까지 기업 재벌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되려 애써야 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이런 기업위주의 줄 세우기 식 채용방식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잘 알고 있듯 한국의 교육제도가 그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 왔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특성이 있는 개인들을 과거 감옥의 형태를 본떠 만든 학교 안에 몰아넣어 똑같은 옷에, 똑같은 교육방식에, 똑같은 꿈을 주입하며 길들여 일렬로 세운다. 일렬로 세워진 개인들을 다시 일렬로 선 대학에 차례대로 채워 넣은 후 재 정렬한다. 최종적으로 정렬된 개인들을 일렬로 선 기업에 차례대로 다시 집어넣는다. 다시 한번 한국 교육이 한국인 각각의 꿈을 위해서가 아닌 극 소수의 기업가를 위해서 존재해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인생방정식의 결과가 '후회', '방황'이 아닌 '자아실현'이 되도록 하는 방법은 구직자 위주의 채용방식을 도입하여 일렬로 서는 한국인들을 없애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행작업이 필요하다. 일렬 세우기를 멈추는 방향으로의 교육개혁의 진행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생각한 답은 일반고의 비율 최소화, 그리고 특성화고등학교의 최대 확대이다.


재능이 각기 다른 개개인이 모두 동일한 틀 안에서 교육받아 본래 각자가 지닌 특성을 상실하고 능력을 잃어버리는 현재와 같은 종합 일반고의 비율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많은 수의 특성화고등학교를 만들어 개인이 가진 재능을 모두 살려나가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그저 취업이 잘 되는 몇 개의 학교와 학과로의 진학을 위해 모든 개인이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똑같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특성 없이 모두 동일하게 양산된 고졸, 대졸자들의 비율이 특성화고등학교의 수만큼 줄어들게 되므로 똑같은 대기업, 똑같은 공무원 시험에만 긴 줄을 서는 사회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는 각자가 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된다. 그 안에 동일한 희망을 가진 개인 간의 경쟁은 있긴 하겠지만 더 이상 하나로 세워진 줄이 아니므로 어떻게든 남들보다 앞줄에 서기 위한 지나친 경쟁과 소비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경쟁이 최소화되고 각자가 자신의 특성을 살려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될 시에 기업은 자연스레 수요자 중심이 되어 인재 채용을 위해 힘쓰지 않으면 이젠 직원을 얻기 어려워진다. 대학은 쓸데없는 학사 경쟁이 사라지고 콧대 높은 등록금을 낮추고 교육의 질을 높여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학교에선 쓸데없이 학생들을 가두기 위해 힘쓸 필요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학습을 하게 되어 살아있는 대한민국 교육이 꽃 피게 된다.


북유럽과 같은 인생 만족도, 독일과 같은 4프로대의 실업률, 핀란드 같은 교육 선진화, 후회 없는 인생으로 이끌어주는 국가로의 발전, 결코 어렵지 않다. 특성화고의 극대화와 종합 일반고의 최대 축소, 다양한 교육의 장을 만들어 한 줄로 서있는 대한민국의 학업, 취업을 가능한 많은 평행한 줄로 만들기, 이를 통해 기업이 아닌 구직자 위주의 인사로 전환이 이루어질 때에 교육개혁과 더불어 한국사회개혁이 완성되어 개인이 자아성취를 이루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더 이상 살아온 인생을 후회로 점철하는 한국인들이 누적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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