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영화'에 관한 시각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인생영화!”라는 표현을 개봉 영화의 감상평에, 블로그에, SNS에 요즘 들어 많이 보게 된다. 가장 최근에 이런 표현을 봤던 영화는 ‘라라랜드’였다. 지난 수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보여주는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한 심플한 권선징악의 메시지, 최신의 현란한 영상 효과가 한국과 세계의 영화관을 주름잡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런 시대에 나온 뮤지컬 형식의, 클래식한 느낌을 가득 주는 영화 ‘라라랜드’는 고전적 배경과 예스러운 촬영기법으로 오히려 신선함을 주었던 탓인지 꽤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으며 수많은 한국인의 ‘인생영화’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에 크게 끌림이 없었던 나는 개봉한 지 한참을 지나 서울에서도 한, 두 개 관에서만 드문드문, 하루 한번 상영하던 시기에 보게 됐다. 개인적인 감상은 ‘뒤범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싶다. 그냥 나는 그렇게 봤다.
여하튼 요즘 이 ‘인생영화’라는 표현은 영화의 감상을 한 단어로 아주 간결하게 표현해주며 동시에 대세에서 벗어난 영화도 감상할 줄 안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자신의 취향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는, 과거로 치자면 ‘나만의 좌우명’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인생영화’라는 표현을 들으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한편 있다. ‘인사이드 르윈’, 한가한 주말의 어느 날, 파일로 소장만 하고 있던 이 영화를 뒤늦게야 보게 되었다. 개봉일은 수년이 지난 시점이고 오래 보관하고 있었으며 사전 정보도 없던 영화, 특별히 기대 없이 그냥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 꽤나 사람 마음을 묵직하게 헤집어놓는 느낌을 주며 엔딩 크레디트가 오른다.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겪으며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웹페이지를 보니 ‘인생영화’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블로그의 포스팅이 나왔다. 그 안에는 영화의 평을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인생영화, 좋았다’라고 줄거리보다 더 간단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좋은 감정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느꼈을까?’
화면의 모든 빛이 100분 내내 회색으로 물들여져 있다고 느낀 나는 ‘좋았다’는 표현에 큰 괴리감을 느꼈다. 이렇게 속을 헤집어놓는, 영화 속에서까지 보고 싶지 않은, 괴롭지만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에 ‘좋았다’라는 감상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내가 너무 부정적인 걸까? 혹시 고양이 때문인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름한 뉴욕 뒷골목에 자리한 조그만 라이브클럽에서 포크송 가수(자신의 앨범도 있으니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싱어 송 라이터’)로 간간히 무대에 서는 르윈(주인공)은 그의 삶도 자신의 무대와 같이 간간히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지인의 집에서 집주인이 허락해주는 만큼만 하루, 이틀씩 소파를 빌리며 잠자리를 구하고, 주머니 사정은 역시 하루벌이를 면치 못한다. 가족과 주변인들은 철들지 않는다며 그의 삶 자체를 맹렬히 비난하고, 계약 맺은 스튜디오에는 팔리지 않는 자신의 앨범에 먼지만 가득하다.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 마지막 기대를 품고 있는 시카고 클럽 오디션은 참가하러 가기까지의 여정조차 버겁다. 차라리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안겨주는 르윈의 삶, 힘이 없는 담담한 눈빛으로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어느 하나 좋은 사건이 없다. 흔한 미소조차 없다. 그가 가진 옷이라곤 얇은 밤색 재킷 하나, 그 흔한 코트 하나가 없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북미의 추위를 온 얼굴과 몸으로 보여준다. 보는 내가 심지어 힘겹게 느껴져 때때로 부리는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사치라고 느껴질 뿐이다. 돈을 위해 자신의 것이 아닌 노래를 연주하는 르윈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다. 그 속엔 공허함과 끝나지 않는 인생의 방황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할 그의 음악적 자존심과 꿈을 세상은 르윈에게 허락하지 않을듯하다.
하지만 영화가 르윈이 겪는 음악인으로서의 힘겨움과 비참함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르윈의 삶은 차갑지만 그 속에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의 비난과 육체적 고통에도 이를 지켜내 가는 한 인간의 꿈을 향한 강인함 또한 동시에 보여준다.
한 손에 쥔 무거운 기타를 끝끝내 놓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르윈, 담담하게 현실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며 동시에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르윈의 모습이 실은 우리가 평생 이끌어가야 할 진짜 인생이 아닐까? ‘인사이드 르윈’은 단어 뜻 그대로의 인생을 보여준 ‘인생영화’로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덧,
‘인사이드 르윈’을 보았다면 이보다 좀 더 가벼운 느낌으로 인생을 보여주는, 하지만 역시나 ‘좋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영화로 ‘프란시스 하’를 추천한다. 흑백영화의 참 맛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