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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lish man in New york Feb 25. 2021

서평: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숙명적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

유교와 노장사상,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특별한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개념이지만 모두 같은 고민에 출발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번쯤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라는 숙명적인 질문을 놓고 해답을 찾고자 한다.  해답을 찾는 과정은  순간에 완료되지 않는다. 가지각색의 경험에 따라 이쪽저쪽을 갈팡질팡 하다 어느순간 운이 좋게  지점에 수렴하기도 하고  끝내  곳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하나의 여정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해답지는 아마도 왼쪽 끝에서 오른쪽  사이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다. 힘겨운 과정 끝에 찾아낸  해답이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바뀌는 것은 슬프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틀에서 보면 우리는 통제와 자유라는  축을 두고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하다. 스스로에게 주는 지나친 자유는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고, 잊고 있었던 통제라는 단어를 다시금 찾게만든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친 통제로 모든 것이 정돈되고 질서를 가지는  보이다가도 내면 깊은곳의 열망은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벗어 던지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고민들이 하나로 쳐져 철학과 문학 예술에서 각종 사조로 나타나게 되고, 개개인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가 한대 어울려 지면서  사조들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라는 숙명적 질문을 해야만 하는가? 그리스인 조르바는 바로  지점, 우리의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대해서까지 깊이 있는 고민을 던지고  대답하는 소설이다.

누구나 우리의 고민의 가장 근원적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거대한 확실성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삶에 갑자기 찾아들 불확실성에는 대비하지만 누구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확실성때문에 위에서 이야기한 질문의 해답을 찾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겪을  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형이상학적인 통제된 삶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주인공이 자유로운 삶의 정점이라고   있는 조르바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되어있다. 여기에 주인공의 친구(신념에 따라 대의를 쫒는 인물), 각종 인물들 그리고 조르바의 과거 이야기들이 더해져, 자칫 두루뭉실하고 산만해지기 쉬운 주제를 풍부하게 그리고 심지어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은 조르바를 만나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을 겪게 되고  나아가 조르바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조르바의 삶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해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조금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작가는  실마리를 독자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했다고 느꼈고, 최소한 나에게는 성공적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시점에 이미 조르바에 흠뻑 빠진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제와 무관하게 작가의 묘사와 표현력에 감탐을 금치 못할 때가 많았다. 내면의 이야기가 많아 호흡이 빠르지 않다가도 특정 부분에서는 놀랄만한 서스펜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라는 질문에 여전히 뾰족한 답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최소한 석양아래 해변에서 마음껏 와인을 마시고 산투리를 연주하고 마케도니아 지방의 춤을 추는 조르바를 알게되어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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