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마치 자연이 숨을 돌리는 듯하다. 앙상했던 가지 끝에 연둣빛이 맺히고, 논두렁과 밭두렁 사이사이에서 작은 생명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 곁에 오는 것은 ‘봄나물’이다.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산뜻한 침이 고인다. 달래, 냉이, 쑥, 두릅, 미나리… 어릴 적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먹던 봄이 떠오른다.
봄나물은 단지 식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깨우는 ‘봄의 신호’다. 새순이라 그런지 그 맛이 어찌나 앙큼하고 싱그러운지, 한 입 먹으면 온몸이 깨어나는 듯하다. 조금은 쌉싸름하고, 조금은 향긋하며, 무엇보다 흙냄새를 닮은 그 맛. 아직도 뜨끈한 밥 위에 냉이된장국을 부어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들기름 살짝 두른 달래무침, 김 한 장에 싸서 먹으면 그게 또 별미였다.
재미있는 건, 봄나물은 대부분 사람 손이 가지 않은 ‘거친 땅’에서 자란다는 점이다. 누구 하나 정성 들여 키운 것도 아닌데, 어느새 알아서 자라나 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살며시 다가와 말한다. "겨우내 고생 많았죠. 자, 이제 다시 기운 내요." 마치 자연이 보내는 위로 같다.
도시에 살면서는 봄나물을 일부러 찾아야 한다. 시장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봄나물 다듬는 할머니의 손끝에서, 나는 봄의 숨결을 본다. 봄은 그렇게,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자라고, 우리의 밥상 위로 올라온다.
세상에 봄이 온 걸 가장 먼저 알려주는 건, 벚꽃도, 개나리도 아닌지도 모른다. 바로 이 소박한 봄나물들이 아닐까.
올봄엔 그 작은 풀 한 줌에서, 커다란 봄을 느껴보자.
잊지 마세요. 오늘도 당신의 하루는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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